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7 | [특집]
제37회 풍남제를 돌아보며
풍남제의 참뜻을 되살려야 한다
정리/편집부
(2004-02-05 16:47:25)
지방화의 파고가 드높다. 세계화가 단순한 이데올로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실제상황'의 힘을 지니면 서, 세계화와 지방화라는 얼핏 상방되는 듯한 두 가지의 지향이 서로 얽히고 때로 하나가 되고 있다. 더욱이 시끌벅적 치러졌던 4대 지방 선거의 여파는 지역구조의 변화에 가장 극적으로 영향을미칠 것이다. 지방화의 의미는 단순히 '내손으로 도지사를' 정도의 의미를넘어 일상생활 곳곳에 상당히 예민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그같은변화의 밑바탕에는 지역 사회를 바라보는 철학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향토 축제란 그런 의미에서 한지역을 문화적으로 대포하는 고유한 기능을 갖는다.
지난 5월 29일부터 6월 4일까지 7일간에 걸쳐 전주시 곳곳에서 열린 제37회 풍남제는 중요한 성과와 함께 많은 과제를 남겼다. 올해 풍남제 역시 다채롭고 풍성한 행사로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도내 최대규모의 시민축제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전주시가 주최하고 풍남제전위원회 가 주관 하는 형식으로 치러진 이번 행사에는 전국규모의 대회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전국서화백일대상전 전국대회, 전국남녀시조 경창대회, 전국장기왕 선발대회, 전국아마바둑대회 등을 포함 크고 작은 40여 개의 행사들이 선을 보였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선을 보인 전국한지공예대전과 무과급제 재현 등은 전주만이 가질 수 있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평을 받았다. 또한 작년에 이어 전야제 시가행진을 전라관찰사 행렬을 재현하는 길놀이의 거리축제 양식으로 바꿔내 입체적인 축제양상으로 펼쳐낸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올해 풍남제는 '아름다운 풍남제, 세계로 미래로'라는 주제를 갖고 구체적으로는 전통문화 발굴 계승하고, 광복50주년을 기념하며 시민의 참여를 통한 화합의 한마당을 마련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세계로 가는 열린 잔치'라는 작년의 주제와 이어져 이른바 세계화의 강력한 정책 슬로건이 지역의 향토 축제에서도 주제에서부터 녹아난 셈이었다.
향토축제의 가장 강력한 정체성이란 '지역성'과 '전통성'에 있으며, 그러한 근본적인 성격이 20세기 문명사회 속에서 현대화된 연회양식으로 새롭게 다음어지는 과정에서 대중적인 성격을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 풍남제 역시 그런 의미에서 '전주만이 가진 것'과 '전주시민이 같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이른바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라는 동시적이고 모순적인 과제를 갖는 셈이다. 이렇듯 서로 쉽게 어우러질수 없는 두 가지 과제는 거의 모든 지역의 향토축제에 부과되는 가장 커다란 어려움이다.
여기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향토축제가 단지 지역주민들의 축제마당으로 그치지 않고 그지역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풍남제의 경우 전주가 가진 문화적 유산을 하나의 경쟁력있는 상품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하게 제모습을 갖춘 향토축제로 정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제37회 풍남제는 민간주도로 치러진 첫 번째 행사에 걸맞는 몇가지 독특한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가장 호평을 얻었던 행사는 한지공예대전과 무과급제 재현행사였다. 전주의 전통 특산물로 면면한 역사를 지닌 한지가 이번 풍남제를 통해서 비로소 전주의 명물로 공식 등장한 셈이다. 무과급제 역시 시민들에게 참신한 볼거리를 제공했고 전주의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얻었다.
이번 풍남제가 지닌 가장 각별한 의의는 바로 민간기구인 풍남제전위원회가 주도한 첫 번째 행사라는 점이었다. 지난 86년에 구성된 풍남대전위원회가 그동안 전주시가 주도하는 행사에 보조적으로 참여하면서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면, 올해 초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면서 독립적인 행사주체로서 역할을 부여받은 후 첫 번째 치러낸 행사였다.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역축제가 대부분 민간주도로 치러지면서 향토축제로서의 이미지화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을 되새겨본다면 오히려 때늦은 감마저 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제전위원회가 확고하게 주관처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갖고 활동하기에는 여전히 그 주조가 대단히 미약할 수 밖에 없었다. 실질적으로 이번 풍남제에서도 전주시는 주관처 못지않은 제정과 인력지원으로 실질적으로 행사전반을 주도했으며 중심적인 실무역활을 해냈다.
