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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6 | [문화비평]
참는 미덕의 한계, 그래서 수명도 짧다
원도연 《문화저널》편집장 (2004-02-05 16:22:32)
몇해전 한국이 낳았다는 걸출한 탁구스타 현정화 선수가 소속회사의 화장품 CF에 출연하면서 유치원 교사로 분장해 화재를 모았던 적이 있었다. 예쁘장한 탁구선수가 노란옷을 입은 어린이들과 함께 어울려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CF는 과연 환상적이었는데, 광고를 기획했던 측에서는 여자라면 한번쯤 꿈꾸어 보았음직한 유치원 교사에 대해 선망과 강인한 한국여성의 이미지를 같이 고려했다고 했다. 그러나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이 CF처럼 그렇게 환상적이지만은 않다. 절대로. 유치원 교사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운선 전문성이다. 유아교육에 맞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 하며 거기에 특별한 자질이 요구된다. 아이를 사랑하고 올바르게 성장시키고자 하는 투철한 신념과 유아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그리고 유아와 바람직한 관계를 맺고 그들을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기술을 갖추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유치원 교사는 과연 전문직인가. 거기에 대한 대답은 '물로 그렇다'이다. 유치원 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켤코 아닌 것이다. 적어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정신만으로 유치원 교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비상식의 시대는 갔으며, 유치원 교사를 전문적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상당히 무르익었다. 더욱이 서양식 유아교육이론이 도입되고 유치원마다 각기 독특한 교육론으로 무장한 상황에서 유치원 교사는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전문직 여성으로서 유치원 교사에 대한 처우는 그 전문성이 발휘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현재 유치원 교사를 배출해내는 기관은 4년제 대학과 2년제 전문대학, 그리고 각급 선교신학원 등이다. 전문대학 이상의 교육과정을 거친 유치원 교사들은 일단 대단히 정상적인 자기투자를 거친 셈이다. 그러나 유치원 교사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1-2년에 불과한 실정이며, 그 보수와 대우는 상상 이상으로 열악한 실정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교사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이렇다할 법적인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몇 년전만해도 유치원 교사들이 턱없는 월급을 받거나 심지어 원장의 가정부 취급을 받는 사례가 빈번하게 사회문제로 대두되곤 했었다. 적어도 지금의 정상적인 유치원에서 그같은 문제는 거의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물론 지금도 대다수 영세유치원의 경우 이러한 문제는 여전히 상존한다.) 우선 가장 주된 문제는 원장들로부터 비롯된다.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손쉽게 유치원을 설립하는가 하면 원장마다 현행 법규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주의 XX유치원은 교사를 채용할 때 교회다니는 사람은 안되고(수요일날 일찍 가야 하니까), 자취하는 사람 안되고, 애인있는 사람 안된다(시간을 많이 뺏기니까)는 전근대적인 발상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경우조차 있다고 한다. 어떤 경우는 경력교사를 채용하면서 다른 교육프로그램의 경력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억지를 부리기도 하며, 교육청에 대한 임용보고절차를 교묘하게 악용해서 유치원 교사의 경력과 실질임금을 깎아내리는 상식밖의 일도 벌어지는 곳이 유치원 교육현장인 것이다. 물론 유치원 원장들이 다 그런 것은 물론 아니고 또 모든 문제들이 절대적으로 원장들 때문만은 아니지만 실제로 현재의 형행법규는 유치원 교육의 거의 모든 권한을 원장들에게 위임해 놓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감독기능은 현저하게 약하며 나아가 국가는 적극적으로 감독할 의사가 없고 교사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적인 조건이다. 전주시내 유수의 한 유치원 원장이 4년제 대학을 나온 정식교사에게 적용되는 9호봉 월급에 대해서 8호봉을 적용하겠다는 일방적인 통고를 한 이후 교사들이 교육청 담당장학사에게 그런 경우 어떻게 되는가를 물었더니 "그것은 원장의 인격문제"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유치원 교육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취재를 위해서 만났던 유치원 교사들과 약속시간은 저녁 10시였다 3∼4시면 원아들이 귀가하는 유치원 일과에서 저녁 10시까지의 시간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나머지 시간에 유치원 교사들은 다음날의 수업을 준비(준비는 그저 책이나 일고 자료나 챙기는 수준이 아니다)하는데 씌여진다. 