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0 | [문화와사람]
소동은 이제 그만
글/이춘구
(2004-02-10 10:58:58)
“상투하고요 승려 복장이 필요해요. 또 치마, 저고리도 없어요. 도립국악원에 가서 좀 빌려 오세요!” 출연자 대표가 전화로 건넨 말에 꼼짝 없이 도립국악원으로 간다. 어렵사리 부탁해 상투와 치마, 저고리는 구하고 승려 복장은 구하지 못해 흰 광목의 바지, 저고리로 대신한다. 1994년 8월 어느날, “혼의 소리 그 고향을 찾아서” 프로그램의 촬영 준비 모습이다. 소동은 이뿐이 아니었다. 남원 현지에 도착해보니 빠진 것이 계속 나타난다. 짚신과 봇짐이 없다. 부랴부랴 길도 모르는 남원 시장을 해매고 다녔다. 짚신은 쉽게 구했으니 봇짐은 마땅치 않았다. 포목전에서 포대를 만들어 급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본 프로그램의 주요 장면을 촬영했다. 조선시대 후기 송흥록 명창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본인과 박남채 기자로 짜여진 제작진이 겪은 고충은 계속됐다. 나는 취재에서부터 출연자 교섭, 촬영 장소 물색 등, 모든 과정을 직접 챙겨야 했고, 박 기자는 ENG카메라 한 대로 영상과 음향을 현장에서 다 담아내야 했다. 짧은 지면에 표현키 어려운 고통 속에 판소리 원록 탐구라는 본래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는 못했지만 “혼의 소리 그 고향을 찾아서”는 제22회 한국방송대상 TV지역문화 부문 우수 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다. 솔직히 여러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된 작품이 상을 받아 그간의 노고를 보상받은 듯하다.
본인의 무능 탓도 있지만 지역방송의 한계는 제작의 한계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먼저 인력 부족이다. 이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AD나 보조원 없이 착수한 것이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쉽게 제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창작을 위한 고통이여야 하는데 잡무로 인한 것이다 보니 제작진이 허탈할 뿐이다. 나는 음악적 소양도 부족한데다 판소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판소리 관련 서적을 60여 권 읽었다. 남원과 고창 정읍 등 전라북도 곳곳을 찾아다니며 판소리의 원형질을 추출하려 했다. 혼자서 하다보니 곧 작품의 한계로 이어지고 자칫 객관성도 문제가 되는 게 당연하다. 적어도 AD나 자문가를 한두 명 두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촬영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박남채 기자의 영상 감각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여러 카메라맨이 동참해 다양한 영상을 엮어내는 것과 차이가 있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음향은 전문가 참여 없이 제작됐다. 제작진을 따라다닌 오디오맨은 장비를 나르는 포터맨에 불과하다. 촬영기자 지시에 따라 현장에서 오디오 레벨을 맞추는 데 급급하다. 더더욱 조명과 분장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제작진과 출연진의 상식적인 판단에 맡길 뿐이다.
다음에는 예산문제를 들 수 있다. 1994년 3월부터 11월까지 제작한 본 프로그램의 당초 예산은 2백여만원. 방송인이면 고개를 내저울 일이다. 기획 단계부터 사상누각 아니 부실 작품을 예고한 셈이다. 같은 방송국 내에서 조차 2년 전에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소요된 예산이 천 5백만원선인 것과 비교가 안된다. 지역의 상대 방송국이 8천여 만원을 들여 제작한 것과는 아예 비교의 대상으로 올리기도 어렵다. 또한 KBS 서울팀이 3억원인가 들여 판소리 특집을 기획한다고 하는데 대해서는 기죽일 일이다. 각설하고, 예산부족은 작품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선배 PD의 따끔한 경고는 사실로 나타났다. 출연진에게는 기자라는 안면으로 통하긴 했으니 쥐꼬리 만한 출연료를 드릴 땐 낯뜨거라 했다. 그나마 주요 출연자 몇 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출연료를 드리지 못했다. 우리 제작진은 절약에 절약을 거듭해야 했다. 취재과정에 있어서는 사비를털어 넣어야 했다. 촬영에 있어서도 불필요한 지출을 삼가고 풍찬노숙은 아닐지언정 삼류 식당과 여관을 찾아다녔다. 그래도 훌륭한 옥동자를 고대하는 정성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일주 명찬의 경기전 공연 촬영 때이다. 전주시에 요청해 노인 관객 2백여 명을 동원하고 한국전력 전북지사에는 크레인을 부탁했다. 노인들에게는 평소 문화 활동에 관심이 큰 보배와 호남식품의 협찬으로 소주와 음료를 제공하고 완산구청의 문경자 여사님이 안주 등을 마련했다. 크레인 기사에게는 박남채 기자가 사비로 식사를 제공했다. 프로그램의 성격상 전국 방송으로 내는 게 좋겠다는 결정에 따라 예산도 2백여 만원이 증액됐지만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셋째, 장비부족 또한 작품의 제약요인으로 등장한다. ENG카메라로 그만한 영상을 그려냈다는 데 대해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광각렌즈라든지 보다 뛰어난 카메라가 동원됐으면 상황은 더 달라졌을 것이다. 웅장한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폭넓게 그리고 폭포와 산세, 벌레 등 자연의 소리를 치밀하게 전달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편집 장비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뉴스에서 조차 서울은 현란할 정도의 편집기술을 과시 하지만 지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우리도 서울로 올라가서 일부 편집을 했지만 이질감을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지방방송=촌방송, 지방기자=촌기자, 이 등식은 방송인의 자질만이 아니라 장비의 열악성 등에서도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까?
마지막으로 지역 방송의 내적 지원체제이다. 행정과 기술지원 등 제반사항의 개선 필요가 절실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마만 관리직에 있는 선배가 제작진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선배의 자문자답에 맡기고 싶다.
방송대상 수상작품의 제작 과정을 중심으로 지역 방송의 제약점을 도출하려고 했다. 개인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으나 상당부분 일반화가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현학적인 분석보다는 사례 중심의 분석도 가치를 부여할 만하다 하겠다. 소위 지방화와 세계화, 복지화 그리고 수준 높은 문화생활 욕구 증대 등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역 방송의 혁신적인 환골탈태가 요청된다. 그것은 방송인뿐 아니라 지역 시청자의 몫이기도 하다.
나는 늘 방송인으로서 타이로우(tyro! 초심사)라는 자괴심을 느낀다. 매일 기사를 쓰면서, 리포트를 하면서 부족감을 겪는다. 어쩌면 시청자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처럼 냉정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흠있는 방송을 하면서 잘 봐달라고 하는 것이 언제까지 통용될지, 전문가로서 프로(professional)다운 자부심을 느낄 날이 언제 올는지, 아니 영원히 못 올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