이처럼 관과 민이 전주시의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에 같은 비중으로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긍정적으로 평가될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역축제로서 그럴듯한 놀이판을 만들어 놓고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의미있는 것은 그 놀이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하나하나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즉 기획단계에서부터 시민단체들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축제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무르익는 과정이야말로단순한 '보는 행사'로부터 같이 즐기는 행사로 만들어가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다소 불합리하고 번거롭다(얼마나 말이 많겠는가!)할지라도 민간주도의 참뜻을 살려나가는 진정한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그런 과정을 통해서 서로 다른 입장과 활동범위를 갖는 시민단체들과 전주시의 각 기관들이 서로 만나고 때로는 부딪치면서 진정한 화합의 의미는 다져질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해서 치러내는 시행착오라면 그것은 지역축제를 만들어가는 값진 노하후로 쌓일 것이다.
한편 전통문화를 고취하고 화합의 장을 이끈다는 풍남제의 궁극적인 성과는 지역에 존재하는 각 민간문화단체나 예술인들의 역량을 마음껏 자랑하는 과정을 통해서 지역의 문화예술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한 단계 성숙하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전주의 많은 문화단체들이나 예술인들이 일년 동안 풍남제를 위해서 기량을 가다듬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면 풍남제가 지역문화의 발달에 기여하는 바는 엄청나게 클 것이다. 어린이부터 팔순 노인들을 위한 다양하고 흥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전주시내 곳곳에서 알차기 펼쳐지고 적어도 축제기간 동안은 시내 모든 문화공간과 야외무대에서 지역 문화 예술인들이 전시와 공연이 이어진다면 , 이미 한물간 품바공연이나 유명 가수의 화려한 무대에 어찌 그 깊은 의의를 견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제전위원회는 보다 적극적이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간주도로 치러진 이번 풍남제 역시 예전의 고질적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데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였고, 특히 향토축제의 핵심적인 요소를 시민들의 참여라고 한다면 더욱이 불만스러운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우선 지적되어야 할 점은 거의 40여 개에 달하는 풍남제의 세부 행사들이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갖지 못하고 있는 점이었다.각각의 행사들이 하나의 원칙과 전략속에서 나름대로의 지역적 특성을매개로 배치되고 서로 관련되면서 종합적인 축제가 이루어지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지역적 특성을 매개로 배치되고 서로 관련되면서 종합적인 축제가 이루어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전주의 특성과 전통이라는 엄정한 기준을 가져야 하고 그 기준에 근거해서 과감한 살빼기가 필요했다. 요컨대 민간주도의 참뜻은 관이 지니는 타성적 사고를 벗어나 보다 공격적이고 과감한 기획을 통해서 시민들에게 보다가깝게 다가가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발상의전환이야말로 전국 각지의 향토축제들이 단순한 연례행사로 격하되면서 지역적 특성을 잃어버린 박제화된 축제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전문위원이나 자문단의 구성과 적극적인 활동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한가지 풍남제의 고민은 송기태 제전위원장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전토에 대한 충실한 고증과 놀이의 현대화라는 과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먼저 전통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즉 전통을 사실적으로 고증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전통문화 역시 수세기를 거치면서 그 시대에 맞게 새로운 양식으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완전한 고증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일수도 있으며 그의미를 찾기 어려운 점도있다. 예컨대 이번에 치러진 무과급제 제현의 경우 엄격하게 고증에 충실했다고 보기에는 학술적인 논란이 있지만 무과의 형식이 나름대로 재구서오디고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언론의 집중적인 취재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를 주었다.
같은 의미에서 전주의 단오 난장이 불발된 것은 아쉬움을 남겼다. 해마다 난장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갖가지 잡음과 문제점들이 충분히 고려된 것이었지만 제전위원회에 서는 보다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자신있게 홍보에 임했어야 했다. 그동안 난장의 많은 문제들이 노출되었고, 비판적인여론이 있었다면 난장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전통풍속과 놀이판이 결합되는 새로운 양식을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다.애초에 계획되었던 난장의 취소는 과정이야 어쨌든 전반적으로 제전위원회의 신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해마다 가장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축제를 실감케했던 행사분위기를 위축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올해의 경우 풍남제 기간과 4대 지방동시선거의 분위기가 시기적으로 일치되면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언론을 통한 홍보가 상대적으로 저조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어쟀거나 제전위원회 주도로 치러진 이번 행사는 큰 과실없이 무난했다는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재정확보의 문제라든가 고증과 전통발굴 등에 많은 애로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출발에 있어서는 나름대로의 모양새를 갖추는 데 성공 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미 상설기구화한 제전위원회로서는 풍남제의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새롭게 기구를 일신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많은사람들을 만나고 연구하면서 그소에서 참신한 기획과 아이디어를 가진 지역의 일꾼들을 설득해 나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원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