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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 | [삶이담긴 옷이야기]
<삶이담긴 옷 이야기> 미워도 군대패션
글 최미현 패션 디자이너(2003-03-02 20:31:11)
미국이 이라크를 과연 공격할 것인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서 반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요즘 세계의 패션계는 점점 군대패션의 입김이 세어지고 있다. 획일성, 경직됨 등의 나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명한 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무장을 하고 행진을 하거나 적지에서 전투를 하는 화면을 보면 확실히 남성답고 믿음직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이 남성다움이 군대패션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외형상 남자의 매력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옷이 바로 군대의 정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옷은 가장 남자답게 느껴지게 하고 남자의 신체적 매력을 가장 잘 나타내 준다. 목은 짧고 굵게 보이고 상대적으로 가슴은 길고 넓고 평평하게 보이게 한다. 남자들이 셔츠를 입고 타이를 매는 것도 목은 짧고 가슴은 길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또 어깨에 견장이 붙어서 어깨를 더욱 강조해 주는데 어깨는 권위를 나타내고 권위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의상은 전체적으로 견고한 느낌을 주는데 그에 비해서 장식은 아주 화려하다. 금단추나 금줄 장식을 하고 모자에도 금줄을 두른다. 이런 모습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남자의 힘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군대에서 유래된 의상은 꽤 많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더플코트는 북 유럽 어부들의 코트였다가 영국 해군의 코트가 되었으며 나중에 스포츠 코트로 일반인들 사이에서 자리잡은 옷이다. 가을인가에 이 코너에 소개한 적이 있는 트랜치 코트 역시 영국 육군의 참호용 방수코트 이었다 일반인들이 입은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막에서 싸우던 군인들이 입었던 군복에서 비롯된 사파리 점퍼, 미 육군에 지급되던 속내의에서 유래한 티셔츠 등도 지금은 일상 복으로 자리잡은 대표적인 군대패션들이다. 영국의 아서 웰링턴 장군이 즐겨 신었던 데서 유래한 긴 검은 가죽부츠, 군화, 통신병들이 매던 가방에서 유래한 가슴을 가로질러 매는 가방, 베레모 등도 있다. 이런 군대패션들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 보다 실용적이라는 것이고 카키, 올리브 그린, 네이비 블루 등의 색이 몸을 은폐하기도 좋지만 때가 타도 잘 안 보인다는데 있다. 이것 역시 어찌 보면 실용적인 요소이다. 요즘 사관학교 수석 졸업도 여자가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성들이 군복을 입었을 때는 남성들과는 또 다르게 중성적이면서 동시에 에로틱한 면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런 옷을 입음으로서 남성들과 같은 권위와 힘을 가지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고 여겨져 왔다. 여성들이 남성복을 입기 시작한 것 역시 전쟁의 영향인데 2차 세계대전 때 옷감소비를 줄이고 일하기 좋은 형태로 여성들의 의상을 바꾼 것이다. 오늘날 여성 비즈니스 웨어의 전형으로 알려진 테일러드 슈트와 무릎길이의 스커트는 그 당시에 확정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이런 의상은 권위적인 느낌을 준다고 해서 유행에서 멀어졌다. 요즘 유행하는 군대패션은 개구리 문양이라고 불리는 카모 플라쥬 무늬와 금속 체인들, 크로스 백, 손목시계, 라이터, 작은 스카프 등이다. 예전보다 훨씬 귀엽고 부드러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공포와 암울함을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극복해냈고 그 중에도 기발한 발상들을 했다. 예를 들어 신문지로 모자를 만들어 쓴다거나 스타킹을 신는 대신 다리 뒤쪽에 펜으로 줄을 그려 넣었으며 -당시 스타킹은 다리 뒤쪽에 봉합 선이 있었다- 낡은 옷을 뒤집어서 안쪽이 겉으로 나오도록 새로 지어 입기도 했다. 전쟁 당시와 그 뒤에는 다시는 입지 않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고 뭔가 새로운 것을 위해 다시금 군대 패션들을 착용한다. 길었다 짧아졌다, 넓어졌다 좁아졌다, 부드러워졌다 딱딱해졌다, 참 옷이 벌이는 놀이는 간단하면서도 요사스럽다. 무슨 이유에서 인간은 다른 부분에 비해 패션의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너그러울까. 어째서 사람들이 이런 급격한 변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오늘처럼 몸도 마음도 지치는 날에는 이런 것들이 참 피곤하고 허망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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