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6 | [문화와사람]
어머니와 건빵
이태동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2004-02-05 16:16:14)
이번호 〈여성과 문화〉는 조금 특별하게 꾸며졌다.
여기 실린 글은 전북대학교 교육과정에 개설된《여성과 사회》라는 강좌중
"내가 겪은 여성문제"라는 주의의 리포트로 제출된 글이다.
이 리포트는 특별히 문제의식이 출중했다거나 여성문제의 본질을
적중시켰다든가 하는 의미라기 보다는 한국여성의 '남아'에 대한
영원한 과제를 한 남학생의 애정어린 눈으로 재미있게 써 내려갔다는 점에서
소개하기로 했다.
군대 입대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이등병 계급장 하나가 하늘같이 높아만 보일 때가 있었다. 하루 세끼 식사시간만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던 시절, 가슴깊은 곳으로부터 떠오르는 얼굴은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 대학민국의 군인이라면 깊은 밤 고단함과 그리움에 북받쳐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한번쯤은 불러본 이름이다. 어머니께서는 두 아들들을 함께 보내시면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철없는 막내가 눈물을 훔치며 훈련소로 뛰어들어 갈 때에도 결코 눈물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낯설기만 한 훈련소에서 흙먼지, 진흙탕 속을 구르며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배고픔과 그리움에 힘들어하며 나는 이토록 고된 전장에 눈물 한 방울 없이 아들을 보낸 어머님이 매정하고도 원망스러웠다.
어머니께서 한 작은 시골마을의 딸만 셋인 집안에 맥내로 태어나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외할머니께서는 좋은 남편을 만나셨지만 아들의 없으셔서 늘 미안하고 속상해 하시며 평생을 '아들'이라는 그늘속에서 죄인처럼 살으셨다. 할머니께서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꽃놀이라도 다녀오시는 날이면 언덕이 마중나온 다른 아주머니들의 아들들을 보시고 대청마루에서 엉엉 소리내어 우시곤 했다.
그런 외할머니의 막내딸이셨던 어머니는 다른 친구들의 오빠가 군대에서 휴가나오며 가져오는 '건빵'이 그렇게 부러워 보이셨단다. 먹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어린 막내딸의 눈에는 '건빵' 그 이상의 부러움으로 다가왔고, 철없는 막내딸의 '건빵'투정으로 할머니의 가슴은 또 한번 메어지곤 했다. 건장하고 듬직한 오빠들이 가져다 주는 '건빵'이 어머니의 여린 갓므에 응어리로 남으셨다면 푸른 군복을 입고 어머니의 품에 안긴 다른집 아들들은 할머니께 평생 '한(恨)으로 남으셨으리라.
남자들에게는 그저 젊어서의 추억거리 정도로 남는 '논산 훈련소'가 아들이 없으셨던 할머니께서는 평생 가보시지 못하고 가슴을 삭이셔야 했던 '한(恨)' 많은 장소였던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결국 건강하게 자라서 군에 입대하는 손자들을 보지 못하시고 내가 입대하기 한 해전을, 당신이 사랑하셨던 막내딸의 품안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그후 나는 난생 처음으로 가족의 곁을 떠나 친척 형들의 허풍섞인 이야기속에서만 듣던 휴전선에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일년여의 시간을 보낸뒤에야 '첫휴가'를 얻어 가슴 졸이며 그리워 했던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녘에야 도착한 막내아들을 어머니께서는 뜬눈으로 기다리고 계셨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께서 어린시절 그토록 부러워 하시면서도 가질 수 없었던 건빵봉지를 안겨드렸다. 두 아들들을 한날 한시에 군대에 보내시면서도 눈물을 보이시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철없는 막내아들이 까까머리로 눈물을 훔치며 훈련소에 뛰어들어 갈때에도 환한 미소로 보내 주셨던 어머니께서 결국은 건빵봉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고 말았다. 어머니가 흘리셨던 눈물은 어머니의 눈물일까? 어머니의 어머니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우리 모두의 아들없는 어머니의 눈물이었을까?
해마다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의 산소에 성묘를 간다. 아들이 없는 자리를 딸들과 그 사위들 그리고 손자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유달리도 사위들과 손자들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주셨던 할머니, 평생을 아들이 없다며 죄인처럼 살다가신 할머니, 지금도 어머니는 할머니의 묘지 앞에만 서면 "어머니 여기 어미니 아들들 왔어요"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시곤 한다. 아들이 없어서 가슴을 삭이시며 한(恨) 많은 인생을 사셔야 했던 할머니, 오빠가 없어서 서러움 많은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던 어머니, 과연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가 2대에 걸쳐 겪어야 했던 한(恨)과 아픔은 아들을 낳아야만 풀어지는 것이었을까? 도대체 지천에 깔린 수많은 아들들이 무엇이 그리도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