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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2 | [세대횡단 문화읽기]
케이블 TV가 방송의 지방자치를 연다
원도연 '문화저널'편집장 (2004-02-05 13:47:09)
케이블 TV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80년대라는 시대적 격변기를 틈타면서 제4부의 권력으로 군림해왔던 중앙집권적 방송체제는 이제 타파될 것인가? 지방화 원년을 맞아 방송의 지방차지 시대가 열린다. 이미 시험방송을 시작한 케이블 TV와 신설가능성이 논의되는 지역민영방송, 그리고 지리적 경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위성방송까지 가세하게 된다면 이제 지방은 '미디어의 풍요'라는 차원을 넘어 영상정보의 융단폭격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이제 방송은 그동안의 상대적인 기득권역에서 벗어나 상품경쟁의 시대에 돌입했으며 특히 지역방송 시장은 비로소 진검승부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지역주민들의 인식도나 기대는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CNN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CNN이 바로 케이블 TV에 뉴스를 제공하는 전문채널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많은 요인들이 있다. 첫째는 그동안 지방의 공중파 방송(전파를 이용한 기존의 KBS나 MBC등)들이 보여주었던 지역채널 운용의 상대적인 소극성에 대한 내재된 불만이다. 전주MBC의 경우 지난 94년 추동계 지역방송 편성비율을 보면 TV의 경우 일주일에 5개의 프로그램에 10.5%를 점유하고 있으며, KBS전주 역시 4개의 고정 프로그램에 10% 내외의 편성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편성비율은 현재의 방송법이 정하고 있는 로컬 편성비율인 13.4%에도 훨씬 못미치는 낮은 비율이다. 더우기 TV 프로그램들은 모두 이른바 황금 시간대가 아닌 아침시간이나 밤늦은 시간으로 편성되어 실제 시청자수는 소문보다도 훨씬 적은 방송의 사각지대에 들어있는 셈이다. 이처럼 지역방송이 활성화되지 못한데는 방송국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중앙집권적인 정치구조와 사회상황에 익숙한 지역주민들의 정보추구 형태 역시 당연히 중앙지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늘 지역방송은 재미없고 수준이 낮다는 선입견에 대중들은 사로잡혀 있고, 따라서 간혹 이렇다할 프로그램이 제작된다 한들 지역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케이블 TV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역시 아직은 이같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동안 유흥음식점이나 대중목욕탕 등지에서 만나왔던 유선방송과의 차별성이 뚜렷하게 홍보되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 흘러간 옛날 영화나 TV 프로그램 재방송으로 화면을 장악해왔던 유선방송과 종합유선방송이 어떻게 다른지 지역주민들은 얼른 이해하지 못한다. 이 점은 케이블 TV 종사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이 벽을 깨뜨리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좀더 다른 시각에서 구조적으로 문제를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발전방향과 관련지워 생각해 볼 수 있다. 21세기의 사회의 방향을 정보화 시대, 지방화 시대라고 본다면 그같은 시대적 흐름과 대중들의 인식에는 상당한 괴리가 나타난다. 변화하는 정보환경을 따라잡는데 사람들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하고 당황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케이블 TV가 정보고속도로의 개념과 무관하지 않고, 안방에 앉아서 쇼핑하고 은행업무를 처리하고 도서관의 자료를 꺼내 볼 수 있다는 미래의 정보환경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대중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직은 케이블 TV의 등장으로 안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이 지금보다 엄청나게 많아진다는 것, 24시간 꼬박 나오는 TV가 생긴다는 것, 또는 영화나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만 볼 수 있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지방화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지 못한점도 케이블 TV의 성공여부를 불투명하게 하는 점이다. 해방 이후 50여년 동안 강력한 중앙집중적 사회구조속에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지방화의 밑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지방화가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 사람들은 쉽게 동의하지만 그 지방화가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깊지 않다. 무엇보다도 자치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케이블 TV의 지역성이 쉽사리 인식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케이블 TV의 가장 커다란 가능성은 어쩌면 지역의 문화예술 및 생활문화와 만나가는 부분들이다. 지역문화야말로 가장 전형적인 지역성을 보여줄 수 있으며, 지방화와 무관하게 비록 미미하지만 상대적으로 자생력을 확보해왔던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지방에는 이렇다할 정치가들이 눌러살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자기동네 시의원이나 도의원의 이름은 몰라도 지역에 살고 있는 시인이나 소리꾼 한두면 정도는 사람들의 귀에 익숙하다. 한국에서 시작되는 케이블 TV 역시 이같은 지역성에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는듯 하다. 물론 여기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케이블 TV가 가입자로 유지되는 상업방송이라는 점이다.