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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4 | [문화시평]
깊이 생각하는 그림에의 아쉬움 95 신예작가 초대전을 보고
김윤진 화가 (2004-02-05 14:55:54)
지난 1월 화려한 선포식과 함께 1995 미술의 해 가 시작된지도 벌써 3개월이 넘어섰다.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오늘의 현대미술이 일반 감상자와의 문화적 공감대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긋고 있는 가운데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생활'이라는 표어아래 시작된 각종 사업들, 예를 들면 문화 예술 진흥법 개정이나 국제전 유치 및 참가, 각종 기념 초대전, 공모전 등 올 한해만도 150여건이 넘는 굵직한 행사들이 광복 50주년과 맞물려 현재 진행중이거나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방대한 계획과는 다르게 지원금이 부족으로 상당한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소리도 들리고, "미술은 무용이나 국악과는 달리 시각 예술인 만큼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라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같은 미술인의 한사람으로 이 모든 행사들이 차질없이 내실있기 성공작을 평가될 수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조금은 성급한 평가일 수 하지만 한마디 언급하자면, 상당수 기획 전시 행사가 소위 인기 작가들의 화려한 외출쪽으로 치우쳐져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는 것이다. '미술의 해'에는 어느때보다도 미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유도해야함과 동시에 미래를 위한 새로운 작가들의 무대에 보다 많은 장을 할애해야 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기존의 유명 또는 인기 작가들의 작품은 이미 많은 평가가 가려지고 있으며, 항상 손쉽게 접할 기회가 있는 마당에 굳이 해를 정해가며 이 이름 저 이름으로 잔칫상을 차려 할 까닭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기야 갑자기 불기 시작한 국제화, 세계화의 모양새에 맞춘 행사들의 주역은한국을 대표할 만한 작가들로 구성되어야 하겠지만, 기실 오늘의 한국을 대표할만 하다고 볼수 있는 작가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의구심속에서 지난 20년 세월에는 개방바람과 함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서구의 미술경향을 여과없이 마치 경쟁하듯 베껴먹던 시기가 분명 있었으며, 아직도 3,4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서구의 미술경향을 여과없이 마치 경쟁하듯 배껴먹던 시기가 분명 있었으며, 아직도 3,40대젊은 층에서 여전히 남의 옷을 입은채 국제적 보편성이라는 미명하에 옷주름만 치겨세우는 일부 몇몇 작가들이 인기작가(인기작가라는게 작품의 질만으로 불려지는 것은 아니지만)의 대열에 끼어 있음을 개탄하면서, 외국 평론가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조합된 국적 불명의 작품들이 아니라, 차라리 시골에서 묻어나오는 붉은 황토였다라는 점을 상기해 두고 싶다. 나는 이러한 슬픈 상황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함께, 마침 황토흙의 비릿한 냄새가 풍겨날 것 같은 싱싱한 전시가 있다는 소리에 이미 전날 끝나버린 전시장을 아침 일찍 찾아가 보았다. 전주 우진문화공간(대표 김경곤)에서 해마다 기획하고 있는 행사로 제 4회 `95신예 작가 초대전이 그것인데, 우선 각 대학에서 선발된 신예작가들이라는 점에서 각 대학의 특색에 대한 호기심과 요즈음 흔히 말하는 신세대들의 조형적 사고를 단편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으리라는 좀 엉뚱한 생각과 함게 둘러 본 전시장의 분위기는 당초 생각과 기대보다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저마다 가슴앓이를 한 흔적들이 곳곳이 배어있음을 보면서 몇몇을 느낄수 있었다. 우선 목소리가 보다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수직적 답습행태나 집단적 이성동본(異性同本)같은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저만의 목소리에 보다 충실하려는 경향을 짙게 읽을 수있었다. 물론 아직은 어설프기도 하고 어띠서 본듯한 기법들이 더러 보이기는 했지만, 한 작가가 서로 다른 시도의 작품을 내보이면서 스스로 U턴하려는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번째로는 굴래+욕구(강용석), 사람과 사람(정연희), 인물(안윤), Complex(이승경), 회상(문영신), 성숙한 체험(고보연)등의 명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주제로 한 작품들이 유난히 많아졌음을 알 수있다. 물론 이것은 오랫동안 다루어져 있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근래들어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현상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 안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이 안고 있는 제반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화폭에 수용함으로써, 과거의 유미적 입장이나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서류에 편승한 공통된 테마를 다루는 입자에서의 그림과 행을 달리 하려는 신세대들의 탈피된 모습이라고 보여진다. 곧 작품은 더 이상 계몽적이지도 장식적이지도 않은 현재의 자신을 대변하는 중보자(中保者)라는 사고가 넓게 깔려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보다 강한 자극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색체나 형태에서 심한 자극과 율동을 느끼며 겉돌아 보임은 오랜시간 동안 침전되기를 기다리며 작업을 해온 선배들과는 달리 충동적이고 즉발적인 몸짓으로써, 요즘 급변하는 세태를 반영한 듯 보이는 빠른 템포의 노래처럼 자칫 목소리나 머리만 크게 하고 내용 전달이 잘 안되는 공허함 또한 동시에 느낀 때문이며, 좀 더 진지하고 우매한 모습으로 비칠지라도 욕구에 앞서 깊이 생각하는 그림이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기 때문이다. 아, 그러나 일견 작가의 출발점에 서 있는 후배들에게 등을 밀은 것이 자칫 벼랑으로 밀어 버린 꼴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 또한 느낀다. 이런 몇가지 감정속에서도 아직은 미완의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거는 기대치는 실로 듬직한 무게로 저달되어 왔고, 앞서 언급한 슬픈 상황들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확신과 앞으로 신진 작가들의 발표기회가 '미술의 회'를 계기로 좀 더 확산됨과 동시에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면서, 마지막으로 미술 평론가도 이론가도 아닌 필자의 편견일 수도 있는 소견에 이글을 읽어 내리는 후배들은 혹 마음 상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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