그 수업준비는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유아교육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경우 입맛에 맞는 교구가 준비되어 있을리 없고 따라서 '창의적'이고 '기발한'교구들이 직전 제작되는 시간이다. 더욱이 거의 일주일이 한두차례씩 반드시 있기 마련인 행사(좋은 유치원일수록 행사가 많은 법이다?)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온갖 기발한 착상과 갖가지 환경정리가 요구된다. 심한 경우 행사준비를 하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원장의 입장에서 항변이 없을 수 없다. 자신들이야말로 한국교육의 사각지대를 책임지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지(엄청난 적자-적자라고!-를 감수하면서)그리고 유아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름대로 훌륭한 철학과 헌신성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유아교육을 통해서 돈을 번다는 생각은 말아야 하며, 더욱이 헌신과 봉사정신이 없는 교사는 자격이 없다는 지순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유아교육의 삼위일체인 유아와 교사와 학부모 모두를 책임지는 입장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학부모들을 직접 불러모아 교육을 시키는 과외활동도 마다하지 않으며, 효도를 그르치기 위해서 어머니 생일잔치까지 챙겨주기도 한다. 당연히 어린 유치원 교사들은 예절교육에서부터 직접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대학생 한면 가르치는'부담에 비한다면 유치원 교사에게 주어지는 처우는 턱없이 낮다. 교사에 대해서 정산적인(?) 대우를 해주는 경우 월급여는 9호봉을 기준으로 본봉ㅇ과 수당 그리고 급량비를 포함하여 55-70만원 가량에 이르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여전히 유치원 교사들은 지극히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고 정구과정을 거치지 못한 교사들의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믿지기 않는 이야기지만 어떤 유치원의 경우는 원아가 학기중에 중도 탈락하면 그 책임을 물어 교사의 월급을 5만원씩 깎는 경우도 있다 더욱이 이러한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교사에 대한 비인격적인 대우는 교사들에게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다. 여기에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학부모들의 태도다. 대개의 경우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게 되면 학부모들은 대부분은 원장을 바로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직접 원아들을 담당하는 교사는 완전히 소외되고, 결국 문제가 발생한 과정보다는 결과에 대한 책임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비싼 원비를 낸 학부모나 원장 누구도 교사의 편이 되지는 않으며, 교사들은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가 된다. 그밖에도 유치원 교사를 둘러싼 장애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유치원 교사들의 권위를 앞장서서 지켜주고 권리를 가르쳐 주어야 할 대학에서는 오랜 교육과정을 마치고 현장에 가는 교사들에게 잊지않고 해주는 이야기가 '참아라!' 는 것이다. 교사를 배출하고 그들을 현장에 취업시켜야 할 대학의 입장에서는 양자에 대해서 중립과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다. 상대적으로 기가 센 유치원 원장들에게 섣불리 맞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유치원 교사를 둘렀나 불리한 상황들은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어떤 유치원 교사도 '시집을 가서도 이 일을 계속하겠다'는 경우는 없었다. 대개의 경우 대학을 갓 졸업하고 유치원 경력 1-2년만에 몇군데 유치원들을 더 돌아다니고 결국은 시내 학원이나 병설유치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가 된다. 유치원 교사에 대한 어떤 보호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행복을 느끼는 유치원 교사들이 아이들이 다 가고 없는 유치원에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때, 그리고 솔레임속에서 아이들을 기다릴 때, 유치원 교사들의 자아의식이 확고해질 때 유치원 교육의 질은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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