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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 | [문화저널]
보이지않는 길에서 보이는 길을 생각한다.
박남준(2004-02-05 12:11:55)
크고 작은 길이 있다. 만남의 길. 세상의 모든 만남은 길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길이 이어져 인연을 맺고 사랑하며 길을 달리하여 세상의 모든 이별이 시작된다. 길위에서 갈길을 잃어버린 정처없는 헤매임, 방황하는 나그네의 길이 있으며 어느 곳에도 마음 깃들 수 없어 부는 바람처럼, 뜬구름처럼 떠도는 역마의 길이 있다. 권대로운 일상의 길이 있는가 하면 세상의 모든 그리움, 너에게로 향하는 뜨거운 사랑의 길이 있다. 그 길을 지날때마다 나는 묘한 기분에 빠져 들고는 한다. 무심결에 지나치기 쉬운 그러나 그곳을 지나쳤다가도 문득 생각이 미쳐 뒤돌아 보면 변함없이 서 있었다. 도로원표. 마을과 마을간의 거리를, 도시와 도시간의 거리를 알리는 모든 거리의 시발점이 되는 지표. 전라북도 도로원표는 지금의 중소기업은행 앞에 서 있다. 이전의 시청 청사가 있던곳, 그리고 그 옆은 전화국이 옮겨가고 서슬퍼런 대공분실이 자리잡고 있는 곳, 바로 그곳에 전라북도 도로원표가 서 있는 것이다. 부산과 목포까지의 거리를, 서울과 평양까지의 거리를, 아 그곳, 듣기만 해도 가슴 설에이는 갈수 없는 내나라 땅, 그 땅의 이름들, 청진과 신의주까지의 거리를 알리는 도로원표가 쓸쓸히 서 있는 것이다. 통일을 이야기해도 죄가 되어 끌려가는 이 참담한 시대에 그것도 대공분실 건물옆에 평양과 청진, 신의주의 지명이. 그곳까지의 거리가 써 있는 것이다. 내가 이곳 전주에 와서 살며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아 그때의 감동이라니, 뒷머리를 얻어맞은 거첫럼 온통 하얗게 비어가는 것 같았지. 그것은 하나의 놀라운 발견이었으며 충격이었다. 새해. 가고 싶은 길이 있다. 가야할 길이 있다. 그길은 세상의 모든 길에 우선한다. 어떤한 길도 그길에 먼저 일 수 없다. 흐르는 것은 흐르는 것으로 이어지듯 내집 모악산을 오르내리는 산길도 이어져 있겠다. 그 길을 가면가면 비록 지금은 가로막혀 갈수 없는 길이지만 언젠가는 두발로 걸어서 갈수 있겠다. 그때는 기차도 버스도 타지않고 걸어서 갈 것이다. 모든 김구와 모든 문익환과 모든 문규현과 모든 임수경과 함께 갈 것이다. 또한 모든 이광웅 모든 김남주 모든 황석영 모든 열사 모든 짓밟힌 자들이 함께. 함께 갈 것이다. 새벽처럼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서면 저물녘에는 개성 어디쯤 국밥집에서 따듯한 국밥 한그릇에 대동강소주도 한잔 두잔 거나해 질 것이다. 새해 아침 나는 작은 산길에 서서 산너머로 산너머로 이어져 흐를 저 북쪽, 북쪽 내나라를 걸어가는 그날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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