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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9 | [문화시평]
만남과 이별의 정서, 민족애로 승화시킨 무대 95 한민족 예술제를 보고
글/이혜희 전북대교수 무용과 (2004-02-10 10:04:38)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있었다. 카자흐스탄, 우즈벡스탄, 중국, 러시아, 캐나마, 미국 ,스패인, 일본 등지에서 고국을 찾아온 동포 예술인들과의 만남은 내내 따뜻하고 가슴 떨리는 설레임을 갖게 했다. 새로운 문화 체엄이었다. 지난 21일 오후 7시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린 95 한민족 예술제는 그렇게 설레이는 마음으로 관객들을 맞이했다. 출연진 만도 70여 명, 춤추고 노래하고 연극까지 다양하게 엮어낸 이날 무대는 민족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이번 예술제는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주최하고 서울의 창무원이 총ㅈ관을, 그리고 지방공연은 각 지역 문화단체들이 맡아 꾸렸다고 한다. 한민족 예술제는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2년 전에 서울에서 처음 열렸고 이어 올해가 두 번째 자리인 셈이다. 그러나 지방의 공연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상대적으로 지역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그날 공연장을 찾아온 관객들의 분위기는 그러한 관심의 폭을 드러내 주기에 충분했다. 출연진 마다에 보내진 따뜻한 박수갈채며 환호는 두 시간이 넘는 공연 무대에 팽팽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비둘기 가무단의 ‘봉숭아’, ‘카르멘’ 조선극장의 ‘아리랑고개’ 고려인예술단의 ‘종달새’, ‘봄의 춤’ 중국 할빈시 조선 민족예술단의 ‘칼춤’, 연뿌리 매고 가는 처녀‘ 우지벡스탄 신갈리나의 독창 중국 북경 중앙희극원 최승회 무용연구반의 최승희 부채춤과 기본무 러시아 스페틀라나 최와 블라드미르 김의 발레 듀엣, 캐나다 유인희의 ’그대 있는곳‘ 미국 이혜경의 ’텅민 칠판‘ 러시아 스페틀라나 최의 ’빈사의 백조‘ 일본 그룹 여명의 사물놀이 스페인 호세리의 기타연주와 주리의 춤 등 그리고 전주 김경주 무용단의 ’소고춤‘까지 20여 개의 작품이 올려진 이날 공연은 광복 50주년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큰 관심이 모아진 것은 역시 최승희 무용 연구반의 부채춤과 기본춤이었다. 우리 예술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는 최승희는 타고난 재질과 예술을 향한 열정, 그 높은 경지의 예술세계, 자유로운 실험정신으로 후세대들에게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 예술인이다. 우리가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북으로 간 예술인으로 우리 예술사에서조차 오랫동안 지워져 있었던 그의 이름은 83년 이후 월북 예술인들에 대한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떠오르기 시작해 그의 생애와 예술세계가 조명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춤을 고스란히 볼 수 있기란 아직도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이미 그의 춤본은 상당부분 없어졌거나 변색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중국 동포들의 최승희 춤은 더욱 큰 기대와 관심을 갖게 했다. 그날 공연무대의 대부분 무용수들은 50대는 됨직해 보였다. 그들이 보여주는 춤사위는 예술적 기량으로 따지자면 매우 서투른 동작들이었지만 그 자연스럽고 몸에 배인 흥겨움은 진지한 감동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최승희와 이런저런 인연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 춤사위를 이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 그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서로 기억을 되살리며 춤본을 젖ㅇ리하고 후세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그 정신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가. 이번 공연 무대는 사실 예술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이란 것이 치열할 정신과 일치되는 사사으이 표현이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탕은 삶 그 자체에 있지 않겠는가? 