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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2 | [문화저널]
'세계화'라는 구호의 숨은 뜻
이정덕 전북대교수·고고인류학과 (2004-02-05 13:54:18)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연두기자회견에서 세계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하였으며 세계화는 미래, 차세대를 위한 개념으로 모든 측면에서 한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으로 보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세계화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만 의미하는 것일까? 오히려 현재의 세계화는 외국의 각종 농수산물, 공업제품, 문화 등에 문을 여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있는 듯하다. 물론 각종 정치적 문제(가령 작년의 예산안 등의 날치기처리나 현재의 민자당 재편)을 호도하기 위한 구호로도 사용되고 있지만 세계화는 한국이 현실적으로 부닥친 여러 문제점을 농축하여 보여주는 개념이기도 하다. 세계화의 여러 측면 중 현재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 중의 하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외제, 또는 외래문화의 문제이다. 이제 한국에서 외국에서 만들어진 또는 외국과의 합작, 기술도입 등의 관계속에서 만들어진 외래상품이나 외래문화를 소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디오를 들으면 팝송, 영화관이나 비디오 가게에 가면 외국영화, 그리고 TV를 켜면 각종 외국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과 마주치게 되며, 시장에 가면 각종 중국산 농수산물과 각종 수입물품들이, 수퍼마켓에 가면 수입 또는 기술도입에 의해 만들어진 과자나 술들이, 책방에 가면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교수들이 번역된 또는 외국의 책과 실험장비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은 이제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외래상품과 외래문화가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각종 TV프로그램, 영화, 패션 등도 외국의 것을 모방하며, 각종 자동차, VCR, TV, 컴퓨터 등도 외국부품을 사용하던지 또는 기술도입을 하던지 하여 100% 국산은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문화시장의 경우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하다. 음반시장의 70%를 외국회사들이 장악하고 있고, 『93년 영화연감』에 따르면 외화의 시장점유율이 81.5%이며 이러한 상태로 나가면 곧 90%를 넘어설 것이다. 영화시장보다 6배나 큰 비디오시장은 이미 90%가 외국비디오에 점령당한 상태이다. 어린이, 청소년들이 주 수요층인 게임시장의 경우(연 3000억원)90%이상을 일본의 닌텐도와 세가사가 장악하고 있으며 만화의 경우 일본 작품인 드래곤볼과 슬램덩크가 가장 인기 있는 어린이 만화이다. 외국위성 TV의 시청자수도 급격히 늘어 1994년에는 400만명정도가 시청하고 있다. (이제 여러 중앙일간지들이 신문에 외국위성방송의 프로그램을 싣고 있다.) 또한 한국내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도 미국에서 수입된 것이나 일본의 것을 모방한 것이 많다. 연극, 쇼, 콘서트에서도 외국인들의 내한 공연이 늘고 있다. 또한 광고에서 외국인들의 출연이 증가하고 있는데 광고전문가들은 "광고효과와 경제성 때문에 외국광고모델을 쓰는 것은 시대적 흐름"으로 말하고 있다. 개방의 확대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의 하나는 외제의 사용이 일상화되고 중하층에서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각종 산업체나 중하층에서는 싸기 때문에 값싼 외제 특히 중국농수산물을 많이 소비한다. 개방이 확대될수록 외제의 과시재로서의 또는 값싼 실용재로서의 분화가 확대되고 있다. 즉 한쪽에서는 한국제품보다 더욱 비싸고 품질이 종흔 물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한 쪽에서는 한국제보다 품질이 떨어지지만 값이 아주 싼 물품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따라서 이제 단순히 외제라는 의미보다는 어느 곳에서 누가 만든 외제인가(즉 싼 외제 또는 중국산인가, 비싼 외제 또는 서구산인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외래문품이나 문화의 소비가 단순히 소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제, 이탈리아제, 또는 일제를 사용할 때 그 나라 또는 우리나라, 그 나라 사람, 우리나라 사람, 외국문화, 우리문화 등에 대해 느끼고 평가하기 때문에 외래물품이나 문화의 소비는 우리자신에 대한 인식, 그리고 우리문화의 평가와 생존 등과도 직접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다양한 서구상품, 문화의 급증과 이의 소비는 한국인의 의미체계, 자아인식, 세계관, 사회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가 단순히 음식만을 파는 곳은 아니다. 맥도날드에 가면 영어로 되어있는 햄버거 명칭들, 밝고 깨끗한 인테리어, 세련된 디자인, 넓은 매장, 친절한 서비스, 배트맨 등의 영화상영에 따른 각종 이벤트와 이에 따른 선물, 여러 가지 미국식 행사들로 미국사회의 이미지도 햄버거와 동시에 소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들 외식식당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한국식 일반식당에 가면 뭔가 어색하고 후진 느낌을 가지게 된다. 