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1 | [문화저널]
은은한 맛과 멋을 지닌 은어
문화저널(2004-02-10 11:19:22)
은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 및 대만에 분포하고 국내에서도 대부분의 하천에서 출현하고 있으나 특히 섬진강, 밀양강, 평북의 청천강이 유명한 산지이다. 은어는 옛날부터 은은한 향기를 지니고 날씬한 몸매를 가진 물고기로 잘 알려져 왔다. 은어는 소금에 절이거나 제철에 소금구이로 먹어도 맛이 있고, 생회로 먹으면 오이 향기가 있어 맛이 담백하고 비린내가 없다.
더구나 은어는 놀림 낚시의 대표적인 어종이어서 낚시꾼들에게도 잘 알려진 물고기이다. 은어의 주둥이에는 은백색의 곧은 뼈가 있어서 옛날 문헌에는 은구어(銀口漁)로 기록하고 있다. 이수광의『지봉유설』에는 은어에 대하여 “은구어는 봄에 바다로부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서 여름, 가을에 비대했다가 가을이 깊어지면 없어진다”라고 기록하였다.
은어의 몸길이는 20Cm정도인 것이 보통이지만 가끔 30Cm이상이 되는 것도 있다. 몸의 등쪽은 푸른빛을 띤 황록색이고 배쪽은 선명한 은백색이다. 어린 새끼는 가까운 바다에서 겨울을 지낸 후 이듬해 이른 봄 수온이 13~16°C가 되면 전장 5~6cm가 되어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오는데 이 때에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이로 섭취한다. 그리고 은어 새끼들이 민물 하천에 도달하면서 부터는 식성이 변하여 민물 하천바닥의 돌이나 바위 표면에 붙어 있는 부착 조류를 주로 먹으면서 전장 7~8cm로 급속히 성장하여 하천 중류로 이동한다. 이 때 은어 한 마리는 약 1m󰋅정도가 되는 바닥 면적을 차지하여 그곳을 침범하는 다른 종류의 물고기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행동을 보이는데 이러한 영역을 세력권이라 한다.
9~10월이 되면 크기가 보통 10~20Cm로 자라게 되는데, 이때 수컷은 곱게 치장하여 혼인색을 나타내면서 암컷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와 동시에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던 은어는 방향을 180°로 돌려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다가 바닷물의 영향이 약간 있는 민물 가운데에서도 모래와 자갈이 깔린 얕은 곳에 산란장을 만들게 된다. 먼저 암컷이 자갈바닥을 지느러미로 파기 시작하면서 여러 마리의 수컷 은어들이 같은 동작으로 직경 10cm의 원형 산란장을 만든다. 이들은 곧 쫓고 쫓기고, 물이 튀는 요란한 소리를 내는 산란 행동을 한 다음에 암컷이 구덩이에 알을 낳으면 수컷이 바로 이어 그곳에 사정을 하여 수정이 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2~3군데 산란, 수정을 하게 되면 수온 15~20°C에서 2주만에 부화된 5~&mm의 새끼는 강물을 따라 가까운 바다로 들어간다. 산란이 끝난 어미 은어들은 수온이 낮아지는 때와 같이 하여 쇠약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뼈만 남게 되어 바다로 떠내려가면서 일생을 마친다. 이렇게 떠내려가는 은어는 물새도 잡아먹지 않고 그들의 장례행렬을 엄숙하게 지켜본다고 한다. 대부분의 은어는 이와 같이 1년 안에 그 생애를 끝내기 때문에 1년어라고 하지만 간혹 2년까지 사는 것도 있다.
은어는 현재 우리나라의 남·동해안으로 유입하는 하천, 특히 낙동강, 섬진강, 영덕 오십천, 삼척 오십천, 강릉 남대천 등에 많이 올라오며, 도서 지방인 제주도와 울릉도를 비롯한 섬지방의 맑고 깨끗한 작은 하천에도 흔히 살고 있다. 섬진강 수계의 남원, 순창, 구례, 옥과, 곡성, 광양등은 은어 산지로 유명하였으나, 하천의 중간에 인공 댐 과 수중보가 많이 만들어져 거의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이제라도 은어가 사는 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공 댐과 수중보에 물고기가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도록 어도(魚道)를 설치하여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이와 같은 근자연공법(近自然工法)으로 하천을 이용해 왔다. 그리고 서해안에 유입하는 소하천에는 아직도 은어가 있으나 개발로 인하여 그들은 조만간에 절멸될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하천오염이 가중되고 있고 하천 개발등으로 인하여 은어의 자연 서식지가 크게 훼손되고 있어서 은어 개체 수는 크게 감소하고 서식이 불가능하게 된 수역이 많다. 은은한 맛과 멋을 지닌 은어가 살수 있는 하천은 원래의 서식지 모습을 그대로 갖춘 깨끗한 곳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곳에서만 우리 인간들도 진정한 멋과 맛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