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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 | [파랑새를 찾아서]
세상 그 어떤 책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
글 김찬곤 어린이신문 굴렁쇠 대표(2003-03-02 20:36:58)
요즘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책을 안 읽으면 참 속상해합니다. 그래 어떻게 해서든지 책을 읽게 하려고 하죠. 그러다 정 안 되면 책을 읽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학원에 보내기도 합니다. 더구나 학원이나 학습지 회사들이 수학능력시험이나 논술이나 면접을 잘 보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떠들어 대니 더 극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형편이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식이 책을 많이 읽으면 자랑하기에 바쁘죠. 우리 아들은, 우리 딸은 책을 얼마나 좋아한지 몰라요, 하루에 두세 권은 거뜬히 읽는걸요, 어디 가서든 책만 있으면 조용히 읽기에 바빠요, 이러면서 자랑을 합니다. 또 자기 자식이 책을 읽든 안 읽든 간에 책을 참 많이들 삽니다. 초등학교 아이가 두셋 있는 집에 가 보면 책장에 책이 꽉 차 있는데, 얼추 셈을 해 보면 한 천만 원은 넘어갈 듯싶습니다. 전집으로도 사고, 할부로도 사고, 낱권으로도 사고. 그 집 아이들이 다 읽었는지, 읽고 있는지, 아니면 아주 안 읽는지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참 많습니다. 부모들이 하도 책, 책 하니까 저는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요즘 아이들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탈인 것 같아요. 아 친척 집에 가면 자기 또래 형제들과 말도 하고 재미나게 놀아야 하는데, 한쪽 구석에 가 책만 끼고 있으니, 보기에 참 딱합니다. 하지만 그 부모들은 그 때를 놓치지 않죠. 우리 아들 좀 보세요, 우리 딸 좀 보세요. 저렇게 책을 좋아한다니까요. 이렇게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나는 놀 때는 놀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기도 그렇잖아요, 아 바닷가에 놀러 와서 텐트 속에 엎드려 일기 쓰고 있는 아이가 어디 정상입니까? 놀러 나왔으면 신나게 놀아야죠. 하지만 어른들은 산이나 강이나 바닷가에까지 일기장 챙겨 오게 해서 쓰게 합니다. 자기들은 술이냐, 고기야 먹고 재미나게 놀면서 아이들한테는 일기나 쓰게 하고. 어떤 아이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일기를 씁니다. 난생 처음 타 본 비행기라면 그 기분, 그 느낌을 즐겨야 하는데. 제 짐작이지만 비행기 안에서까지 일기를 쓰게 한 부모는 아마 이랬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엄마, 나 비행기 처음 타 보니까 정말 좋아, 좀 무섭기도 하고." 이렇게 말하니까 그 부모는 "야 그 느낌, 빨리 일기에 써. 특별한 일이잖아." 책이고 일기고 간에 읽을 때 읽고, 쓸 때 쓰면 됩니다. 아, 놀 때는 신나게 땀 흘리며 놀아야 하고요. 이렇게 살아가는 게 진정 아이들답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 참 보기 힘듭니다. 부모들이 하도 책, 책 하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에 나와 있는 그 어떤 책으로도 그런데 요즘은 이게 아주 도를 넘어선 듯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요즘 부모들은 책이면 다 되는 줄 알아요. 책으로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말예요. 더구나 무슨 독서 치료 과정까지 대학 사회교육원이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바람에 이런 바람이 더 세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또 책을 빌려 주는 회사까지 곳곳에 들어서면서 더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다음 아래에 들어 놓는 보기는 어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한번 읽어 보죠. (가)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애인데요, 떼를 아주 잘 씁니다. 손님이 올 때 더 심하고요, 까먹을 돈이 없으면 아무한테나 달라고 해요. 사람들한테 민망할 정도입니다. 이런 아이에게 도움되는 책은 없을까요? (나) 우리 아이는 동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든요, 그러니 읽고 나면 동무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책 좀 권해 주세요. (다) 우리 아이는 자신감도 없고 산만하거든요, 그래 읽고 나면 자신감도 얻고 산만한 것도 해결할 수 있는 책 좀 권해 주세요. (라) 우리 아이는 부끄러움을 잘 탑니다. 집에서는 그렇게 똑똑한데 밖에만 나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우리 아이가 밖에서도 말 좀 잘할 수게 하는 책이 있을까요? 뭐 이런 질문이 꽤 많이 올라옵니다. 물론 이런 부탁을 하는 부모도, 아이가 그 책을 읽는다 해서 그런 문제가 곧 해결되리라고는 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질문을 하는 부모가 꽤 있는 걸로 보아, 책으로 이런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가 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이 세상에 나와 있는 그 어떤 책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건 집안 사람들 문제이고, 그 아이 성격 문제입니다. (가) 같은 경우는 꾸짖어 고쳐야 할 것이고, 만약 꾸짖어서도 안 되면 매를 들어서라도 그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나)나 (다)나 (라) 같은 경우는 부모나 형제들이 사랑으로 보살피고, 함께 어울리면서 풀어가야 합니다. 이런 걸 고치겠다고 태권도라든지 웅변학원에 보내는 부모들이 있는 줄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이건 아이 성격 문제이고 타고난 '체질'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억지로 고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다만 부모가 할 일은 동무들과 늘 어울려 놀게 하고, 형제나 친지들과 늘 어울리게 해서 스스로 고치게 해야 합니다. 좀 시간이 걸리겠지요. 멀쩡한 자기 자식 정신을 치료하겠다고 그런데 요즘 듣자 하니, 독서 치료에서 이런 걸 책으로 고칠 수 있다고 하는가 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독서 치료는 정신과에서 하는 여러 치료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거든요. 미술 치료라는 것도 마찬가지죠. 또 이는 어떤 충격으로 마음이 망가진 아이를 치료하는 데 쓰는 하나의 방법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게 이 나라에 와서는 무슨 특별한 교육 방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나라입니다. 멀쩡한 자기 자식 정신을 치료하겠다고, 그 귀한 돈 들여 배우고, 그런 학원에 보내고 있으니.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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