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 | [교사일기]
즐겁고 재미있는 교실을 상상하며
글|조영선 한별고등학교 교사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주 근영여고를 졸업했으며 전북대학교 (2003-03-02 20:30:01)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위정자들은 그들의 원대한 포부를 펼쳐 보이며 희망찬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 교육에 대한 계획 또한 늘 중요 쟁점으로 등장한다. 문민 정부라 일컫던 김대중 대통령 정부도 교육정책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교사 정년 단축을 실행하여 젊은 교사들의 대거 영입으로 혁신적인 교육을 이루어낼 것이라 확신하였다. 원로 교사 한 사람의 보수로 신규 교사를 세 사람을 채용할 수 있다는 시장 경쟁의 논리마저 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실질적으로는 퇴직 교사가 시간 강사로 출강하는 경우가 많았고 교사 정원도 그리 많이 늘어나지도 않았으며 여러 면에서 공교육의 위기를 거론하는 목소리만 높아가고 있다.
특기적성 교육의 활성화는 구시대 보충 수업이 부활한 다른 이름이었고 한동안 주춤했던 야간자율학습이 부활하였으며 수준별 심화 보충학습이 등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의 증가를 호소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학생이나 교사, 학부모의 부담은 무척 커 보인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교육 개혁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좁은 의자에 앉아 온종일 공부하지만 성적이 쑥쑥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 교사들 또한 명색뿐인 방학동안 특기적성 교육에 지치기는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어느 제자로부터 받은 편지 구절이 생각난다.
" 저는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좋은 성적이 나오니 좋겠지만 저는 오히려 공부 잘하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힘들어요"
그래서 늘 선생님과 부모님께 죄송하다던 그 구절이 지금껏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이 땅의 학생으로 살아가자면 공부를 못하고서는 버티기 힘든 풍토. 그렇다고 누구나 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하나같이 일류 대학을 목표로 공부해야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울 때가 많다.
물론 공부가 아니더라도 한 가지만 잘하면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도 말한다. 어찌 보면 우리 교육이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백년지대계라던 교육이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바뀌고, 몇몇 정책 결정자들이 바뀔 때마다 독일식이었다가 미국식이 되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20여 년 전에 실패한 정책으로 인정되었다는 "열린 교육"이 한동안 극성을 부리기다가 이제는 우리도 "열린교육"이란 용어를 쓰지 않겠다는 공문이 오기도 하고...... . 입학 당시의 입시제도와 졸업할 때의 입시제도가 바뀌어 있어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하는 지 어리둥절 할 때도 있다.
IMF무렵에는 일부러 교사들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싶게 언론 매체들은 교사들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었다. 말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교육의 주체이어야 할 교사나 학생에 대한 배려는 뒷전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원 선생이 가하는 체벌은 성의의 표현이고 교사가 가하는 체벌은 폭력교사인 거라던 자조적 우스개 소리가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이르고 보면 교사인 내 자신이 참으로 작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 스스로 교육자임을 비관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일찍이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보다는 질병에 걸리지 않게 예방하는 교사가 되기를 원했었다. 비록 적은 힘이지만 나의 수업이 아이들의 마음을 살찌게 하리란 믿음과 설레임도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도 모른다는 아이들에게 황지우나 백석의 시를 가르치면서, 이청준의 "벌레이야기"에 나오는 알레고리의 의미를 공부하면서 나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한 사람이 된다. 분필을 고운 포장지로 말아서 교탁 위에 놓아주는 은선이, "문학샘,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진주, 고등학교 진학할 형편이 못되어서 산업체 학교에 가서도 끝내 대학까지 졸업한 현구... .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들이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고 삭막해져가도 우리 아이들의 눈망울에 남아있는 작은 웃음들이 모여 이 세상을 밝게 비출 것이란 것을 나는 믿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한 부분으로 기억된다. 2차 세계대전 시절 유태인 수용소에서 하루에 두 덩이 지급되는 빵으로는 허기도 채우기 어려운 형편인데 그 중 한 덩이를 남겨서 주머니에 넣어두고 배가 고플 때마다 만지면서 좀 더 배가 고파지면 이 빵을 먹자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 한결 굶주림을 견디기가 쉬웠다던 프랭클 박사의 회고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공교육의 위기가 조심스레 거론되고 가끔은 학교나 교사에 대한 따가운 눈초리가 있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의 아이들은 파릇한 새싹으로 자라나고 있다. 나 또한 새싹이 쑥쑥 자라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기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아이들과 씨름하고 있다. 우리들의 이 작은 소망과 진지한 노력이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발전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다만 새봄에는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더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가 주체가 되는 교육 정책이 입안되고 실천되기를 바랄 뿐이다. 몇몇의 소신 있는 외부 인사에 의해 교육 정책이 흔들리지 않고 교육 주체에 의한 부단한 정진으로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의 위상을 지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즐거운 학교 재미있는 교실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