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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4 | [세대횡단 문화읽기]
견고한 신화, 깨지는 유리구두
여성문학연구모임 (2004-02-05 15:16:20)
현대의 십대들은 생각하고 싶은 것보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더 많다. 요즈음 서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다이제스트판 고전소설들, 시들을 수능시험의 자료일 뿐 그들에게 생각을 하게 하거나 의식의 분뇨가 되어 주지는 못한다. 그들은 생각을 하는 것보다 봐서 즐겁고 들어서 현실을 잊게 해주는 것을 훨씬 더 유익하다고 느끼고 있다. 학교란 그들에게 입시를 위해 존재할 뿐이고 교사들과 부모들은 출세주의와 경쟁의식을 넘치도록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쌓이는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다. 청소년들의 유일한 낙은 텔레비전과 교사와 부모들 몰래 빌려다 보는 만화책, 비디오들 뿐이다. 그들의 문화는 순간에 피로를 풀 수 있는 자극적이고 숨가쁜 방식이 될 수밖에는 없다. 그리하여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일본문화가 그들에게 달콤한 밀회감을 느끼게 하고 빠른 템포의 랩이 폭발적인 록이 그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것이 당연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현실, 그들을 숨가쁘게 하고 절망적이게 하는 현실을 잊고 좀더 현실을 잊고좀더 환상적이고 자극적인 세계로 의식을 돌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빠지고 싶어하는 문화, 구체적으로 읽고 싶어하는 책들을 한 번 짚고 넘어가 보자. 기성세대들이 그토록 '요즘 애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라고 걱정하는 청소년들의 의식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걱정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청소년들의 문화는 보고 듣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 그들은 생산적이고 그들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없다. 소비하고 상상하고 그야말로 시물레이션 놀이(흉내내기. 눈속임)만으로 여가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진짜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심어주고 그들은 이것이 진짜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한 시물레이션 놀이, 책읽기가 그들에게 진실을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십대 여학생들의 책읽기 경향에 대해서 언급해 보자면 그들이 주로 읽는 책은 소위 하이틴 로맨스라 일컬어지는 미국 삼류 소설과 이름도 알수 없는 시인들이 다발로 써내어 미사 어구로 가득찬 사랑의 시집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는 벌어지지도 않는 학교 안에서의 로맨스로 가득찬 만화들 거의 모두 일본 만화들이다을 보고 피로를 풀고 있다고 그들은 느끼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것에 그들에게 더한층 피로를 주게 될 것같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부닥치는 현실들은 그것과는 그다지 아니, 전혀 가깝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십대 여학생들이 그렇게 죽어라 읽어 대는 하이틴 로맨스 무엇인지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지금 여학생들 중에 이 책을 한 권이라도 읽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명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먼저 판형이 보통 책의 절반 정도도 안된다. 그리고 무척 얇고 내용도 단순해서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한 시간, 빨리 읽는 사람은 삽십분이면 단락 하나하나, 문장 한 구절까지도 외워 버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비슷한 책들이 오백 권은 넘게 시중에 나와서 여학생들의 그 자그마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핑크 빛으로 그들을 부르면서 말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꾀죄죄한 인간은 아무도 없다. 모든 남녀가 핸섬하고 섹시하고 멋있다. 대충의 줄거리들을 살펴보자면 돈 많고 매력적인 남성이 우연한 기회에 가난하지만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또 매력적인 여성을 만난다. 그리고 육체적인 욕구에 먼저 이끌려 급기야는 사랑에 빠지지만 그리 순조롭지만도 않다. 엎치락뒤치락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결혼을 하게 되어 그녀의 가난에서 아름답고 섹시한 그녀를 구출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의 유형을 이룬다. 그리고 또다른 유형의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둘다 부유하고 매력적이지만 언제나 뭔가 부족한 것 같이 생각되어 허무하던 남녀가 서로 한 눈에 반한다. 그들 또한 먼저 육체적으로 관계를 맺고 또 줄다리기를 하다가 삼각 관계가 생긴다. 그러나 결국에는 의지가 박약하고 보호를 받고 싶어하는 여성이 강인한 남성에게 굴복하게 된다. 그녀나 남자나 그것을 사라잉라고 생각하고 그녀는 그의 발밑에 엎드려 사랑의 애무를 구하게 된다. 여기서 정말 심각하게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엄연한 성폭력이나 성희롱의 사건들이 끊임없이 미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하이틴 로맨스는 남성 우월적인 시각 속에서 마치 여성이 그러한 남성의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태도들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듯이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묘사들ㅇ느 십대의 여학생들에게 충분한 사고의 혼란을 줄수 있다. 