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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 | [세대횡단 문화읽기]
겨울 가고 봄이 오듯 '통일 꽃'은 피어난다.
진행 정리 - 김회경 기자(2003-03-02 20:26:34)
민족 분단 반세기. 하나된 조국에의 열망은 한민족이라는 '당위'만으로는 결코 도달하기 어려운 목적지일까. 북핵문제를 놓고 미국은 연일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며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해 오다, 마침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바통을 넘겼다. 막강한 패권국가인 미국을 비롯해 각국의 이해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한반도 통일문제는 불행하게도 남북의 의지만으로는 쉽게 풀어갈 수 없다는 데 한민족의 서러움과 통탄이 깃들어 있다. 푸른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봄날의 초입, 냉전과 독재의 엄혹한 시간을 지나오면서도 '통일'이라는 화두를 결코 놓지 않았던 통일운동의 선구자 강희남 목사와 통일 지식인으로 불리는 원광대 이재봉 교수가 만나 통일운동에 대한 전망을 풀어놓았다. 항일투쟁에 뛰어들지 못한 노 목사의 회한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지 못한 지식인의 고뇌가 통일운동을 향한 뜨거운 불씨로 되살아나 한 자리에 모두어졌다. 21세기 통일운동을 향한 또 하나의 든든한 전선이 형성된 셈이다. 통일을 가로막는 적은 깡패국가 미국이라며 시종 '양키 고 홈'을 역설하던 강 목사와 '미국 바로 알기'를 통해 현실적인 통일 방안을 마련해가면서 지식인의 책무를 다해나가겠다는 이 교수. 차디찬 얼음을 녹이고 생명의 싹을 움틔우는 대지의 힘은, 계절을 준비하며 추위를 이겨낸 모든 생명체들의 위대한 투쟁의 산물. 통일을 열망하는 두 선후배의 만남에 겨울을 몰아낼 훈훈하고 강건한 봄기운이 어려 있다. 통일운동의 전망 / 강희남·이재봉 이 : 목사님,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평소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통해 말씀 나눌 수 있어 개인적으로 무척 반가운 자리입니다. 강 : 존경은요 무슨... 아무튼 반갑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좀 과격한 사람인데, 문화저널에서 내 이야기를 담아도 될지 좀 걱정입니다. 부시 정권이 들어선 뒤에 내가 백악관에 공개서한을 다섯 번이나 띄웠어요. 이 서한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 대사관으로도 보냈어요. 양키들에 대항해 이렇게 싸우자, 이것이 싸움이다, 직격탄을 날리자고 제안을 한 겁니다. 전 세계 대통령에게 서한을 띄운적도 있습니다. 부시의 죄목을 낱낱이 고발하고 이런 사람을 세계 지도자들이 탄핵을 해달라는 내용이었어요. 국제재판소의 피고인으로 세워야 한다고 말이죠. 옳은 이야길 하는데도 나보고 과격하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에요. 이 교수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좀 걱정이고 그렇습니다. 이 : 과거에는 어느 매체에서도 통일에 대해 크게 다루지는 못해 왔었죠. 문화저널 역시 마찬가지였겠지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으니 문화저널에 해가 되거나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웃음) 목사님도 인터뷰나 글을 올리실 때 통일 전문 잡지만 고집하지 마시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알고 관심을 갖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강 : 그래요. 그럴 필요도 있겠습니다. 이 : 목사님 스스로 과격하다고 표현을 하셨는데,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만큼은 진실을 말하면 과격해 보이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사상도 조금 공부해봤는데, 중간분자라고 오해를 받곤 합니다. 오른쪽에서는 과격하다고 말하고, 왼쪽에서는 개량주의자라고 말들을 하거든요. (웃음) 말하자면 회색분자인 셈이죠.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하고 있으니까 색깔이 맞지 않더라도 서로를 이끌어주고 포용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석박사 논문을 반미에 대해 다뤘었는데 미국에서 미국을 비판한 것이죠. 평양에 가서는 북한을 비판했더니 그곳 사람들이 교수 선생의 비판에 등골이 오싹했다는 표현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남한에서는 남한 정부나 위정자들을 심하게 비판하는 편이죠. 아무튼 저 사람 반미주의, 친북주의자 아니냐 하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면전에선 비판하고 배후에선 칭찬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이쪽에선 저쪽을 비판하고, 저쪽에선 이쪽을 비판하는 일은 적어도 하지 않겠다, 하는 거죠. 