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5.5 | [문화저널]
박남준시인의 온 편지 병아리에게 구속당하다
박남준(2004-02-05 15:49:17)
마음 쓰지않고 되는 일은 없는 듯 합니다. 병아리를 몇 마리 구해다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외딴 산중 적적하기도 해서였습니다만 따뜻한 봄날 어미닭이 노오란 병아리떼를 데리고 다니는 풍경, 한번 생각해 보아요. 먹이를 쪼아주며 등을 태워주고 그리고 말입니다 어미 품안에 몸을 묻고 고개를 빠끔히 내미는 앙증맞은 병아리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겠습니다.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간 뒤에 미나리 파란싹이 돋아 났어요' 라는 어린 날의 노래도 있지않아요. 처음 며칠동안 구구구구 모이를 줘가며 길을 들였습니다. 어미닭이 a알을 품어서 깨어난 병아리들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들은 기계로 부화한 것들이어서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제가 어미닭의 대신인 셈이지요. 아침 낮으로 밖에 내놓으면 타고난 것인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풀도 뜯어먹을 줄 알고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자 처음 가져왔을때와 달리 제법 생기를 차리고 나를 알아보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겁이 많은 것인지 아직 행동반경이 넓지 않아서 저물녘이면 모이를 주며 작은 상자에 담아 방문옆에 두었습니다. 닭장을 만들어 줘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벌써 몸 움직임이 날쌔어져서 잡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가 오려는지 날이 꾸무럭거리는 날이었습니다. 닭장을 만들고 있는데 친구들이 찾아와서 선운사 동백꽃 보러가자고 했습니다. 집 잘보고 잘들 있어라. 한웅큼 모이를 주고 선운사에 갔습니다. 지금이 동백이 피고 눈물처럼 뚝뚝 지고 있을테지만 선운사 붉은동백 아직 멀었다 여겼습니다. 한 보름 당당 멀었다 여겼습니다. 진홍굴을 지나 도솔암 마애불이 이르니 햇빛 바른 켠으로 길게 뻗은 동백가지, 어쩌면 저렇게도 어여쁠까. 아미고운 새색시 시집가는 날, 연지곤지 환하던 그 모습같은 송이송이 동백꽃 피었습니다. 그 동백꽃 한송이 담아전주에 왔습니다. 대포집에 들러 동백꽃 생각하며 붉게 취했습니다. '날 버리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떠나실거예요' 꽃처럼 붉게 취해서 노래도 불렀습니다. 그날밤 저 늦게 돌아왔습니다. "어디 내새끼들 집들 잘보고 있었냐?"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병아리들이 모여 있을만한 곳을 살펴 보았더니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부리나케 손전등을 찾아 집뒤란으로 헛간으로 다가섰을 때입니다. 무엇 팔뚝만한 것이 휙 달아나길래 얼마나 놀랐는지, 살펴 보았더니 목덜미가 찢겨진채 아 그 병아리 목언저리에 흐르는 동백같은 꽃피. 추적추적 봄비 내리는 밤 닭장을 만들었습니다. 제 잘못이었습니다만 속이 어찌나 상했는지 뭐라고 뭐라고 dr도 욕도 해댔습니다. 반도 안되게 살아남은 세 마리, 이제 애써 가두지 앟아도 날저물면 제집을 찾아 오릅니다. 아직 문을 걸어주기는 해야지요. 그리고 아침이면 열어주어야 하고요. 멀리 떠날 일아도 생기면 벌써 걱정거리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다는 것, 병아리를 키우며 많은 것을 배웁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