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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3 | [특집]
세계화 지방화 시대의 전라도 문화를 생각한다
천이두 본지 발행인 (2004-02-05 14:17:27)
각급 지방 단체장 선거가 오는 6월 27일로 다가왔다. 이 지방 단체장 선거가 예정대로 치러지게 되면 우리의 정치 발전과정에 있어서 큰 숙제의 하나인 지방화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그런데 어제 오늘의 뉴스에 의하면,. 이 지방 단체장 선거에 앞서서 각급 행정구역을 조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경실련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한다. 서민들의 실제생활과 맞지 않은 행정구획이 전국적으로 상당수 있는 바 이를 바로잡은 연후에 각급 단체장 선거를 치러야지 일단 선거가 치러진 연후에는 이를 근거로 하는 각종의 지역이기주의로 하여 행정구획 조정의 일은 아주 어렵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여당과 정부와 야당은 각기 엇갈린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하다. 민자당에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할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내무부에서는 행정구획 조정의 문제는 이미 끝난 문제이므로 다시 손댈 수 없다는 의견이다. 한편 민주당에서는 각급 단체장 선거일자가 임박해 있는 시점에서 행정구획 조정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결국 단체장 선거를 지연시키려는 민자당의 저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귀결될지는 더 두고 보아야 알 일이지만, 어떻든 갖은 우여곡절 끝에 실현을 보게 된 단체장 선거가 이 이상 지연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국민적 합의에 의하여 도출된 결론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방 단체장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이른바 지방자치 시대의 성격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지방자치란 글자 그대로 각급 지방의 모든 발전을 그 고장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참여에 의하여 도모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민주정부라는 것을 규정하여 링컨은 인민은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하거니와 지방자치라는 것도 이에 준하여 고장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고장 사람 손으로 행하는 행정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제의 실시에 의하여 기대되는 긍정적 측면은 여러 각도에서 예상할 수 있다. 첫쨰 획일적이고 도식적인 중앙집권적 행정에서 벗어나 각 고장이 그 고장의 실제 현실에 알맞게 살림을 꾸려갈 수 있다는 것, 각 고장 사람들의 자발적이고도 창의적인 노력들이 탄력있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 각급 고장 상호간의 선의의 경쟁을 촉발함과 아울러 효과적인 상호협력을 이룩함으로써 각 고장의 균형적 발전이 한결 촉진될 수 있다는 것등등. 그러나 부정적으로 보자면 이에 못지 않게 우려해야 할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지방자치라는 이름 아래 각급 지방 단체들이 지역이기주의에 사로잡혀 거시적 안목을 상실함으로써 각 지방의 상호 협력을 저해하고 나아가서 각 지방의 상호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는 것. 각급 지방 상호간의 경쟁이 그 본래의 호혜 협력의 정신에서 일탈함으로써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것. 조건이 유리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간의 위화감 내지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는 것. 이렇게 될 떄 3공 이래의 역대 정권들의 중앙집권적 행정에서 연유된 바 특정 지역에 대한 편애적 편파적 조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악성의 지역감정 내지 지역간의 위화감이 해소되기는 커녕 지방화시대에 오히려 더 심화될 개연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지방자치제 실시의 성패 여부는 바로 이 지역이기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며 나아가서 각 지역간의 선의의 경쟁과 아울러 호혜협력의 기운을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자기 고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기 고장을 넘어선 민족적 안목이 늘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점과 관련하여 지방자치라는 말이 세계화라는 말과 맞물려 제기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세계화라는 것이 무한 경쟁시대에 있어서 끝없이 열려진 바깥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지방자치 내지 지방화는 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꾸준한 집중화를 뜻하는 것이다. 밖으로 끝없이 뻗어나려는 원심적 지향성이 세계화의 의식이라면 자기자신에게로 집중하려는 구심적 지향성이 지방화에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두가지 방향은 각기 정반대를 지향하면서도 사실은 동시적으로 맞물려 작용해야 할 하나의 주체에서 연유되는 양면성인 것이다. 세계화란 내가 세계속에 함몰해 버리거나 세계 속에 실종되어 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세계 속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세계 속에서 나의 자리를 확보하며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을 뜻한다. 세계 속에 나의 자리가 확보되지 않을 대 나는 세계 속에 없는 것이고 따라서 이 때에는 나도 세계도 없는 것이다. 세계화란 세계 속에서 내가 더 뚜렷하게 나를 확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세계화란 지방화, 자치화라는 것과 맞물려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내가 나의 고장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내 고장을 향한 구심적 지향성이라면 이렇게 해서 정립된 나를 세계 속에서 확인하는 것 그것이 곧 세계화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문맥 속에서 우리는 세계화 또는 지방화 시대의 전라도 문화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라도는 예로부터 예술의 고장이라 일컬어져 왔다. 세계화, 지방화 시대의 전라도 문화라 해서 특별히 다른 전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기 본래의 모습을 더욱더 심화 확대시키는 것, 그것이 전라도 문화의 세계화요 지방화라고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서 말한바 자기를 향한 구심적 지향성과 아울러 밖을 향한 원심적 지향성이 동시적으로 맞물려 표상되는 자리에 우리 시대의 전라도 문화의 위상이 정립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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