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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3 | [문화비평]
행정의 독주 견제,, 그러나 내부적 갈등과 대립이 보인 한계
이성원 전북일보기자 정치부 (2004-02-05 14:20:08)
1991년은 주민들의 가슴에 유난히도 기억에 남는 한해였다. 비록 절름발이라고는 하지만 군사정권의 총칼 앞에 30년 동안이나 숨죽여온 지방자치가 주민의 손에 의해 부활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지방의회의 재탄생을 지켜보는 주민들은 민주주의의 풀뿌리가 어서 빨리 되살아나 싱싱한 줄기를 키워내기를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경험이 일천한 지방의회가 오랫동안 주민위에 군림하며 중앙집권적 독주체제에 길들여온 관치행정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기대와 우려를 안고 출범한 지방의회가 어느덧 4년여의 항해를 마치고 닻을 내릴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전북도의회는 1991년 7월 8일, 주민의 열망과 기대속에 역사적인 개원식을 가졌다. 도의회의 개원을 지켜보는 주민들은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지방자치 시대의 개막을 비로소 실감하며 가슴 뿌듯한 설레임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했다. 그러나 벅찬 꿈에 부풀어 있던 도의회가 나아갈 앞길에는 많은 시련과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4대 의회라고는 해도 지방정치의 경험이 일천, 초대의회나 마찬가지였던 도의회는 오랫동안 독주체제에 길들여온 관치 행정의 고삐를 쥐는데에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91년 7월 23일부터 시작된 60회 임시회에서 당시 최용복지사는 타시도의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본회의장에 의도적으로 불참, 의회와 집행부가 공박을 벌이는 등 회의진행이 공전만 거듭하는 파행을 빚었다. 또 92년 4월 내무위 간담회에서는 당시 이모 재무국장이 공유재산관리조례 개정안을 놓고 의원들과 의견이 상충되자 이××라 폭언을 해 지상에 항의단을 파견하고 재무국장 해임권고 결의안 채택움직임을 보이는 등 한동안 소동을 벌였다. 이러한 의회와 집행부의 힘겨루기는 시일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사라지긴 했지만 상호 불신과 갈등, 마찰은 4대 의회 내내 씻어지지 않는 앙금으로 남아 95년 1월 첫 임시회에서는 연초순시를 이유로 본회의장에 불참한 조남조지사 대한 도지사 해임권고 결의안이 채택되는 불미스런 사태를 빚기도 했다. 94년 연초에 터져나온 경찰내사 사건은 지방의회 출범 이후 공공기관과 지방의회가 정면으로 충돌한 최초이자 최악의 사건으로 지방의회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93년도 예산 심의 때 경찰청 예산을 삭감한데 대한 경찰의 보복적인 내사사 사건이 알려지자 강동원의원(남원)이 이에 항의, 1월말 의원직 사퇴서를 전격 제출했으며 2월 중순 소집된 임시회에서는 청와대에 보내는 도지사와 경찰청장 해임권고 결의안이 발의되는 등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이 사건은 이강년 지사의 중재로 경찰청장이 도의회를 방문, 사과하는 선에서 일단락 되긴 했으나 본격적인 지방시대를 앞두고 많은 교훈을 남겼다. 도의회의 내재적인 문제점도 잦은 시비를 불러 일으키며 도민들에게 우려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신민당(현 민주당)51명, 무소속 1명으로 출범한 도의회는 1당이 가지는 의견 통일의 수월성과 이를 바탕으로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오히려 집안싸움에 몰두하는 인상을 심어줬다. 91년 7월 전반기 의장단 선거때부터 주류와 비주류로 갈라졌던 도의회는 후반기 의장단 선거를 계기로 전북의정발전연구회. 신우회. 정사연 등 3개의 계파로 나뉘어 사사건건 갈등과 대립을 빚으며 의회운영의 안정성을 위협했다. 특히 의정발전연구회측은 의장 몫의 업무추진비 사용을 극단적으로 견제하며 의원 모두가 똑같이 사용할 것을 강요, 예산의 나눠먹기 관행이 굳어지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도의회는 95년 설날을 맞아 업무추진비 1백만원, 의정활동비 2백 60만원 등 1인당 3백60만원씩의 예산을 변칙적으로 집행했다가 내무부와 감사원의 특감을 받는 등 한바탕의 홍역을 치른 끝에 결국 예산의일부를 반납하는 추태를 연출했다. 또 교육위원 선출과 관련, 금권매수의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끝에 결국 2명의 의원이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 의원직을 박탈당하기도 했으며 목청만 놓이는 저질발언,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빗나가 질의. 나도 한마디 식의 중복의 등으로 시간이 허비되고 초점이 흐려지는 등 일부 의원들의 도덕성과 자질문제도 잦은 시비거리가 됐다. 