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 | [수요포럼]
예술인과 노조
[ 제 2회 마당수요포럼 ]
정리 - 김회경 기자(2003-03-02 20:39:14)
매달 지역 문화계 이슈와 일반 시사 문제 등을 주제로 사안의 본질과 사회 문화적 영향 등을 살피고 있는 '마당 수요 포럼'.
그 두 번째 순서는 '예술인과 노조'를 주제로 열띤 토론 마당이 펼쳐졌다.
2월 12일 정보영상진흥원에서 마련된 이날 포럼에는 전북지역 최초로 예술인 노조를 결성한 전북도립국악원과 올 들어 갓 출범한 전주시립예술단 노조 조합원, 그리고 민주노총 관계자 등 30여명이 참여해 예술인 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비상한 관심을 반영했다.
지리한 공방 끝에 오는 3월 전북도와 단체교섭안을 확정짓게 될 도립국악원노조는 이항윤 위원장과 민국렬 부위원장 등이 참석해 노조설립 배경과 경과 등을 들어 노조설립의 당위와 필연성을 강조했다.
이제 막 출범한 전주시립예술단은 노조 설립의 실질적인 주체인 전주시립극단 단원들이 대거 참석해 예술인과 노동자 사이의 갈등, 공공을 위한 예술작품을 상품이나 생산의 경제적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등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예술인이면서 노동자로서의 자격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들은 특히 관립예술단이 갖는 지역사회 공적인 역할과 순수한 예술인으로서의 자율성 등이 노동시장과 경제구조의 틀 속에서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 것인지를 집중 거론했다.
대부분 예술인 노조 조합원들이 자리를 메운 이 자리에는 전북도나 전주시 등 사용자측 관계자의 참여가 전무해 아쉬움을 남겼다.
발제는 전북도립국악원 공연기획실장 김정수씨가 맡아 '예술인 노조, 그 방향을 찾는다'라는 주제로 문제제기와 토론 쟁점을 제시했으며, 사회는 문화저널 편집위원 문윤걸씨가 맡았다.
이날 토론 내용을 쟁점 별로 정리해 싣는다.
발제문 요약/예술인 노조, 그 방향을 찾는다
전북의 경우, 전북도립국악원 노조에 이어 올 들어 전주시립예술단 노조가 출발하면서 문화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노조 출현의 당위성과 더불어 그 추구하는 방향에 있어 사회적 공감과 합의를 얻어나가고 있는가에 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다.
'예술이 노동일 수 있나?'로 출발하는 예술노조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입장,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무대 예술인들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관심으로부터 파생된 관점, 그들의 환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하더라도 관립단체 중심의 노조 활동을 기득권 보호차원으로 이해하려는 인식 등이 깔려있다.
예술노조 태동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IMF와 함께 몰아쳐온 구조조정의 바람이었다. 국가적 경제위기 속에서 관립예술단체는 구조조정 대상의 맨 앞 대열에 서 있었고, 구조조정의 대안으로서 민간위탁 노선이 자연스럽게 대세로 자리잡았다. 이 같은 공연단체의 주변 환경 변화는 예술단원들의 위기의식을 자극시키기 알맞았으며,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공론화되지 못했던 내·외적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표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관은 공공의 이익, 문화예술활동의 지원이라는 차원에서 예술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노사의 문제에 사측 입장인 관의 이익이 구체적이지 않고 다분히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는 특징이다. 그러기에 지원의 의무를 가진 관에 대항하는 예술단체 노조의 파업은 파업이 아닌 공연투쟁이라는 역설적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술단-행정-의회-지역민-예술단이라는 특유의 고용 고리, 혹은 영향 관계도 예술단체 노조만이 갖고 있는 특수성이다.
예술노조는 왜 생길 수밖에 없으며,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해나가야 할까? 일반 생산노조와는 확연히 다른 태생적 위상을 지켜나가면서 공익적 기능을 감당해야하는 예술노조는 그들만의 또 다른 기준을 갖기 위한 과제가 주어지고 있다.