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방송은 필연적으로 오락성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주목하면서 일각에서는 케이블 TV의 지역성이 심지어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 종합유선방송협의회 김재기 회장이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말한 '폭력은 까다롭게 애정 표현은 자유롭게' 하는 식의 채널별 특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같은 케이블 TV의 상업적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역채널로서 성장하겠다는 케이블 TV의 의지는 확고한 듯 보인다. 그들은 지역채널이 서울과 지역간의 불균형을 시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생활정보, 지역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접근, 지역의 문화제나 문화행사에 대한 집중적인 편성제작 등의 방침을 소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케이블 TV가 지향하는 방송은 '작은 방송, 친근한 방송'이 되는 셈이다. 전주종합유선방송의 김용균 사장은 케이블 TV가 만들어가는 방송의 방향을 '생활과 문화'의 개념으로 정돈한다. 케이블 TV의 지역성이란 바로 자기 지역의 문화와 생활을 담아준다는 것을 의미하며 지역사람들의 속마음과 몸짓과 소리가 무엇이냐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언제나 바라보는 입장에 있었던 지역대중들은 오늘 무슨 백화점에서 어떤 물건이 얼마에 팔리고 있으며, 전주 송천동의 어시장에 나와있는 생선의 가격이 얼마인지, 그리고 구청에서 나오는 오늘의 공지사항이 무엇인지, 또는 우리의 자녀들이 뛰어노는 국민학교 운동회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우리의 생활과 문화를 담아낼 수 있는 방송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은 문화환경의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또한 지역채널은 공공행사나 지역축제 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풀 텍스트(full text) 편성방식을 통하여 수신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지역문화의 획기적인 동기부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더우기 케이블 TV가 생활정보의 차원을 넘어 지역문화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것을 지켜보고 지역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문제의식을 갖고 짚어나간다면 그것은 곧 지역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방공동체를 실현하는 지역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케이블 TV가 갖는 상업적 성격과 공공성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가 핵심이다. 지금까지 케이블 TV에 쏟아 부어진 지속적인 투자를 회수하고 장기적으로 '남는 장사'로 돌아서기 위해서 지역성과 공공성은 그다지 기꺼운 경쟁력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더구나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리는 영상정보산업으로서 케이블 TV에 대한 투자자들의 요구는 갈수록 거세질 수 밖에 없다. 지금 케이블 TV의 지역성을 강조하는 초기의 진지한 문제의식대로라면 케이블 TV는 상당한 기간동안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하나의 문제는 현재의 종합유선방송법이 시사정보나 정치적 성격의 보도를 금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6월이 되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한꺼번에 치러지게 된다. 명실상부하게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때 지역의 케이블 TV는 지역발전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지방선거국면에 어떤 형태의 정치보도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지역 케이블 TV를 그 출발부터 제약하는 모양세가 된다. 물론 방송 초기의 보도과잉과 그것이 몰고올 부작용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비단 지역 케이블 TV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지역언론이 극복해 나가야 할 하나의 과정이라는 대승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케이블 TV가 표방하는 돈 안드는 효율적인 선거운동의 수단과 그를 통한 지역정치의 활성화라는 개념도 지금과 같은 제약이 지속된다면 실질적으로 많은 한계를 노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종합유선방송 시범지역이었던 상계유선방송국의 생활정보 프로그램은 구청소식과 행사게시판의 역할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여 지역주민의 관심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던 경험은 시사하는바 크다. 문제는 케이블 TV가 기존의 공중파 방송들과 어떤 차별성을 갖고 대중들에게 접근해가는냐 하는 점이며, 결국 그 차별성의 요체는 지역성의 문제로 귀결될 전망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역주민들에게 밀착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지역주민 행사와 지역단체의 운동이슈를 프로그램화 하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다. 지역주민의 참여 또는 수신자와의 쌍방향기능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케이블 TV의 전략적인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일 뿐 아니라 뉴미디어 산업의 방향까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의 케이블 TV가 2천년대를 향하면서 결국 어디로 갈 것인가의 문제는 일차적으로는 그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진지한 문제인식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주민들이 중앙지향적 정보추구형태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삶에 기반한 방송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보다 전향적인 자세속에서 결정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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