필자는 그날 공연을 보면서 정신적 위안과 감동을 주는 예술 작품과 삶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놀이와의 차별성은 어디에 있으며 그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번 공연을 보고 더러는 학예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혹평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공연 무대는 예술성의 잣대만으로는 가늠 하기 어려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무대를 보면서 당황스럽고 때로는 이질적인 느낌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졸속함 때문에 연민의 정을 갖게한 작품도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무대는 그런 일상적인 차원에서 예술성을 논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고국을 떠나 있으면서 그것도 서로 이념의 국가에서 살아오면서 그나마도 민족적 정서를 잊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을 정성이 담겨진 것만으로도 우리는 예술성 이상의 감동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거기에 덧붙여진 미국교포 이혜경의 현대춤은 얼마나 신선한가. 나열식 작품 발표가 갖게 한계를 극복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번 한민족 예술제는 우리 동포들의 꿋꿋한 삶과 예술의 면면들을 전하기에 충분한 기회였다고 본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김경주 무용단의 소고품 신명이 어어져 함께 어우러진 그 뒤풀이 무대에서 우리가 과연 어떤 예술성을 거론할수 있었겠는가. 그날 너 나 할 것 없이 어깨르 잡고 물결치던 그 감동의 체험은 그 무서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분명 아쉬움은 있다. 어떤 축제나 단순한 행사의 성격을 내세우지 않고 예술제를 표방할만큼 이후에 이어지는 한민족 예술제의 자리는 예술성으로도 승화된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올해 무대처럼 같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감동스러운 체험은 한두 번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역사의식의 결험과 재창조에의 아쉬움 호남벌의 북소리를 보고 글/편집부 창극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공연 양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 되었으나, 중요한 것은 아직은 넘어야 할 난관이 더 많다는 점이다. 전북도립국악단이 광복 50주년을 맞이면서 내놓은 야심작 <호남벌의 북소리>는 어찌 보면 광복 50주년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었다. 장대한 스케일과 정성어린 연출 그리고 이 한편을 위해 봄부터 도립국악원의 모든사람들이 흘린 땀은 또 얼마인가. <호남벌의 북소리>는 1905년 을사 보호조역이 체결된 이후 호남의 유명한 의병장 임병찬의 의병 투쟁과 그 주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임병찬은 호남의 유생출신으로 한말 무너져가는 국운을 붙들고자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키고 끝내 애국순절한 대표적인 의병장수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임병찬은 동시에 동학농민혁명 동시에 그 혁명에 반대하면서 조선왕조의 유교적 이념을 지향했던 문제의 인물이기도 하다. 임병창은 분명 전북을 대표할 만한 훌륭한 의병장이지만 관군에게 총을 쏘지 못하고 차라리 의병군대르 해산해버리는 그의 애족하는 마음은 낭만적 민족주의에 기대고 있다. 그 감성적 민족주의의 뿌리는 대원군의 위정척사로부터 기인했고 결과적으로 한국 근대사의 업보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번 창무극<호남벌의 북소리>에서 말하고자 한느 것은 과연 무엇인가, 김승규의 원작은 임병찬의 생애를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역사극에 있어서 관건이되는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관점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더욱이 극의 후반부에 이미 십년 전 처형당한 농민군 장수 최경선을 살려내는 임병찬과 화해시키는 대목은 지나친 억지부리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화해 불가능이라고 역사가 말해 주었던 그 두계층의 화해는 자칫 역사를 왜곡시킬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창무극은 끝내 쏘지 않는 임병찬을(양반유생의 고뇌를)좀더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도 못한다. 좀더 트집잡기에 열중한다면 구성의 허점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임병창의 애국적인 열정에 비해서 종성리 주민들의 생존조건에 대한 고찰은 이 창극에서 그다지 애정있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 결국 그것은 의병전쟁을 주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극 전체에 투쟁의 이미지를 약화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시킨 듯한 봉남과 순임의 사랑은 끝내 그 설득력과 긴장감을 유지시키지 못했으며, 그럴바엔 차라리 사족과도 같은 사랑 이야기르 아예 제껴두고 묵직한 정통역사극으로 가는 편이 나을 듯했다. 이같은 원작의 치명적인 결함 속에 원작에 대한 연출의 창조적인 변용과 긴장과 이완의 밀도있는 구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 시대성의 한계가 좀더 정교하게 처리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창무극은 박병도 특유의 섬세하고 미적감각에 충실한 연출이 돋보였지만 지나치게 연극적 요소에만 집중되어 있었던 점은 창무극의 나아갈 방향과 관련해서 곰곰 씹어보아야 할 대목이다. 