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9 | [저널초점]
저널이 본다.
약속위반과 세대교체론
글/천이두 문화저널 발행인
(2004-02-10 10:34:45)
2차대전 당시 패전한 프랑스의 대독항쟁 세력의 구실점이었던 드골 장군은 전쟁이 끝나자 나치스가 유린하고 물러간 조국 프랑스로 당당하게 개선하였고, 페허가 된 프랑스를 수습하여 새로운 정부를 세우기까지 임시정부 수반이 되었었다. 그러나 나치스의 음린으로 페허가 된 프랑스를 수습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으로 그의 임시정부의 관장하에 실시된 총선에서 그는 패배하였다. 그러자 그는 패배를 시인하고 국민들에게 정계 은퇴르 선언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 지 10년만에 프랑스 일대 위기를 맞게 되었다. 프랑스의 식민지 였던 알제리아가 독립하겠다고 들고 일어섰던 것이다. 당시의 프랑스 정권에서는 이 사태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국론이 극도로 분열되었다. 이 때 드골이 나타나서 자기에에 대권을 맡겨주면 단시일 안에 알제리아 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하였다. 과연 그는 헌법을 개정하여 프랑스 역사상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통이 되어 알제리아 문제를 해결하였고,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패전국 콤플렉스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프랑스를 재건하여 미영소등과 거의 대등한 강대국으로 격상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야말로 와신 상담 끝에 소원을 성취한 주인공이 된 것이다.
닉슨 역시 심각한 좌절 끝에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런닝메이트로 부통령이 된 닉슨은 아이젠하워에 이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후보인 케네디에게 패배하였었다. 그런지 얼마 후에 그는 주지사에 출마하였는데 이 주지사 선거에서마자 패배하고 말았다. 그는 결국 국민들에게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하였었다. 그런지 몇 해 뒤에 그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 지명되었을 뿐 아니라 선거에서도 승리하여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재임 기간 중에 이른바 핑퐁외교라 불리우는 중국과의 국교를 트는 일에 성공하기도 하였으나 임기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사건으로 하여 결국 도중 하차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으니 과연 영욕의 무상함을 실감치 않을 수 없다. 3년 전에 대권에 도전하였다가 패배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대중 씨가 지난번의 6.27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정계복귀를 표명하고 신당 창당에 나서자 온 국민은 너나 없이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대중 씨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과연 그가 차질 없이 거국적인 정당을 만들어서 당당하게 부상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그를 기피하는 쪽에서는 그가 시도하는 신당 창당이 앞으로의 정국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 것인가를 예의 주시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언론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정계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 위반이라는 것이다.
92년 정계은퇴 선언 이후 최근의 신당 창당에 이르기까지 그는 몇 단계의 변모 과정을 거쳐 왔다. 이태재단을 만들고, 통일문제에 언급하면서 조금씩 정치적 발을 하기 시작하였고, 지난 6.27선거에서 마침내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실상의 정계복귀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의 태도는 조금씩 변해갔다. 이런 과정 역시 그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쪽에서 는 좋지 않게 보았던 것이고.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른바 약속위반론이 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를 마치 부도덕한 약속 위반자처럼 몰아붙인 일부 얼런의 그동안의 태도는 온당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정치자가 어떤 상황에서 역부족이란 판단하면 은퇴할 수 있는 것이고. 다시 상황이 호전되었다 판단하면 복귀하여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드골과 닉슨의 경우를 보아도 그들이 정계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다시 정치 일선에 뛰어들었다고 해서 그들은 부독한 사람들이라 매도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약속위반론과 더불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말이 세대교체론이다. 즉 세 번이나 대권에 도전하여 실패한 터에 이제는 참신한 다음 세대에게 활동 무대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여권이나 일부 언론 뿐 아니고 최근에는 5.6공 시절의 학생운동을 주도 했던 일부 젊은 세대에서도 터져나온 주장이다.
이 세대교체론은 그 동안 숱하게 들어온 말이다. 가령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3공 세력이 으뜸으로 내세운 구호가 구악을 일수하자는 것이었다. 썩은 구정치인들은 물러가고 참신한 새 인물들이 나라를 맡아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악을 일소하겠다던 그들은 무력으로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신악’을 빚어냄으로써 그 뒤에 민주 발전에 치명적 장애 요인이 되었었다. 또 3공 치하에서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야당의 지도부를 겨냥하여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내걸었던 김영삼 씨는 고회를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서 겨우 대권을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세대는 물러가라 하지만, 구가 반드시 신보다 나쁘다 할 수 없고, 신세대가 모든 면에서 반드시 구세대보다 낫다 할 수도 없다. 구세대 가운데에도 어려운 시대에 목숨을 걸고 민주 발전을 위해 싸운 사람이 있을 것이며, 신세대를 자처하는 인물 가운데에도 민주 발전에 역행하는 궤적을 쌓아온 인물이 얼마든지 있다. 이런 차별서응ㄹ 무시한 도식적 세대교체론은 결국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세대교체는 특정한 몇 사람의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뜻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김대중 씨가 이끄는 신당이 창당을 앞두고 있다. 이는 하나의 기정사실이다. 김대중 씨의 이런 결단이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닌가는 명년의 총선을 통해서 드러나는 민의로써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