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8 | [문화저널]
끄적거리기의 반복이 새로운 형태를 찾아간다
어린이 그림의 발달단계
글/이일청
(2004-02-10 09:34:14)
어린이 그림을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한 어린이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그 어린이의 표현단계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우리 애들은 충분한 그리기 활동의 기회가 있는데도 주어진 화지보다는 벽이나 책 속의 공간에 끄적거리기를 즐겨하는 것을 보아왔다. 우리 애들이 성장할 때 해왔던 그리기를 모으면서 이론과 실제의 큰 벽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애정 탓인지 내 자녀에게는 그리기 방법 제시가 잘 안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도 없는 어린이를 미술활동의 즐거움으로 인도하였지만 유독 내 자녀만은 뜻한 대로 하지 못했으며, 바로 내 자신이 경험했듯이 다른 부모들도 똑같은 상황을 느꼈을 것이다. 이때 느낀 가장 큰 것은 우리애들 스스로가 표현할 수 있도록 환경적 요인만 결정할 일인지 간섭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림지도에서 필요한 것은 인내심을 가지고 자유로운 표현이 되도록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기 목적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관심으로 어린이의 성장에 따른 표현의 발달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이에 맞는 그리기 지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1. 끄적거리기 단계(Scribble stage)
신체의 성장과 더불어 그리기의 발달도 발전해 나가는데 가장 초기의 끄적거리기는 절제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선 긋기로 강한 생명감을 느낄 수 있다. 대게 1~2세가 되면 손에 잡히는 것을 들고 땅이나 벽의 공간에 끄적거리기를 시작한다. 이때에 아무렇게나 마구 그린 선을 볼 수 있는데 종이 위에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담벽, 방바닥 등 닥치는대로 그려댄다. 이러한 행위를 심리학에서는 기능적 쾌락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 자체가 바로 목적이고 즐거움이다. 어린이가 무엇을 표현을 통해서 말하는지를 어른의눈으로 잘 알아볼 수 없는 끄적거리기지만 어린이의 표정에서 흥미를 가지고 열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부모님들은 어린이의 행동을 쓸데없는 장난으로 보고 제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끄적거리기는 계속되는 그리기 활동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때 끄적거리기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무분별한 끄적거리기와 조절된 끄적거리기로 무분별한 끄적거리기 이후에 조절된 끄적거리기가 나온게 된다.
1)무분별한 끄적거리기
이때에 그림은 난화, 낙서, 차가화, 소화라고도 하는데 이 시기의 선묘의 흔적의 마구 그어낸 듯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데서 나온 말이다. 선이 엇갈리고 뒤엉킨 실모양의 선묘나 툭툭 찍어내는 듯한 점은 통제되지 않은 자의적 표현이다. 표현이 무질서하고 방바닥 마루바닥에 그려진 어설픈 선들은 손동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로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준비가 안된 상태이다.
끄적거리기는 전세계의 어린이가 공통으로 성장한 한 과정으로 지나치는 통로이다. 비엔나의 한 가정에서 그 집의 어린이가 그린 끄적거리기가 응접실 벽면과 화장실 벽면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 13세였던 어린이는 계속적으로 그 벽면 공간을 이용해서 자신의 표현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그림을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는 개방적 태도에서 적극적 삶과 부모의 깊은 배려가 가슴에 다가왔다.
2)조절된 끄적거리기
끄적거리기를 계속하다 보면 어린이는 손의 움직임과 표현 사이에 관련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 기간은 어린이에 따라 그 시기가 다르지만 표현에 흥미를 가지고 열중한다. 부모나 선생님이 물어보면 혼자서 흥얼거리거나 자신있게 그 형체의 설명을 해댄다. 지도중에 재미있게 본 것은 처음 형체를 사람이라고 하더니 다시 다음날 물어보니 다른 형체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무작정 그린 후에 나름의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 눈과 손의 협응이 이뤄지면서 하나의 큰 성취를 어린이 스스로 맛 보는 것이다.
계속되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의 끄적거리기에서 이제는 자신의 의도한 대로 형태를 그리고 이름을 붙이기를 즐겨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부모나 교사가 어린이에게 계속 관심을 가지고 그림에 대한 설명을 스스로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어린이를 보면 더불어 나 자심의 마음도 순순한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처음 어린이 그림지도를 시작한 것도 원초적으로 근원적인 표현의 순수를 공부하기 위함이며, 어린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강한 생명력인 형태와 색채에서 나타나는 표현 공간의 독특함을 알게 되기 때문이었다. 끄적거리기의 반복에서 나타나는 형체에서 유의할 점은 어린이가 느낀 체험이 중요한 것이지 자꾸 목적적인 이름만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새로운 생각과 행동양태인 그리기 표현을 격려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근육조절과 눈과 손의 협응 능력은 여러번의 반복학습에서 발달하는 것이다. 선의 조절에서 기본형태를 표현하게 되는데 다양한 초기 기본형태는 대개가 인체의 골격을 그린듯한 끄적거리기가 우선적으로 진행된다. 동그라미 자체는 가장 원척적 형태가 되며, 아직 미분화상태로 무엇이든 내포하고 있다.
3~4세 어린이의 근육조절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향상되며 항상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추구해나가는 조절된 형태로 변화해나가며, 이 시기에는 특히 매직이나 싸인펜, 크레파스로 연필만이 아닌 표현재료의 사용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