예술노조 탄생, 어떻게 볼 것인가
과거 예술관련 노조가 예술의전당, 정동극장 노조 등 무대기술과 예술행정 등 무대 밖의 공연 예술 노동자를 중심으로 생겨난 데 비해, 근래 들어서는 사회적으로 노동자로 인식되지 않았던 연주자, 무용수, 배우 등 무대 위의 예술인들이 노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예술인들의 노조 설립에 긍부정적 시각이 공존하는 것은 '예술이 노동일 수 있는가'에 관한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이뤄지지 못해 왔다는 점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김정수씨는 발제를 통해 "예술이 노동일 수 있는가라는 시각에서 출발해 예술노조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입장,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무대 예술인들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관심으로부터 파생된 관점, 그들의 환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하더라도 관립단체 중심의 노조 활동을 기득권 보호차원으로 이해하려는 인식 등이 깔려 있다"고 들고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예술활동이 우리네의 먹고사는 문제와 절실하게 직결되어 있지 않은 문제이기에, 일반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져 있었다고도 보는 것이 타당한 지적이다"며 예술인 노조에 대한 일반의 시각을 분석했다.
예술인 노조 조합원들은 사회적 합의나 인식이 전제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자신들이 왜 노조를 설립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당위와 필요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항윤 도립국악원 노조 위원장은 "예술인 노조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되어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문화예술이 사회 공적인 지원 없이는 존립이나 유지가 곤란한 현실 속에서 열악한 근무 환경을 국악원장체제나 관립단체라는 위치에서는 쉽게 풀어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했다"며 "그것이 하나의 장벽으로 다가와 단원들의 불만을 발생시켰고 특히 도립국악원의 경우 민간위탁이라는 복병이 나타나면서 검증 없는 제도로 국악원이 운영된다면 그간 국악원이 쌓아온 역사와 위상에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위기감과 국악원 구성원으로서 이를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 징계까지 감수하며 집단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집단행동과 단원들의 의지를 효과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제도적 통로로 도립국악원 노조 설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필연론이다.
이창석 민주노총 전북본부 조직부장은 "예술인도 노동자다, 라는 인식보다 오히려 공무원도 노동자다, 라는 시각이 훨씬 더 사회적인 보편성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에 예술단 노조의 탄생은 민노총의 입장에서도 다소 생소하게 다가섰던 게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의 보편성으로 보자면 예술인 역시 노동자로 인정해야 하지만 막상 이들의 이해와 요구는 용납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 같다"고 말해 아직 예술인 노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일반화되지 못했음을 시사했다.
전북지역 예술인 노조 탄생의 배경과 의미
전북에서는 2001년 전북도립국악원 노조가 예술인 노조로서는 첫 발을 내딛으며 예술인 노조 탄생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후 전주시립예술단이 올 초 노조 설립에 착수, 예술인과 노조에 관한 문화계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관립단체 소속 예술단원들의 노조 설립은 도립국악원 민간위탁 공방으로부터 촉발됐다. 민간위탁 공방 중에 불거진 단원들의 신분 보장과 선발 기준, 그리고 문화예술의 공공적 측면에 대한 전반적 점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나서면서 단원들의 불만과 요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됐다.
발제에서 김정수씨는 "장기적이고 유연한 문화 정책 부재나 안정적이고 균형 있는 예술단 운영 계획 미비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노출시켰는데, 각 예술단 내부적으로 크든 적든 오디션 제도를 둘러싼 잡음, 단장 혹은 감독의 전횡과 비리 문제 등을 안고 있었고, 이 문제들은 가끔 사회적 관심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었다"며 "특히 몇 분간에 걸친 오디션으로 일년 활동을 결정짓는 평가의 불합리와 불안한 근무여건에 차츰 불만을 느끼게 되었고, 산발적으로 이어진 해고사태와 법적 다툼, 갖가지 내부 갈등 그리고 수 차례의 노조 결성 시도 등은 바로 이러한 신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표출"이라고 설명했다.
김종균 도립국악원 노조 정책부장은 이에 덧붙여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노동자 혹은 예술인의 역할을 고민하고 이 사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올바르고 정당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며 "관립단체가 기득권 계층의 입맛대로 운영되거나 생색내기 행사에 관립단체의 존립 근거가 유지돼 온 것, 또 재정적 압박이 가해지면 예술단체가 구조조정 일순위가 되는 현실 등이 단원들의 불만을 낳았고, 이는 단원들 역시 관립단체의 운영 주체가 되어 공공성 확보에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 노조 설립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관립예술단 소속 단원들이 그동안 경제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얻어 문화예술인들이 선망하는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잡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관과의 불평등한 관계나 피고용인으로서의 불안 등이 불만과 불신으로 쌓여오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노조 설립을 추진하게 됐다는 이야기.
