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1 | [문화비평]
우리 스스로 경계를 넘는 일이 필요하다
광주 비엔날레
문화저널(2004-02-10 11:13:53)
요즘 전북에서 발간되는 일부 언론 매체에서는 전북의 낙후성을 들며 광주와 전남에 비교하는 가운데, 나는 모처럼 일요일을 빌어 광주비엔날레를 돌아보게 되었다. 길잡이는 광주에 살고 있는 대학 친구였다. 광주 비엔날레를 한번 다녀오지 않고 지나친다면 이 고장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통과의례를 거른 것 같은 생각에서였고 만나고 싶던 친구를 오래 간만에 만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광주 비엔날레는 서구 중심으로 형성된 현대 미술과 제3세계의 미술을 연결하는 일종의 문화 고리로서 지구촌을 문화 예술의 띠로 두르고자 하는 새로운 문화의 축이자 적극적이고 건설적으로 국제 무대로 진출하고 참여하기 위한 의지의 결과라고, 위원장의 주제인 ‘경계를 넘어’의 여는 글을 보고 짐작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미술관을 돌아본 소감을 말하라고 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작품 하나 앞에 서서 이해 아니면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없는 시간에 그토록 많은 작품을 스쳤다는 것부터가 그렇고 나중에는 어차피 모르기는 마찬가지니 ‘다리야 갈길을 제촉하자, 시간이 없구나’ 하고 건너 뛰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길잡이인 친구가 말하기를, 자기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미술 선생이 보고와 하더라는 말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러 온 것인지 영상을 보러 온 것인지 모를 정도요. 첨단 정보의 설치 작품이 주종을 이루어 건너 뛰는 데 부담감이 없을 정도였다.
곡 정신을 산란케 하는 신세대의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째의 전주 생활 가운데 1987년에 와 지내게 된 2년 동안의 뜻있는 생활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북이나 익히자고 찾은 것인데 도립국악원에 들려 판소리까지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면 조상현 국창으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내가 판소리에 관심을 갖는 그 자체만도 가상하게 여긴 천이두, 정양교수는 옛 테이프를 주고 판소리에 관한 책자를 구해 주었다.
그 바람에 훗날 동리 신재효에 대한 인물 소설을 쓰도록 출판사로부터 청탁을 받기까지 하였는데, 나는 그 때 소리를 부르거나 듣는 것도 좋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 흠뻑 젖어들고는 했다. 선생님의 선소리에 따라 부르는 그 진지함은 혼을 뽑아 올리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서편제를 한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판소리를 혼(魂)이라고 표현했다. 창자 속에 남아있는 모든 기력을 다해 소리를 배워보지 않은 사람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으리라.
이렇듯 혼이라고 생각하는 판소리에 심취한 나머지 한 시간 정도 부를 수 있는 분량을 외운 적도 있었다.
이렇듯 책 한 권을 외울 수 있는 실력으로 요즘 신세대들이 부르는 빠른 템포의 노래까지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 무망한 노릇이었다.
십대와 똑같이 민첩하게 입을 놀릴 수 없어 그들의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없지만 그게 나만의 불치병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듯 빠른 템포의 노래는 부르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 해답은 광주의 비엔날레에 적용시킬 수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대의 미술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느끼려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소득은 컸다. 그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힘쓴 위대한 광주인들을 보게 하였고 그 현장안팎에는 미술 외에도 화음과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 화음과 분위기 자체가 광주비엔날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듯 훌륭한 국제적인 행사를 치르는 곳이 광주의 한 공원이고 새로지은 건물은 한 동뿐이라고 한다. 거기에 광주 예술회관이 서있고 그 건물을 이용하였다.
그 행사는 광주인의 큰 모습이지 좋은 건물이 많아 성공적으로 치르는 행사라고 할 수는 없다.
전북의 낙후성을 들먹이는 것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그것을 애향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기에 앞서 전주에 세워질 예술회관의 부지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해 질질 끌어온 지 얼마나 되는지 먼저 뉘우쳐야 할 것이다.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같은 국제적인 행사도 있다. 하기에 따라서 는 그 행사를 전주의 비엔날레로 승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웃의 장점을 보고 배울 일이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광주나 전남에 비해 처진 것이 많을 것이지만 광주 비엔날레를 보고 교훈으로 삼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