강 : 나는 북에 양키들과는 절대 대화하지 말라고 이야길 합니다. 남쪽도 믿을 사람 없다, 다 양키 똘마니다라고 이야길 해요. 나한테 권력이란 건 없습니다. 민중들은 상전으로 모시지만, 내게 권력이란 없어요. 내 나이가 이제 여든 셋인데,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이제 가릴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다 이겁니다. 어쨌든 이 교수 성향이나 말씀을 듣고 있으니 아주 흡족합니다. (웃음) 이 : 그렇습니까? (웃음) 목사님께서 언제부터 어떤 동기로 통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하고, 통일운동에 투신해 오시면서 느꼈던 점은 어떤건지 듣고 싶습니다. 통일운동은 지식인의 의무 강 : 나는 김제 농촌에서 태어났어요. 스무살을 전후한 나이에 항일운동을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골이라 그런지 일본인들의 폭압이나 항일운동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하고 자랐거든요. 뒤늦게 나 같은 사람은 부끄러운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싸우지 못한 속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죠. 국내의 못된 놈들과 싸우고 그 배경에 있는 양키와 싸우는 일에 몸바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박정희 정권 때부터 발벗고 나서게 된 겁니다. 양키들과의 싸움도 그때는 구체적이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구체화됐습니다. 처음엔 통일문제보다는 계급모순부터 해결하고, 민족 모순은 이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한에선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통일의 길도 열린다고 생각해 처음엔 그렇게 싸웠어요. 그러다 나중엔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게 해서 통일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범민련(조국통일 범민족연합)에서의 10년 활동도 그런 의지를 갖고 내 생각을 펼쳐온 거예요. 이 : 목사님 말씀을 듣다 보니, 제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는데요. 군산 임피 출신인 채만식 선생이 요즘 친일 소설가란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해방 직후 「민족의 죄인」이란 단편소설을 펴냈어요. 이러저러해서 친일 부역에 동원됐는데 그 점을 깊이 반성하면서 자신을 민족 죄인이라고 했지요. 저는 나이보다 조금 늦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80년대 초반은 대학에서 데모 없이는 하루가 안 갈 정도였어요. 그러나 저는 정치학과 학생장을 맡았으면서도 데모 주동은커녕 단순 참가조차 못해봤습니다. 그만큼 의식이 안됐고 형이 경찰이었던 집안 내력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유학 시절 한미 관계를 공부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일그러진 부분을 많이 보게 됐는데 민주화엔 참여하지 못한 죄인이지만, 이 땅의 지식인으로서 통일운동에는 빠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목사님의 경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치 저를 꿰뚫어보신 것 같았습니다. 강 : 그래요. 아주 반갑습니다. 이 교수는 정치학을 했으니, 내가 공자 앞에 문자 쓰는 격이 될 것 같습니다만, 잘 아시는 대로 육이오 전쟁 직전 북한 정권이 들어서면서 소련군이 1948년에 북한에서 철수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양키들도 - 저는 미국이란 표현을 절대 쓰지 않습니다. 아메리카라고 해야 맞아요.- 아메리카 군대들도 북에서 소련군이 떠나니 우리도 나가야 된다, 했거든요. 상식적으로 옳은 결정이었어요. 그래서 1949년 철수를 했죠. 이후부터 내 추측이 들어가는데, 결국 내 추측이 맞았다는 걸 말하려고 합니다. 양키들이 소련 사람들이 떠나니 우리도 떠나자 했던 결정은 잘 했는데, 그 후에 후회를 했다 이겁니다. 아차, 한반도를 떠나면 아시아 정책이나 세계 정책에 문제가 생길 수 있구나 하는 후회죠. 1950년 2월 초 에치슨 라인이 들어섰는데, 그건 방위선 아닙니까? 에치슨 라인의 핵심은 한반도를 내놓겠다는 의미였잖아요. 그걸 보고 내가 저 놈들이 작전을 쓰는구나 싶었어요. 이승만과 김일성이 치열하게 대치할 때, 에치슨 라인을 그은 건 작전으로밖에 볼 수 없는 문제에요. 우리가 한반도를 관계하지 않겠으니, 김일성이 쳐내려와도 된다, 그런 이야기거든요. 