문윤걸씨는 "신분상의 불이익을 타개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는 사실보다는 그동안 사회적 위상을 부여받은 관립 예술단원들의 공연 행위가 보편적인 노동의 의미에서 받아들여지게 됐다는 점이나 예술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예술 행위를 노동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예술인 스스로 공공의 의미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에 따라 노조 설립이 갖는 의미는 고무적인 것으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예술, 노동으로 볼 수 있나
예술인 노조에 사회적인 합의와 설득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예술이 과연 노동행위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필요한 대목. 이날 포럼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던 것은 예술인 역시 노동자라는 사실에 대부분 공감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노동의 질과 강도를 경제적 가치로 계량화하는 데에는 문화예술이 갖는 특수성으로 볼 때 섣불리 다가설 수 없는 부분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어서 '예술인의 노동'에 대한 해석이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임을 시사했다.
사회를 맡은 문윤걸씨는 "신분상의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노조를 설립했다면 그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며 "굳이 노조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단체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노조를 고용인과의 대결구도를 성립하기 위한 방편으로서가 아닌, 예술이 노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는 사실에서 노조 설립의 근본적 당위를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포문을 열었다.
이창익 민주노총 조직부장은 이에 대해 "예술이 노동행위라는 사실은 노동법에도 엄연히 명시된 사실"이라며 "왜냐하면 예술인 역시 자기 근로를 제공해 임금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립국악원 노조 위원장 이항윤씨는 "예술인이냐 노동자냐의 문제는 고용 형태를 보면 쉽게 해결된다"며 "문제는 직장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음악을 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음악 행위를 하고 있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예술인들 역시 노동자나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노조 문제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립예술단원들은 특히 피고용인의 입장으로 고용인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나 근로를 제공해 급여를 받는다는 점에서 노동자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게 참석자들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노동시간과 강도를 어떻게 계량화 해 노동성과를 평가하고 이를 공공적 이익의 차원으로 환치해 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쾌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단순 경제 논리로 문화예술 행위를 재단하기엔 문화예술이 갖는 특수성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도립국악원 노조 유학식 정책실장은 "용광로에서 철을 녹이는 노동자와 도자기를 굽는 도예가의 경우를 똑같이 노동이라는 말로 묶어낼 수는 없다고 본다"며 "예술인의 노동은 자기 충족감과 열정, 창의성 등이 강하게 내포돼 있다는 점에서 현 시점으로는 산업형 노조와 예술인 노조를 달리 봐야할 것"이라며 예술인의 노동은 좀 더 특수하게 바라볼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이창석 조직부장은 "예술인과 일반 노동자들이 느끼는 자신의 영역과 가치는 분명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이 노동자냐 아니냐를 나누는 척도는 아니다"며 "중요한 건 예술은 돈을 주고 소비하는 것이고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가치를 계산할 때 예술 역시 분명한 상품이라는 점에서 예술인과 노동자의 차이는 겨우 심리적인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백민기 시립예술단 노조 부위원장은 "예술인이 노동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는 관립예술단이 노조를 만들 때 자기 예술단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없다면 공연 작품은 무형의 가치로밖에 여겨질 수 없고, 그렇다면 더더욱 예술인의 성과와 공연 내용을 철저히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문윤걸씨는 "사측이 노조 조합원들을 평가하는 효율적인 방법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예술가 스스로 노동자라 칭하고 나섰다면 스스로의 노력과 행위를 계량화하고 그것에 맞춰 합당한 대우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종균 도립국악원 노조 부위원장은 "외국의 많은 나라들이 순수예술 분야는 국가에서 공적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술단체들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야 한다는 차원에서 지원을 하는 것인 아니다"며 "경제적 가치를 떠나서 문화예술이 갖는 자체의 가치와 힘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예술인 노조 역시 문화예술의 가치와 지원을 감안할 때 사회적 공공성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예술단의 성과를 계량화하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 수익 창출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술인 노조의 역할에 대한 명쾌한 자기 논리와 이해가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문윤걸씨는 자리를 마무리지으며 "노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조합원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나 이익창출 내용을 증명하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고 말하고 "예를 들어 노립국악원이 노조 없이 관의 지원을 받을 경우, 단원들보다는 지원자인 관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지만 노와 사의 관계가 성립될 경우 사업의 결과를 함께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무형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고 이를 토대로 노조의 전략과 전술이 갖춰져야 할 것"이라며 노조의 건강한 역할론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