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5 | [문화칼럼]
벗는 예술에 대한 이해
이규현 KBS 전주방송총국·PD
(2004-02-05 15:27:47)
영화나 연극에서 배우의 벗는 문제로 떠들썩 할 때마다 나는 해수욕장 얘기를 한다.
처음 우리나라에 해수욕장이 생기고 수영복 차림의 여성이 남을 의식하지 않은 채 바닷물 속을 자연스럽게 드나들면서 즐기는 모습을 TV에서 본 보수적인 사람들 특히 노인들은 "망측해라. 미쳤어! 외간 남자앞에서 젖탱이와 허벅지를 드러내다니... 이젠 우리나라도 망할 날 멀지 않았어!"
그때 보수층과 노인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우리나라는 지금 망했나?
망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 당시 사람들이 걱정을 한 것은 수단이었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수욕장에 가는 목장이 건강을 위해서라면 수영복을 입는 것은 건강을 위한 수단이다. 해수욕장에 가면 건강에 해로운데 많은 사람들이 간다면 그 나라를 망할 수도 있지만 건강을 위해서 수용복을 입는 것은 분명 나라가 망할 일이 아니다.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은 변하게 돼있고 그 수단이 목적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변하는 수단은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셋밖에 되지 않는 우리가족은 가끔 서로 다른 음식을 먹을 때가 있다. 나는 된장찌개와 밥을, 아내는 빵과 커피를, 아들은 우유와 플레이크 종류를. 밥을 잘 먹지 않는 아들이 어렸을 때는 된장, 고추장, 김치를 잘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강조하곤 했지만 요즘은 아들이 생각보다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어 먹는 것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있다. 간섭하지 않는 이유는 꼭 김치와 밥만 먹어야 건강하다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나 연극에서 배우가 벗는 장면은 전체중에 일부분이며 그 영화나 연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벗는 장면이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라면 벗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의식수준 때문에 지금은 벗을 수 없다하더라도 5∼10년 뒤에는 벗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만일 미래에는 벗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요즘에 벗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그 영화나 연극이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식수준이 낮기 때문에 벗어서는 안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는 영화나 연극에서 나체로 연기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기준을 두 가지로 삼는다.
첫째는 꼭 나체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내용 즉 나체가 아니면 내용전달이 어렵냐는 점이다.
둘째로 나체연기중에는 성적이 것과 연관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성과 연관해서 고뇌가 있느냐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성개방을 표현하기 위해 나체연기가 불가피할 경우 단순한 흥미위주의 나체연기냐 아니면 성개붕 후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내용이 담겨있느냐는 점이다. 만일 두가지에 부합되지 않으면 나는 비윤리적인 작품이라고 평한다. 왜냐하면 성은 종족보존 측면에서 보면 목적이고 남녀를 부부로 맞어주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측면에서 보면 최고의 수단인데 일시적 쾌락과 성욕을 위해 개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벗는 연기가 청소년의 정서를 해치는 퇴폐적인 것이라고 평가하고 경우도 있는데 청소년을 기준삼어 평가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청소년 대상이 아닌데도 작품가치의 기준을 청소년의 정서에 두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또 어떤 경우에는 청소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이해를 못하는 기성세대가 청소년을 빙자해 퇴폐적이라고 평가하는데 이 또한 잘못된 평가다.
유아문화, 청소년문화, 성인문화가 서로 다르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성인문화를 청소년이 공유할 수 있는 제도가 잘못된 것이지 성인문화가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지금 벗는 문화속에 살고 있다. 영화, 비디오, 광고, 잡지… 예술을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벗고 벗기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젠 벗는 것을 퇴폐적이라고 보기보다는 아름답다고 봐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퇴폐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려면 입고 벗는 것이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벗는 문화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진정한 의미의 현대인이란 현대의 문화예술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을 뜻한다면 우리는 현대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고, 벗었다는 한가지만 보고 해수욕장 초기에 보수적인 또는 노인들이 표현했던 것과 같은 표현은 하지 않아야 예술이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