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8 | [문화저널]
“예-에? 내 아들은 남학생인데요?”
문화저널(2004-02-10 09:11:03)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하여 교육개혁안이 발표될 때마다 성적도 우수하고 인성도 훌륭한 학생들이 교직에 매력을 느껴 이를 평생의 직업으로 택하도록 하려는 여러 가지 유인책이 제시되곤 한다. 이 유인책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은 ‘급여의 인상’과 ‘근무조건의 개선’이다. 분명히 이러한 메뉴는 성적과 인성이 빼어난 학생들을 교직으로 유인하는 하나의 현실적인 처방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처방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우리의 교육이 앓고 있는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최근에 겪은 경험 하나를 소개함으로서 그 이유로 대신하고자 한다.
약 두 달 전 나는 내가 재직하고 있는 전주교육대학교 학생들 약 70명이 모꼬지(흔히 영어로 'MT'이라고 부르는 것 으로 순수한 우리말로는 ‘모꼬지’라 부른다고 한다)라는 이름의 1박 2일 동안의 소풍(?)에 지도교수 자격으로 따라간 적이 있다. 여학생들이 약7,8명씩 일곱 개 조로 나뉘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관찰하고 있는데, 과대표가 찾아와 군대를 갔다온 학생들 서너 명을 포함한 예닐곱 명쯤되는 남학생들이 나와 자리를 함께하기 위하여 가까운 식당에 모여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대표를 따라 들어선 곳은 빙어회를 잘한다는 어는 식당이었다.
빙어회를 주문하고 학생들과 함께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식당의 주인 아주머니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하고 말은 건네왔다. 학생들 중 하나가 “전주 교대 학생들입니다”하고 대답하자, 그 아주머니는 “그러세요. 내 아들 하나도 전주에서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어요”하면서 말을 잇기를 “교수님, 그 애를 어느 과에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취직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하라고 하는데, 그 애는 뭐 철학과인가 사회학과에 간다고 해요. 공부도 잘하거든요. 교수님 어는 과가 취직이 잘되죠?” 나는 별 깊은 생각없이 “우리 교대에 보내세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의아하다는 듯 이 “예-에? 교대는 안되죠 그애는 남자거든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약간 방어적인 어투로 되물었다. “왜 남학생은 교대에 오면 안됩니까?” 그 아주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였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좀 잘아요. 그런 일은 여자나 해야지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요. 남자는 좀 스케일이 큰 일을 해야거든요”
나와 우리 교대 남학생들은 큰 멸치만 한 잔 민물고기인 빙어를 씹으면서 한동안 말을 잊을 수 밖에 없었다. 학생들이 매우 씁스레한 표정으로 어색한 침묵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어떤 명쾌한 논리를 찾아내어 그 아주머니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의무감을 느꼈다. 최소한 나에게 그 자리를 마련해 준 남학생들의 기분을 다시 돌려놓기 위한 어떤 위로의 말이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마땅히 할말을 찾지 못했었다.
그후 나는 ‘남자에게 어울리는 좀 스케일이 큰 직업이란 어떤 것일까?’ 줄곧 생각해 보았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일을 그만두고, ‘초등학교 교사라는 교사는 여자에게나 어울리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 왜 이토록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국민학교 교사라는 직업이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스케일이 작은 직업’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상당수있다고 짐작한다. 이러한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사회에서 과연 훌륭한 남학생이 초등교직에 진출할 수 있을까?
교직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전환이 급여의 인상이나 근무조건의 개선보다 교직의 질을 높이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사회에 널리 퍼진 초등교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나의 답을 쓰지 않고 이 글을 맺으려 한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는 독자들 각각의 몫이고, 나의 역할은 이 문제가 진지하게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무너지지 않을만큼 튼튼한 ‘삼풍백화점’을 지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건축 설계사나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만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부실하게 세워졌을지도 모르는 건물에 살고 있으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일생동안 살게 될 교육이라는 건물이 부실하게 지어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관심있게 지켜보고 정성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