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 | [사람과사람]
'진실을 도민에게'…쪽방에서 일구는 세상 풍경
인터넷 대안매체 '참소리' 일꾼들
글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3-02 20:27:53)
무릎을 맞대고서야 겨우 세네 명 정도 들어가 앉을만한 세평 남짓한 쪽방. 이곳에서 인터넷 대안매체 '참소리(www.cham-sori.net)'가 세상 속 깊은 공명을 꿈꾸며 착실히 터닦음을 해가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비록 소박한 쪽방 한켠에 둥지를 틀었지만, 21세기 쌍방향 소통의 '총아'라 불리는 인터넷을 주무대로 삼고 있기에 온라인에서만큼은 두루두루 세상을 아우를 만한 든든한 두 날개를 가진 그들이다.
지난해 12월 6일 정식으로 문을 연 '참소리'는 이제 막 신고식을 치르고 운영 3개월째에 들어섰다. 전북지역 민중운동의 최전방에 서 왔던 문규현 신부가 대표를 맡고, 박민수 변호사를 비롯해 노동운동의 여전사 오두희씨, 민주노총 전북본부 염경석 본부장 등 지역 시민단체와 재야인사 10여명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실제로 컨텐츠를 꾸리고 내용을 엮어가는 실무 편집진은 서른한살 동갑내기 최인화·김현상씨다.
인권운동단체인 전주 평화와인권연대에서 일하던 오두희·최인화씨가 사업 제안과 구체적 실무를 진행하면서 몇몇 뜻 맞는 이들을 포섭해 '대안 언론'에 대한 꿈을 현실화했다. 물론 인터넷이라는 훌륭한 매개와 조우할 수 있었던 '시대의 덕'도 컸다.
대학에서 운동권 세력으로 사회 비판적 시각을 길러온 이들이 사회운동단체의 활동가로 성장해 오는 동안 대안 언론을 향한 갈급은 더욱 깊어졌다. 기성 언론이 일방적 의사소통의 구조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컸기 때문이다. 인터넷 대안매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도 마침 좋은 기회였다.
"소외된 이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지역 언론이 거의 다루지 않거나 다룬다 해도 단신으로밖에 다루지 않아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러면서 소외된 이들의 삶과 목소리를 담아보자는 이야기가 자주 오가곤 했었죠. 평화와 인권연대에서 발행하는 인권신문도 그런 의지를 담은 매체 중 하나에요. 그러던 차에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인터넷 매체가 영향력을 갖고 긍정적인 역할을 해나가면서 어느정도 힘을 받을 수 있었던 거죠."
뜻이 있고 함께 할 동지를 만났으니, 반은 성사된 일이었다. 그러나 변변한 자금줄 하나 없이 출발점에 선 이들에게 믿을 거라곤 오직 자신들뿐이었다. 초동 멤버 10여명이 사재를 털고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 한푼 두 푼 모은 종자돈으로 4백만원짜리 서버, 말하자면 인터넷상에 든든한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컨텐츠는 크게 사회 노동 평화 교육 환경 문화 생활 정보 등으로 나뉘어지고, 기획연재와 특집 등에는 참소리가 주목하는 집중 보도물들이 담겨진다. 소박하나마 인터넷 방송도 살뜰히 운영되고 있다. 실무진은 단 두 명이지만, 참소리에 애정을 가진 후원회원과 글을 올리는 기자회원 등 100여명이 참소리를 꾸려가는 주인이다. 참소리가 갖는 최대의 미덕과 가치라면, 민주적인 의사소통구조를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있을 것이다.
인터넷 웹진 '오마이 뉴스'처럼 도민과 시민들이 모두 기자가 될 수 있지만, 아직은 홍보가 미흡해 기자 회원 모집이 눈앞의 과제다. 구석구석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안정적으로 올라오도록 유도하고는 있는데, 그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두 실무진의 묵직한 고민이 실려 있다.
"조급증 내지 않고 아직은 안정화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처음 문을 열었을 땐 하루에 기자 회원 기사가 10건 정도 꾸준히 올라오곤 했는데, 글을 지속적으로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컨텐츠 메우는 일이 무척 버겁습니다."
컨텐츠가 부족하다고 올라온 글을 아무 거름장치 없이 올려놓지는 않는다. 근거 없는 이야기나 공동의 정서를 해칠(?) '위험한' 글은 실무자와 기자 회원 사이에 충분한 토론과 조정을 거치고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보니, 실무를 맡고 있는 최인화·김현상씨는 그야말로 '멀티플레이어'가 될 수밖에 없다. 편집기획과 기술 담당, 취재와 글쓰기, 사진 및 영상 촬영에 이르기까지 갖고 있는 능력을 120%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말로는 멀티플레이어지만, 저희들끼리는 잡부라고 불러요. 아직은 의욕만 앞섰지, 전략적으로 성숙한 능력을 갖췄다고 말하기엔 이르죠. 하지만 사람들 하나하나 만나가면서 알려나가겠다는 생각은 늘 염두에 두고 있어요. 실무진이 적은 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에요. 지역민들의 정서를 담아보겠다고 출발한 만큼 매체답지 않은 부족함은 성실히 메우고 알차게 가꿔나가려는 자세가 중요하죠. 착실히 필진을 확보해 가면서 전문적인 취재 역량도 갖춰나가려고 합니다."
참소리 컨텐츠 가운데 '문화' 쪽이 가장 약해 보강해야 할 부분이라며, '문화저널'의 식견과 조언을 들려달라며 역 취재(?)를 당해야 했던 당혹스러움은 이내 작은 '보람'으로 되돌아왔다. 조악한 조언이나마 진지하게 들어주는 두 실무진의 모습에서 소박한 열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석달 동안의 취재 경험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단연 '촛불시위'였다. 인터넷 매체의 매력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 기사를 통해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도록 하자는 게 참소리가 표방하는 또 하나의 목표에요. 시민들의 목소리와 표정을 담아내려고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는데, 촛불시위 기사를 계기로 촛불시위 자체는 물론 참소리의 존재도 함께 알릴 수 있어 큰 보람이었죠. 앞으로 새 정부가 제시한 지역 관련 공약사항이 지역민의 정서와 요구에 어떻게 부합해 가면서 실현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뤄보고 싶어요. 지역 개발사업의 허와 실, 이라고 해야 할까, 기성 언론들은 늘 경제와 개발이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더라구요. 참소리만의 목소리와 주장을 담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참소리의 두 동갑내기 실무진의 활약에 주목하게 하는 이유다.
참소리에 올라오는 만화 '토리 툰'의 작가 인화씨는 "대안언론으로 시작했으니 이 정도는 해야되지 않겠느냐고 큰 소리 치려면 좋은 선례를 남겨야 될 것 같다"고, 기술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현상씨는 "인터넷 매체의 효율성을 십분 활용해 다양한 이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매체로 정착시켜 나가겠다"는 말로 스스로를 독려한다.
회원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서버의 남는 공간은 공익적인 일에 내어주고 있다. 현재 7~8개의 시민사회단체와 개인 사이트 계정을 지원하고 있는데, 참소리와 정서가 통하는 이들이라면 언제라도 공간을 내어줄 수 있다고.
'모든 진실을 도민에게'. 참소리의 슬로건이다. 쪽방 안의 그들이지만, 진실과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만큼은 넓은 세상으로 힘차게 뻗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