궁극적으로 창을 온전하게 살려내지 못하는 창무극은 한국적 연회양식의 대안일 수 없다. 또한 유장영의 음악은 진지한 실험성이 돋보였고 긴박한 투쟁과 지향의 이미지에 충실했지만 음악적 줄거리의 완급조절에는 무리가 뒤 따를 듯 보였다. 그것은 곧 관객들에게 감동의 리듬을 잃게 했다. 유장졍ㅇ은 끊임없는 음악적 실험과 연극음악의 성공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꽃신>에서 느껴졌던 것처럼 이제 그의 음악에도 분명치는 않지만 일종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한 편의 창극이 ‘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결정적인 역사관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노력과 무대 전체를 꽉 채운 스케일은 척박한 지역 환경속에서 그들 모두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 여름내내 휴가마저 반납해가면서 더위와 수많은 악조건들과 싸워낸 그들은 한편의 창극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그 튼튼한 허리들은 도립국악원만의 남부럽지 않은 자산이다. 도립이 아니면 누가 그 재기 발랄하고 한창 일할 낭이에 의욕으로 똘똘 뭉친 그들을 모아낼 것인가. 무대를 가득찬 느낌으로 만들어준 무용단 역시 여름내 흘린 담이 값없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아쉬움속에서도 가능성있는 배우들이 눈에들어오는 것은 이번 창극의 알찬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이 지역 창극의 수준을 형성하는 것이고 세계 시장에 당당히 들어설 수 있는 필요시간들을 앞당기는 요소들이다. 하드웨어가 튼실한 임병찬(주호종 분)이나 최익현(소주호 분)은 하기에 따라서는 대형 창극배우로 성장할 수 이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한정위(유재준 분)나 김제댁(김연분) 역시 넘치는 끼가 엿보였으며 봉남모(김미정 분)의 차분한 연기는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그러나 판소리의 방향이 창극으로 간다고 한다면 도립의 소리꾼들은 그시대적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눈치채야 한다. 어쩌면 명창의 시대는 가고 있는 멀티미디어의 시대에 배우로서의 성공의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명창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부담을 느끼고 극에 몰입하지 못하는 배우들이 관객들은 부담스럽다. ‘우리는 배우가 아니라 소리꾼’이라는 변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곧 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선행되어야 할 것은 연기보다는 우선 소리의 채화와 집중력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근본적으로 창무극은 한국적인 소리와 춤의 만남이다. 그러난 관객들에게 대사전달이 불분명하고 자막에 의존해서야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팔리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다섯바탕에 익숙해져 왔고 특별한 발성훈련의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 그 중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최경선(오진욱 분)의 연기는 안정감이 넘쳤고 비교적 정확한 발성으로 관객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이것은 어쩌면 그가 이런저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반 연극무대에 곧잘서면서 스스로를 훈련시킨 까닭인 듯 보였다. (그는 지난번 창작극회의 연극 <진흙>의 주연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적 창무극은 이제 지나간 시대만으로 소재를 하는 좁은 의미의 ‘전통성’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삶 속에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창무극이 언제나 고전과 지나간 시대 속에서 이야기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또한 매번 대형공연으로 올리는 연례적인 창무극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엄청난 예산을 투자했지만 그만큼의 성과를 얻어내는 방식은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작은 예산으로 실험적인 소극장 무대들을 끊임없이 만들어서 그 성과들을 모아내 대작으로 만들어 낸다면 공연의 질적 수준은 저절로 높아질 수 있다. 축적된 역량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세계 시장에도 통할수 있는 대작을 우리는 좀더 기다릴 용의가 있다. 원장이 공석중인 가운데서도 도립국악원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했다고 보여지고 그만큼의 성과와 과제를 그대로 안은 듯하다. 요구가 맣은 것은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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