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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2 | [문화저널]
여성과 문화 "여자들은 정치 할 시간 없습니다”
글/이윤애 전북여성운동연합 사무국장 (2004-02-10 12:21:14)
눈을 떠보니 6시30분이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모 일간 신문의 청탁 원고를 마무리 짓느라 잠이 부족해 억지로 눈을 벌리고 일어나 베란다 창무을 여니 새벽공기가 시려왔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자가 개발한 건강체조로 하루를 시작한다. 날마다 강행군할 수 있는 것은 건강체조 덕이라 여겨 거르지 않고 열심히한다. 현관문에 꽂혀 있는 조간 신문을 들고 주방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짬짬이 신문을 넘기며 헤드라인만 읽어 내린다.(기사를 정도하지 않는 것은 시간도 없거니와 아침부터 기분 잡치지 않기 위해서이다)밥이 다 되었는지 압력솥의 김빠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벗어 놓은 빨래감들을 주섬주섬 챙겨 세탁기에 집어넣고 한바탕 돌려댄다. 남편과 아이들을 깨워 하는 둥 마는 둥 아침식사, 남편 회사 출근시키고, 학교 급식이 되면 좋으련만 큰아이 도시락 들려서 아이들 학교 챙겨보내고 나면 배가 고파진다. 식어버린 차디찬 밥 몇 숟갈 뜨고 후다닥 설거지 하고 대충 청소까지 해치운다. 오늘 일정을 점검해 본다, 느슨해진 쓰레기 분리수거 체계를 점검하기 위해 아파트 부녀회가 열렸다. 규격 봉투를 사용하지 않는 얌체족을 성토하고 재활용품 분리 수거도 엉망이라고 아우성들이다. 다음 일정이 바빠 한쪽 엉덩이만 붙이고 한쪽은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쓰레기 매립의 한계,소각장 설치의 어려움 등을 토로하며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 최선이기 때문에 자발적인 참여를 부탁한다고 빠져 나왔다. 위원회의가 잡혀 있어 상임위 별로 의정질의서를 분담하여 최종 점검해야 한다. 자료요정,자료확인........ 정신이 없다. 한쪽에서는 다리꼬고 앉아서 담배만 뻐끔거리는 무례한도 있다.한심하기 그지 없다. 회의가 마무리 되는대로 몸무게 보다도 더 나갈 것 같은 가방을 들쳐메고 청사로비를 빠져 나오는데 웬 기업체 사장님이 우연을 빙자하여 뒤따라 온다. 점심식사나 같이 하잔다. 가방 속에 샌드위치와 우유가 있으니 같이 먹자고 제안했더니 머쓱해 한다. 털털 거리는 프라이드 까지 따라오더니 다음에 보자며 자동차 문안으로 무엇인가를 던져넣는다. 흰봉투다.(웬 횡재냐!)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어 옆집 석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점심 좀 먹여서 학원에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일하는 엄마들를 위해 방과 후 아동 지도를 해줄 수 있는 기관이 절실하다. 내 아이들을 거리의 미아로 방치할 수는 없지 않는가? 바쁜 엄마가 미안했다. 차안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지역구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만나러 갔다. 생활보호 대상자들에게 김장,난방,피복비 등 월동대책비로 6만3천원씩 지급된다다는 TV아침 뉴스를 봤던지라 걱정이 되었다. 두툼한 흰봉투의 내용물을 꺼내어 여러 개의 흰봉투를 만들었다. 기업가 000이라고 적었다. 영수증으로 쓸 요량으로 작은 메모지도 준비했다. 영수증 액수를 맞추어 흰 봉투에 넣어 성금 기탁한 기업가에게 되돌려 보냈다. 연물 세무정산에 쓰라고... 인근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복지관에서는 한 봉사단체가 주관하는 경로잔치가 열렸다. 노인 장기자랑 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받았기 때문에 기꺼이 참석하였다. 어깨춤이 절로나고 흥에 겨웠다. 하지만 쓸쓸해 보였다. 쓸쓸해 보이는 일도 잠시뿐, 요즘 심각한 학생폭력 실태를 고발하고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거리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현장에 당도 했다. 교육 문제를 생각하는 어머니회 회원들은 벌써부터 어개디를 두르고 전단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거리 연설에 일가견이 있는지라 메가폰을 잡고 시민들을 모았다. 모두가 내 일처럼 걱정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파김지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아이들 숙제를점검 하고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남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월말이라 잔업이 있으니 먼저 식사하라는 내용이었다. 내일 있을 여성단체에서 주최하는 ‘탁아문제 토론회’ 원고를 한번 훑어보고,의정질의도 꼼꼼하게 작성하였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못다본 조간.석간 신문을 펼쳐든다. 너무도 커다란 활자에 눈이 어지럽다 ‘노씨 구속’ 이 땅에 태어나서 대통령으로 떠 받들었던 사람을 대도의 혐의를 씌워 감옥으로 보내야하는 중생들을 서클퍼 졌다. 갑자기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의 한 구절 이 교차한ㄷ. “정치인들 가슴에 담고 있는 불신, 그리고 갈등을 모두 내가 안고 가겠다”고 말하는 그분의 초췌한 모습과 조금은 의미 심장한 표정이 가증스럽다. 걱정도 팔자시군요! 당신네들이 말하는 갈등과 불신,이권과 청탁, 밀실과 야합, 부정과 부패로 대변되는 것이 정치라면 여자들을 그런 정치할 시간이 없소이다. 살림(죽임의 반대,세상을 살리는 일)하기에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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