소니 TV, 아이와 카세트, 코끼리 밥솥, 일제 샤프펜슬의 사용은 단순한 일제의 소비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인, 한국이라는 나라, 한국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은 세 번에 걸쳐 국산 소형카세트를 사서 쓰다가 쉽게 망가졌는데 일제 카세트를 써보니 잘 작동하여 한제는 쉽게 망가지는데 왜 일제는 망가지지 않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결국 국산품이나 한국기업을 불신하게 되었다. 대신 일본기업, 일본사람에 대한 신뢰감은 증가하였다. 이러한 외제, 외래문화에 잘 따라가는 아이들은 유행에 앞서가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촌스런 아이들로 평가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젊을수록 이러한 경향이 심하여 10대·20대의 경우 50대 60대보다 훨씬 많은 외래문물을 소지하고 있다. 이들은 각종 잡지, PC 통신, 비디오, 동년배 집단과의 이야기 등을 통하여 뉴욕, 동경, 파리, 싱가포르, 서울에서 비슷한 유행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청바지를 입은 청소년들이 맥도널드 식당에서 콜라와 햄버거를 먹으며 소니 카세트를 귀에 꽂고 같은 팝송을 듣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는 미국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예를 들어 짧은 스커트에 무릎까지 올라가는 긴 타이즈를 신고 턱이 높은 구두를 신는 차림)이 몇주나 몇 달 사이에 서울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까지 유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서구의 모방으로 감성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데 "노랑머리가 검은머리보다 더 예뻐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굴이 너무 크고 다리가 짧아요" 라고 일부 국민학생들은 말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국민학생들이 피자를 선호하고 김치를 혐오하는 맛의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어른들도 이미 서양식 의복, 서양음악, 서양식 건축에 길들여져 있고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서구나 일본에서 키워온 감성으로 우리주변을 평가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여성잡지들이 서구나 일본의 시각화된 여성잡지를 모방하고 있고, 많은 청소년들이 폭력적이고 스피드한 미국영화나 홍콩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이러한 영향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지존파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홍콩영화에서 따오고 살인방법도 부분적으로 미국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 이들의 감성도 이미 국제적 혼합물이라 할 수 있다. 압구정동의 오렌지족이나 백화점 주요 고객들도 서구적인 것 또는 일본적인 것을 선호하고 있으며, 한 여대생의 말처럼 많은 사람에게 "먹고 쓰고 즐기는데서 외제냐 아니냐는 논의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느냐"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 개방에 따른 외래문물의 급격한 유입은 사회적으로 젊은 층과 중년층, 대도시와 농촌, 부자와 가난한자의 사회적 문화적 격차를 확대시키고 있다. 50대들은 10대의 입맛, 행동, 옷차림, 때로는 말까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10대들은 50대들이 고리타분하게 옛날 것에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30대는 농촌의 서로 아주 다르다고 느낄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은 갈수록 더욱 외래문물을 많이 소비하는 부자들의 생활을 아주 낯설게 느끼고 있다. 이러한 이질감을 자아내는 많은 부분들이 이들이 소비하는 외제나 외래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서구나 일본의 제품, 문화가 급속히 들어오고 이를 선호함으로써 한국문화의 전반적인 서구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상품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명절, 오락, 놀이도 점차 서구화되고 있다. 자치기, 제기차기, 기마전 등은 사라지고 야구, 농구, 축구 등이 유행하고 있으며, 민화투, 장기대신 고스톱, 카드가 늘고 있으며, 많은 음력 명절들이 사라지고 크리스마스,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등이 명절로 등장하고 있다. 일상생활, 글, 간판등에서도 영어의 사용이 급증하고 있어 긴 다리는 "롱다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서구화에 맞서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 정체의식을 보존 강화하려는 문화민족주의도 보다 구호화, 조직화되고 있다. 