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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2 | [문화비평]
박홍규의 문화비평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박홍규(2004-02-10 12:10:31)
“야! 이 도둑놈들아” “노태우가 아니라 개태우” “노씨가 계속 잡아떼면 이근안이를 찾아 고문시켜라” 노태우씨는 비자금 사건을 지켜보면서 ‘진짜 보통사람’들이 엄청난 액수의 검은 돈에 분노와 허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터트리는 말들이다. 스산해지는 만추의 계절에 그 계절의 맛도 모른체 국민의 집단적 독설이 난무한다. 하나의 정치적 사건에 의한 메가톤 충격은 곧바로 전국민을 직설적,감성적 문화현상 속에 휘몰아 버린다. 은유와 형용사의 꾸밈이 사라지고, 화합과 화평의 목소리가 살아지고, 윤리와 규법의 질서가 빛을 잃어버린다. ‘내가 꼭 이렇게 아등바등 힘들여 살아야 되나’ 하는 극심한 체념과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일상적인 시장 구매력이 감소할 정도로 입맛과 치장의 멋도 잃어 버렸다. 웬만해서 떨어지지 않는 술 소비량이 30%까지 감소하며 술 맛도 떨어졌다. 새로운 프로의 비디오가 나오면 어떻게든 빨리 구해보려던 비디오 가게도 한한하단다. 늦가을 과 초겨울에 한 번쯤 취해볼 정취도, 조용히 혼자 둘러보는 전시회도, 눈물나는 멜로물도, 울적한 마음을 달래 줄 클래식 음악까지도 이 비자금 정국은 단 한방에 날려버렸다. 어느 신문의 새로운 비디오 소개란은 ‘비자금 파문으로 답답한 마음을 통쾌하게 풀어 줄’ 폭력 비디오만을 묶어서 소개한다. 잔잔한 클래식이나 발라드보다는 록이나 헤비메탈류의 음악이 심난한 마음을 풀어준다. 이러한 기이한 문화현상은 결코 기이하지가 않다. 우리의 삶이 정치적.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듯이 문화현상 또한 정치사회적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폭팔적인 공분의 문화현성과 같이 비교문화로부터 허탈감과 무기력이 더욱 심화된다.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꾼’ ‘100만원 봉급장이가 한푼도 안쓰고 4만년 이상을 벌어야 할 돈’ ‘그 돈이면 농민들이 요구하는 벼 수매가와 수매량을 채우고도 남을 돈’ ‘노씨 검찰조사 받고 귀가하던 새벽, 3백 50만원 빚 때문에 한 생수업게 과장 자살’ 전두환 씨와 노태우 씨의 돈 씀씀이가 비교되는, 진짜 보퉁 사람과 노씨삶이 비교되면서 집단적 절망과 무기력의 문화가 형성된다. 또한 불신의 문화현상이 판을친다. 모든국민이 받았을 거라고 믿고 있는데도 나는 한푼도 받지 않았다는 이나라 대통령의 귄위적인 입으로부터, 5.18의 주모자로부터 희생의 당사자였던 야당 총재가 받았다는 정치 자금과 정경유착으로부터 거대한 이익을 취했을 이나라의 재벌 총수들의 거만한 표정과 떡값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믿을 만한 것조차 믿을 수 없이 온갖 속임수와 눈가림으로 치장시키는 불신의 그물로부터 우리는 자유스러울 수 없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보는 TV뉴스로부터 부모는 도저히 자유스러울 수없다. 이 사기와 협잡, ‘너 죽고 나살기’ 식의 진흙탕 싸움이 난무하는 이 참담한 가을에 우리는 부끄러움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땅에 똑바른 대통령 하나 두지 못하고, 뒷돈과 이권으로 치부한 재벌 기업들만 가득하고, 엄정한 수사를 외치면서도 여론의 눈치를 보며 각본대로 연출되는 것 같은 검찰 수사로부,역사적인 단죄와 속죄로 단도리해야 할 사건인데도 서로의 험담과 물어뜯기로 일관하는 정치판으로부터 우리는 국민임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스러운 사람은 없다. 이 부끄러움의 문화현상은 당당하고 자유스러운 문화를 위축시킨다. 오늘의 비자금 정국은 논바닥과 사업장과 길거리의 절망을 깊게하고, 우리 삶의 문화를 순식간에 옆차기 한다. 분노와 불신과 허탈감과 부끄러움은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의 문화를 뒤흔들고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문화를 양산한다. 어두운 절망의 문화로 역행된다. 이 자유스럽지 못한 문화현상들은 음험한 정치적.사회적 썩은 부위를 과감히 도려낼 때만이 삶의 질이 보다 향상되는 건강한 문화의 생산과 향유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한다. 더 춥고, 밤이 길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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