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3 | [문화저널]
95년에 듣는 60년대 첫사랑의 거울
「이미자 노래 35년」공연을 보고
원도연 문화저널 편집장
(2004-02-05 14:32:36)
한 사람의 대중가수가 30년이 넘게 한 시대를 대표했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그 노래가 가지는 대중적 토양이 바탕 되어 있으며, 가수 개인의 지난한 노력과 끈기의 세월이 뒷받침되어 있다. 가수 이미자씨가 그의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했던 1959년은 한국사회가 한창 근대화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와서도 가수 이미자의 명성은 살아있고 그는 여전히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가수로 서있다.
지난 2월 10일 전라북도 학생회관에서 열렸던 "광복 50주년(이건 조금 이상하다)「이미자 노래 35년」"공연은 그의 건재와 쇠락을 동시에 보여주는 기묘한 무대였다,
5년 만에 낯설지 않은 전주의 청중 앞에 선 그는 여전히 열아홉살 가녀린 소녀(?)의 모습이었고, 애잔하고 감상적인 노래들로 청중과 함께 했다. 그가 설 수 있는 조건을 반영하듯이 청중들의 대부분은 한창 일할 나이에서는 벗어나 초로에 접어든 적어도 50대 후반에 서서 이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 버린 60년대의 "그들"이었다.
60년대의 그들에게 가수 이미자씨의 노래는 고향에 두고 온 누이 같았고, 앞만 보고 달렸던 근대화 시대에 마음속 깊히 새겨둔 첫사랑의 거울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60년대 고향을 떠나왔으며, 그들이 새롭게 자리잡은 도시의 풍경은 또 얼마나 낯설고 삭막했겠는가? 하여 대중가수로써 이미자씨의 성공은 바로 그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며, 그 노래의 주제는 고향과 사랑에 맞닿아 있다.
그는 바로 그 고향에의 상실과 도전의 세월속에서 그들이 가는 이 길이 "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고 묻고 있으며, 서울로 떠나간 아빠와 엄마는 "어디서 살고있나"(기러기 아빠)고 노래한다. 그의 애잔함과 월등한 기량 속에 묻어나는 시대적 감성은 바로 산업화와 도시화의 뒤안에 대한 고통스러운 민중들의 삶에 기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노래는 60-70년대를 대변하지는 못했을망정 한 시대를 대표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 역시 세월은 속 일수 없는 듯 하다. 전주무대에서 부른 그의 새 노래는 여전히 60년대 식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미자의 노래를 이 시대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의 노래가 35년의 세월을 건너 여전히 대중 속의 사랑 받는 가수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건실하고 성의 있는 사람에 그 까닭이 있는 듯 하다. 이날의 공연에서도 역시 그는 원숙한 기량에 걸 맞는 깔끔한 예절로 전주의 팬들에게 답했다. 그리고 전주의 공연이 있었던 몇 일후 가수 이미자씨에게 정부의 문화훈장이 주어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적어도 외국에 나가 살다가 고국무대 운운하는 그런 가수들에 비한다면 실로 합당한 대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