여성은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전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고 남성들은 그에비해서 여전히 현실을 정확하게 읽어 낼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럴까? 이 또한 남성 우월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 삼류 소설들은 기특하게도 너무 유사한 공통점들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들이 모두 신체적으로 발육이 뛰어나고 매력적인 점이다. 그리고 남녀의 유형을 살펴보면 여성은 처음에는 자주적이고 주관이 뚜렷하고 좋은 직업을 가졌지만 한 남성을 만나면서 그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남성은 하나같이 강인하고 카리스마적이며 엄청난 부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란 듯이 묘사해 주면서 사랑이란 서로를 이해하고 등등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약한 여성이 강한 남성에게 굴복하고 그들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사뭇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은 그들의 매력적인 신체로 남성을 굴복시킬 수도 잇다고 속삭이고 있다. 못생기고 짧은 다리의 여성들은 결혼할 자격도 없다. 적어도 그 삼류 서설 속에서는 말이다. 또 한가지 정말 불행하게도 그 소설들은 모두 백인 우월주의에 후줄근하게 젖어있다는 것이다. 오백권이 넘는 이야기들속에서 남녀 주인공들은 모두 부유한 백인이고 유색인종들은 그들의 하인이나 가난한 마을 사람, 그리고 악한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는 백인들만이 선하고 우아할뿐이다. 유색인들이 유색인을 경멸하게 되는 것이다. 제대로 세상을 보기도 전에 말이다. 여하튼 이 책의 진짜 중요한 문제점들은 그 어이없는 내용들이 우리의 십대 여학생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 준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속에서 길들여져 온 여학생들에게 남성의 권위로 다가온다. 남성을 부끄럽게 해서도 안되고 민망하게 해서도 안된다. 항상 아버지에게 오빠에게 순종해야 하며 남동생에게는 양보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남성들은 그리 강하게 보이지 않는다. 카리스마적이지도 않고 강인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 삼류 소설 속의 남성은 완벽해 보인다. 남자가 이정도는 되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남성이라면 발이라도 씻어 주고 싶어질 것이다라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랑은 약자가 강자에게 의지하는 그런 개념으로 그녀들에게 인지되어야 한다. 강자는 약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베풀어주어야 하고 약자는 그런 강자를 위하여 자신의 중요한 것들을 버려도 아무런 미련이 없다. 왜냐하면 강자가 알아서 다 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삼류 소설들은 그녀들을 그렇게 믿게 만드는 약이라도 책에 뿌려 놓은 걸까? 현시;f적으로 불가능한 부와 미모를 갖춘 남녀의 결함이 화려하게 묘사되고 있는 이야기들은 한창 감수성이 풍부한 예민한 그녀들에게 왜곡된 남성상, 비현실적인 사랑을 꿈꾸게 하면서 간간이 심한 콤플렉스를 유발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너무 무책임하고 그들이 소비를 하고 비현실적일 수 있도록 하는 구조는 튼튼하기만 하다. 90년대의 문화는 십대들의 소비적인 의식구조와 욕구들을 부추기고 있다. 이속에서 진짜를 보여주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여기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당장 그책들을 읽지 말라고 집어 던져 버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표지만 바꿔서 또 찍으면 되거든. 십대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근본적인 피로가 계속 누적되어지면서 생산적으로 풀수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들에게 가르쳐 주지도, 시간도 주지 않는 것이다. 출세주의와 경쟁 의식만이 세상을 살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이데올로기처럼 그들에게 주입되어 근본적인 피로를 쌓아가게 만들고 있다. 보고 듣고 느끼는 소비하는 문화가 아닌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제대로된 사회 의식과 역사의식을 갖고 주체성을 가질수 있도록 하는 문화가 그들을 그러한 책 읽기에서 멀어지게 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문화가 또 무엇이냐고 묻고 싶어지겠지! 그것은 현실 속에서 치열한 고민을 해보고 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일하면서 자유롭게 인간적인 생활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만으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생활의 변혁을 꾀하면서 문화의 변혁을, 아니 변혁까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아이들, 그야말로 미래의 생산인들을 위하여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냥 손놓고 있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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