그러고도 김일성이 움직이지 않으니 양키들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도 우리는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이건 북으로 하여금 내려오라고 유인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결국 김일성이 스탈린을 찾아갔고, 스탈린이 오케이를 해서 쳐들어 온거에요. 양키가 군 철수 뒤에 한반도에 다시 상륙하려면 명분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전쟁이었다는 겁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양키들은 한반도를 떠나지 않고 있어요. 그네들이 냉전시대는 물론 냉전 이후에도 한반도를 뜨지 않을거라는 건 내 철칙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독일이나 일본에 양키 군대가 주둔하니까 우리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그건 천박한 논리에요. 그 나라들은 양키들과 대등한 관계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잖습니까. 이 : 목사님은 육이오 전쟁이란 표현을 쓰셨고, 미국이 아닌 양키라고 하셨습니다. 명칭 문제를 놓고 본다면, 육이오 전쟁도 바꿔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0년 6월 이전에 전투행위가 수없이 일어났는데 6월 25일을 기해 전면전으로 번졌으니, 육이오 전쟁보단 한국전쟁이라고 해야 옳다는 것이죠. 에치슨 발언이나 북이 내려와도 미국이 참전하지 않겠다는 발언은 학술 연구가들 사이에 '남침 유인설'이라는 말로 잘 알려진 이야기죠. 강 : 그래요. 한국전쟁이라야 옳겠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전쟁을 남침이라고 하는데,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살인범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죽이도록 유인한 사람 역시 살인자다라고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전쟁 전범자는 오히려 양키가 아닌가 주장을 하는 겁니다. '양키 고 홈', 미국 바로 알기부터 시작하자 이 : 예. 목사님 말씀 중에 좋은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주한미군, 목사님 표현대로 양키, 그들이 나가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나가지 않을거다 라고 하셨는데, 촛불시위를 통해 반미감정이 확산되면서 미국이 한국 사람들이 원한다면 물러 가겠다는 이야기를 해서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지 않습니까. 이 부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요. 한편에선 미군이 뜨면 북한이 금새라도 남침할 것 같다고 하고, 이른바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감축이나 점진적 철수는 지지하지만, 전면 철수는 반대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거든요. 저 역시 목사님처럼 지금 당장 전면 철수해도 문제는 없다고 보는데 어떠십니까. 강 : 양키 극우세력들이 말하길, 남한의 철없는 사람들이 자기들 군대 물러가라고 한다느니, 남한을 혼내주기 위해서라도 자기들 군대를 철수하자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남이 북에 먹혀들어가도 좋으니 철수하자, 하면서 악의적인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내가 볼 때 그 사람들은 시대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주장하든, 이건 우리 국내 문제 아닙니까. 이 : 목사님 말씀대로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 이후에도 주한 미군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김대통령이나 노무현 당선자도 재야시절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다, 집권하면서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거든요. 그분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니 여론을 고려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여론 자체가 친미 반공 구조 속에서 많이 왜곡돼 왔기 때문에 미국 바로 알기를 통해 여론을 바로 잡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 : 동감이에요. 노무현씨를 진즉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의 시각과 생각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은 이제 청바지 입은 대통령이라야 된다고 주장해 왔는데, 노무현씨가 바로 청바지 대통령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 역시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는데, 우리나라는 이것이 병이에요. 