즉 '순수한' 우리문화를 지키고 확산하려는 노력으루 한국문화유산, 전통음악, 우리땅, 우리것 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의 증가는 민족정체성과 자존심 확보라는 측면에서 물론 바람직하지만 감정적인 호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적 근거보다는 민족주의적 심성에 호소하는 身土不二라는 개념이 농산물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제품의 영어 이름을 주로 붙이는 OB맥주의 고아고나 태평양화학의 잡지도 우리 것을 지켜야한다고 외치고 있다. 또한 한국적인 것의 상품화, 특히 서구의 기술을 사용한 상품화가 진전되고 있다. 이제 쥬스와 마찬가지로 막걸리, 식혜, 수정과도 캔에 담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국악도 오케스트라 형식을 차용하거나 보다 신나는 리듬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한국적 마당극은 대사중심에서 음악, 춤, 노래 등을 결합하여 보고 즐길 수 있는 서양뮤지컬의 요소를 도입하고 있고, 한국영화들도 섹스신과 폭력을 끼워 넣고 스피드하게 진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러한 서구화의 일상화와 서구상품, 문화(일본 것도 서구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은 것들이다)의 광범위한 사용으로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어느 것이 외국에서 기인한 것인지 또는 한국 것인지에 대한 의식이 약화되고 있다. 그냥 재미있고 멋있고 편리하고 품질이 좋고 또는 비싸거나 싸기 때문에 사용하지 이것이 특별히 국산이라 또는 일제라 사용하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전반적인 의식의 변화와 사구화의 진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가 서구문화에 종속되어가는 것으로 걱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지나치게 서구종속적인 현상이 일부 나타나고 있지만 필자는 우리가 서구의 지식, 기술, 문화 등에 있어서 배울 것을 빨리 흡수하여 우리를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를 지키고 서구를 극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것을 배척한다고 하여 우리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한국이 서구에 흡수당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구화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곧 나타나게될 한국사회의 중국화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과거 2000년간 중국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으면서도 살아남았지만 (그동안 만주족이나 많은 중국주변의 민족들이 중국에 흡수당하였다) 21세기의 중국의 도전은 과거보다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심각한 내란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21세기 중반 세계 최대강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고 동아시아나 또는 세계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한국과 유사한 것이 많고 인구가 많아 서구보다 더욱 쉽게 우리의 일상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1세기 중반에는 정보통신, 항공교통의 발달로 중국의 많은 도시가 한국과 일일생활권을 형성하고 중국의 모든 것들은 당일 한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많은 영역에 있어서 중국과 한국은 (일본을 포함하여) 단일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화 진전의 보다 중요한 문제점은 한국내에서 계층간의 문화적 격차가 커지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에 있다. 현단계에서 세계화라는 구호가 내포하고 있는 숨은 뜻은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자본간의 경쟁)에 맡기자는 것이다. 이 말은 대기업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재편성하겠다는 의미이며 경쟁에 탈락하는 중소기업이나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서민들은 몰락하게 내버려두겠다는 의미이다. 국내시장을 대폭 개방하기 때문에 국내대기업도 국제경쟁에서 탈락하면 쉽게 망하게 되고 한국시장도 외국기업에 쉽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물론 한국기업이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으며 실제 세계시장 장악력이 커지고 있다) 돈, 기술, 시장능력이 없는 기업이나 개인은 갈수록 애국심, 보호장벽, 국가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게될 것이고 이에 따라 자본, 생산, 인간관계, 소비의 세계화(超國籍化나 無國籍化라고 말할 수도 있는)는 더욱 진전될 것이다. 이는 한국공동체가 더욱 약화됨을 의미하며 또한 개별 집단들이나 계층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더욱 추구하여 일부집단은 더욱 약진하나 일부집단은 더욱 소외되어 소외집단의 소외감과 불만은 더욱 깊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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