그러나 도의회는 이러한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초반부터 의욕적인 활동을 보여주었다. 도의회는 개원2주일만에 군내버스 운영실태 조사특위를 구성해 관계 공무원과 회사관계자, 주민들을 대상으로 군내버스 운영상의 문제점을 광범위하게 조사, 행정적 제도보완을 요구하며 의욕적인 의정활동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또 이와 때를 같이해 대전직할시 금강 상류 쓰레기 매립장 설치계획의 철회요구결의안을 채택하고 대전시와 환경처 건설부 등을 방문, 이의 부당성을 알리며 금강 광역상수도의 수질오염 방지를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93년 10월 2백 92명의 인명을 앗아간 서해 훼리로 침몰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는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조기 수습을 위한 대정부 촉구 결의안을 채택,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사고 수습을 촉구하는 한편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수습대책특위를 구성해 정부의 수습노력에 적극 협력했다. 전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끈 UR에 따른 농수산물 수입개방과 관련, 두 차례에 걸쳐 쌀수입 개방반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해 중앙부처에 도민들의 뜻을 전달했으며 93년 12월에는 47명의 의원이 삭발을 하고 14일 동안 본회의장에서 농성을 벌이며 도내 각 지역에서 열린 쌀수입 반대 농민 규탄대회에 적극 참가했다. 94년 7월부터 계속된 장기 한발 때에는 6개의 가뭄피해 현지 실태 파악반을 구성해 각 지역의 가뭄실태와 가뭄극복작업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 행정의 가뭄극복 노력을 적극 뒷받침하는 한편 전북도 가뭄피해 보상대책 및 농정쇄신 촉구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농민의 권익보호에 앞장섰다. 95년도 전북현안사업 예산 확보 투쟁과 관련, 94년 가을에는 시군 기초의회 의장단과 공동으로 대정부 건의안을 마련하는 등 전국 최초로 기초, 광역의회가 연대해 예산투쟁을 벌이는 선례를 남겼을뿐 아니라 도내 일원에 전북홀대에 항의하는 10여종의 현수막을 일제히 내걸어 지역 불균형 문제가 미봉책으로 일관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중앙정가에 인식시켜 주었다. 또 93년 8월 구성된 6 25 양민학살지상싩채 조사특위는 1년여의 활동 끝에 군경 및 빨치산에 의한 학살자 4천여명의 명단을 확인, 무고하게 희생된 양민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철저한 조사와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한편 거창양민학살 특별법에 상응한 특별법 제정을 정부 및 국회에 건의했다. 이밖에도 도의회는 시급한 도내 현안사업의 적극적인 추진을 위해 각급 단체와 공동으로 새만금 범도민 추진기구 설립을 시도하는 한편 건설부 등 중앙부처를 방문, 용담댐 조기완공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약속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또 아파트 사업승인 허가 관련 민원조사특위. 새만금종합개발 대책특위, 지역경제 활성화 특위. 암반관정 및 오폐수 처리실태 조사특위. 전북대 공과대학 국책대 지정촉구 결의안. 호남고속전철 건설 도민여론 수용촉구 결의안. 추곡수매 대정부 결의안 등 각종 특위와 결의문 등을 통해 사안이 발생할 때 마다 주민의 편에 서서 주민의 복지와 권익향상을 위해 일해왔다. 그러나 도의회 4년 활동의 가장 큰 성과물은 행정의 독주견제와 예산절감에 있다 할 것이다. 도의회는매년 정기회 예산심사를 통해 그동안 철저한 베일속에 가려지던 예산편성과 집행과정을 따지며 불요불급성 예산과 법적 지원근거가 없는 예산, 주민의 이익과 직접 관련이 없는 예산 등을 대폭 삭감해 행정의 예산절감에 앞장서왔다. 또 행정사무감사 과정에서는 행정기관의 잘못된 관행과 부조리 구조를 견제함으로써 미흡하나마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 전북도의회는 제도상의 미비점과 경험부족에 따른 미숙성 등 생태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난 4년간의 의욕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의회운영의 안정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민주당 일색의 도의회에 대한 행정이 선입관적 불신과 갈등의 벽을 어느 정도 허물고 도정발전을 위해서는 의회와 행정이 양 수레바퀴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행정부에 심어주었다는 점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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