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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2 | [특집]
특별기고 착잡한 명암 광주비엔날레
글/이영욱 미술평론가 전주대 교수 (2004-02-10 12:28:09)
광주비엔날레가 끝났다. 아시아 최대 규모에 속하는 미술 행사로서 160만이 넘는 관객들이 다녀간 그야말로 거국적인 행사가 적어도 겉으로는 큰문제없이 종결된 것이다. 아니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큰 문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수지상으로 입장 기타 수입 90억 이상, 순수익10억의 흑자를 올렸고 미술의 대중화와 지방 문화의 증진에 큰기여를 했는가 하면, 대형 비엔날레를 개최할 수 있는 훈련의 기회가 되었다거난 그밖의 기타 부수 효과를 거두는 등 그야말로 성공적인 전시 개최가 이루어졌다고 할 것이다. 물론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이 대규모의 복합적인 행사를 1년도 넘지 않는 기간안에 개최하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시도에 대한 저항 또한 적지 않았으며 당연히 그러한 무리수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문제점들 졸속,부실,파행의 수많은 사례들에 대해서도 여지없는 비판이 가해졌었다(몇 가지만 뽑아보면 전반적인 전시의 짜임새 결여,주체설설정과 관철에 있어서의 모호성과 피상적임, 장터로 변해버린 전시장, 전문성부족, 작품을 알아먹 을수 없음).심지어 정치적 쇼라는 비판에서부터 진정한 미술의 소통은 실종되고 단지 엑스포 같은 문화 관광만이 휩쓸었으며 결국은 ‘세계화’,‘국제화’는커녕 안방 잔치가 되어버렸다는 견해 또한 만만치 않았다. 솔직히 나로서는 그래서 이 비엔날레가 성공이었느냐 실패였느냐 하는 단선적인 평가에 동참할 의도는 없다. 또한 몇가지 문제점만 수정하면 앞으로 제3세계에서 개최하는 비엔날레 중 특색 있는 것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거나 아니면 아시아에서 열리는 여타의 군소 비엔날레와 마찬가지로 그저 그런 별로 의미없는 그런 형식적인 행사로 전략랄 것이라는 식의 그럴법한 예측에 참가할 의도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표면적인 평가와 장단 혹은 예측의 나열이 아니라, 사태의 실체에 보다 접근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러는 가운데 진정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다. 광주라는 그말할수 없는 역사적 참화를 겪은 도시의 지도자층에 속한 몇몇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아이디어인즉슨 대규모 국제적인 문화행사, 미술축제를 열자는 것이다. 이는 예향으로서의 광주의 이미지에도 부응할 뿐아니라 세계화라는 국정 지표에도 걸맞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특히 ‘80년 이후 광주에 부가된 어쩔 수 없는 이미지와 분위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가 아니겠는가? 물론 돈은 좀 들 것이다. 하지만 지역 경제계로서도 중대한 문제이니 적극 지원할 것이요, 예상되는 효과만 이룰수 있다면 빈약한 시재성이지만 좀 과다하게 쓴다 하더라도 충분히 효율이 있을 것이다.당연히 정부로서는 이를 환영할 수밖에 없다. 행사의 성패의 관건인 홍보와 관객 동원의 측면에서 특히 암묵적으로 적극적인 지원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사태가 이렇다면 전시는 가능한 빨리 열려야 한다. 왜나하면 핵심 효과인 광주의분위기 전환은 빠르면 빠를수록 주최자들이 의도하는 분위기 전환의 효과가 발료되는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제 비엔날래가 몇 년 동안의 준비를 요하고 또한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우리의 기존의 인적 자원과 축적된 역량을 민주적으로 수렴하여 그것을 반전시키는 가운데 일이 진행되어야겠지만 더 중요ㅕ한 것은 적극적인 기회 활용이다. 일단 그것이 어떻게 보여지던 간에 전시의‘국제성’만확보되고 관중들만 충분히 동원될 수 있다면 전시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기회를 일단 황용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미술문화 발전에도 결국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문제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이러한 구상이 그것을 추진한 주체들이 실제로 얼마나 의식했건 상관없이 광주 비엔날레를 주동했던 핵심적인 시나리오가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게도 서둘러 일년도 안되는 기간 안에 전시를 추진해야 했는지? 어떻게 해서 대중들의 일상적인 미술문화 성장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관심했던 지방행정 당국을 비롯한 여러 기관들이 그렇듯 광주 비엔날레에 열을 올리게 되었는지? 또 수많은 부실이 눈에 보이면서도 전시의 조직 담당자들이 전시를 추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의 의문들이 해명되지 않는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더 이상 이렇듯 일상 삶의 문화적 현실과 유리된 그리하여 그 생활로부터 유래하고 그것으로 돌아가는 상호 피드백이 없는 이벤트성 행사가 여타의 기반을 무시한 채 열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문화는 어떤 단순한 의도에 대응하여 이루어지는 창조가 아니라 한 인격체와 한 시대의 인간적기능의 종합적 표현의지에 대응하여 이루어지는 창조 행위이며, 이 인간적 기능의 종합은 오히려 어떤 하나의 의도적 지배하에서는 억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는 제조된다기 보다는 성장한다, 즉 문화는 계획에 따라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토대로부터 성장해 나온다. 물론 이 때 토대란 다름아닌 삶이 그자체이다, 따라서 올바른 문화행사는 그 일차적인 출발점이 무엇보다도 삶 자체와의 연관 속에 문화의 예술이 성장,개화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이 주어져야 한다. 이런 점이 끊임없이 망각되고 심지어 어떤 정치적 목적에 의해 압도되는 그러한 문화행사는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문화를 또 하나의 기만적인 껍데기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릴 뿐이다. 또 하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비엔날레 자체에 대한 것이다. 비엔날레란 사실 대부분의 경우 기존의 서구 중심의 미술문화 제도를 유지,갱신,재구성하기 위한 문화 이벤트 이다. 우리들 자신들로서는 이러한 비엔날레는 쓸데없이 신비화할 필요가 없으며 그실상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물론 제3세계 국가들에서도 적지 않는 비엔날레가 열린다. 그 경우 해당 국가의 미술과 문화를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경우에도 많은 제3세계의 비엔날레들이 국내적으로 지역 콤플렉스나 서구에 대한 국제화 콤플렉스는 바탕으로 국내 정치나 행사용 이벤트로 잘못 활용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광주 비엔날레의 경우 사실 전자의 실질적 의미미의 세계화에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결국은 지나치게 국내용이었고 콤플렉스 치유용이 었다. 나로서는 굳이 요구를 한다며보다 실용적인 적어도 드는 돈만큼 나오는 결과가 있는 정확한 비엔날레가 앞으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이렇듯 복합적으로 문제가 얽혀 잇는현실 상황 특히 문화와 정치의 그야말로 순수하지 못하고 비효율적인 메커니즘이 우세한 상황에서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로서는 이 휘황찬란한 전시가 끝나는 자리에서 이러한 행사의 실제가 무엇인지를 보다 정확히 응시하며 이것과는 다른 그야말로 제대로 된 축제로서의 문화적 이벤트를 꿈꾸고 그것을 위해 면밀한 준비하는 일을 할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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