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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 | [한상봉의 시골살이]
<한상봉의 시골살이> 봄돌의 보름날
한상봉(2003-03-02 20:35:13)
집 뒷켠 처마에 잇대어 만들어 놓은 공부방이 묵은 겨울 외투를 벗었다. 난방장치를 전혀 해놓지 않은 뒷방에서 갑작스레 글을 쓸 때는 원적외선 난로를 궁여지책으로 켜놓곤 했는데, 뒤꼍으로 난 큰 창문은 두꺼운 겨울용 커튼으로 가려놓았다가 오늘 걷어냈다. 창호문을 여니 윗집 토담이 보이고, 바위 사이로 듬성듬성 나 있는 대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이 방은 언제나 그늘이 지지만, 그래도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만 한 걸 보니, 날씨가 퍽 포근해진 모양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보옴'이라고 발음해 본다. 경망스럽게 봄을 노래했다간 싸늘한 바람을 맞을 것 같아서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어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다가 지은 별칭이 다시 새겨진다. '봄돌'이다. 내 천주교 세례명이 이시도로(isidorus)인데, 그걸 한문으로 풀어서 이시돌(異示乭; 다르게 보는 돌)이라고 불렀는데, 별칭을 지으면서는 '다르게 본다'는 게 너무 주제를 모르고 하는 말인 듯 싶어서, 다를 이(異)자를 빼고 그저 '보는 돌'이란 뜻으로 '봄돌'이라 지었다. 아마도 '따뜻하게 달구어진 돌'이란 바램을 담아본 것 같다. 살다보니, 워낙 일 중심이고 사무적인 태도를 많이 갖고 있는 인간성을 좀 바꾸어볼 요량에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한참 시일이 지나고 나서, 어느 날 문득 다시 읽어보니, 거꾸로 보면 '돌봄'이 되었고, 말 짓기를 즐기는 취미가 발동해서, '따뜻한 시선으로 돌보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뜻으로 이름을 읽어내게 되었다. 이 역시 나의 자연스런 흐름이 그 이름을 낳은 게 아닌가, 생각하며 흐뭇해하고 있다. 예전에 성서공부를 할 때 보면, 이스라엘 사람이나 우리 조상들이나 이름에 뜻을 담고,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의 어떤 '천명(天命)'을 호출하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늘이 하나의 인격을 불러 세워 사명을 맡기는 것이다. 그제는 정월 대보름이었다. 마을에서 갑자기 그 날 풍물을 치면서 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아랫집 내외가 둘 다 예전에 풍물가락을 배운 사람인지라, 나랑 동년배인 길수가 상쇠를 맡고, 마을 몇 사람이 하루 전에 장단을 맞추어보고, 집집이 돌면서 놀자는 것이다. 당일 아침에 서둘러 우리 집에서 깃발을 만들게 되었는데, 갑자기 광목을 구할 수 없어서, 달력종이를 붙여서 그 뒤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크레용과 파스텔로 글씨를 썼다. 이 깃발을 대나무에 걸어서 들고 점심나절부터 풍물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연습도 없이 징을 잡는 바람에 상쇠 하는 친구한테 온갖 구박을 받으며 따라다녀야 했다. 덕담을 놓을 때마다 어느 집에선 오징어 한 축을 내오기도 하고, 과자를 꺼내기도 하고, 호박죽이나 약식을 준비한 집도 있었다. 마침 화천 산골에 사는 아이들 다섯 명이 놀러와 있던 차에, 동네 사람들이 마지막 집에 모이고 보니, 아이들만 십수명이 재잘거리는 통에 정말 잔칫날 같았다. 풍물을 끝내고 반장 집에 모여서, 윷놀이도 하고, 술도 마시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날 따라 날씨가 흐려서 선명한 보름달을 보지 못한 게 이내 아쉬웠다. 다음날 저녁에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고 나오다가, 대숲 너머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았다. 어쩜 저렇게 크고 맑을 수 있을까. 황금빛 달이 넉넉하고 따듯한 기운을 실어왔다. 밥을 먹고 아이와 길가로 나와서 달구경을 하였다. 아내가 소원을 빌고, 아이가 "달달 보름달, 쟁반같이 둥근 달…"하고 노래부르는 동안에, 아랫집 처자도 밖으로 나오고, 무주 산골 광대정의 보옴이 그렇게 나직이 환하게 왔다. 그 보옴 달빛마저 내 마음 속에서 돌덩이를 덥히고 데워서 올해는 무언가 어느 인생 하나쯤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온기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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