바른 민족양심에서 바른 이야길 하지만, 이것이 정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양키들의 외교전략을 세우는 학교에서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 중에서도 최우등생이다 라고 했답니다. 우리 남한을 외교전략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만들었으니 저 사람들은 대성공한거다 이 말이죠. 내가 실망스러웠던 건, 지난번 촛불시위를 보면서 처음엔 우리나라에도 희망이 있구나 했는데, 네티즌들이 우리가 하는 건 미군에 대해 바른 재판을 하라는 요구지, '양키고홈'은 아니다 라고 하니 대책위가 당황했잖아요. 대책위의 주장은 결국 '양키고홈'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니 대책위도 우리도 '양키고홈'은 아니다라고 한 거 아닙니까. 대통령이 이러고 지성인이나 젊은이들이 이러니 우리나라에서 양키들이 떠날 수 있겠느냔 말이죠. 노무현의 양심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정치하려면 할 수 없이 이런 민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어요. 이 : 목사님 이야길 시비하는 것 같습니다만, 노무현을 청바지 대통령이라고 하셨습니다. 권위주의를 벗어버리고 가깝고 편안한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의미일텐데, 청바지도 미제 문화 아닙니까? 청바지보다는 한복 대통령이 어떻습니까? 강 : 아, 그렇습니다. 내가 또 틀렸어요. (웃음) 통일운동을 하면서 나는 항상 비관적이었습니다. 육일오 공동선언대로 하면 된다고 이야길 하는데, 난 찬물을 끼얹는 소리를 좀 하고 싶어요. 통일운동 하면서 많은 학자들의 통일 담론을 들어봤는데, 그런 분들이 하는 말은 말만으로는 다 좋은 말이지만, '양키고홈'을 빼고 어떤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나는 믿질 않습니다. 통일운동은 결국 양키와 싸우는 겁니다. 양키들이 이 땅에 있는 건 우리의 통일을 막기 위한 거예요. 일본 국무성의 한 관계자가 그랬답니다. 한반도가 통일만 된다면 일곱가지 민족성으로 봐서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민족이 될 것이다라고 말이죠. 한반도에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선 안된다, 이것이 양키들의 기본 생각이에요. 변화란 바로 통일을 말합니다. 분단시킨 채 지배하는 것,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에요. 이 : 촛불시위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셨는데 얼마전 범대위 대표를 만난적이 있습니다. 주한미군이 왜 우리 땅에 있어서는 안되며, 왜 물러가야 하는지를 공론화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길 했지요. 그걸 감정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조목조목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해주겠다, 했거든요. 이제 우리의 목표를 미국 바로 알기로 해야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수십년동안 친미반공이 국시가 되다시피해온 상황에서 80년대 이후부터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주장은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이제 북한 바로 알기가 어느정도 이뤄졌으니, 앞으로는 미국 바로 알기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왜곡된 여론을 바로잡아 주한미군이 뜨더라도 우리가 평화적으로 통일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걸 조목조목 근거를 대는 운동을 펼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 : 북에 대해서는 나는 나대로 자신감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평양에는 기왓장 하나 성한게 없었다고 하는데, 그런 잿더미속에서 김일성 주석이 나라를 재건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에겐 전쟁은 없다고 선언을 했어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그들이 이렇게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건 남한의 양키 똘마니와 양키들이 있기 때문에 자기 방어 차원에서지 절대 공격용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건 내 오랜 소신이에요. 남한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북이 곧바로 쳐들어온다는 게 미국의 교육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걸 탈피하려면 새로운 교육이 필요해요. 양키들이 물러가도 북이 절대 쳐내려오지 않는다는 걸 나는 믿고 있고, 국민들에게도 이걸 알려야 합니다. 이 교수의 양키 바로 알기 운동은 지적하신 대로 참 필요한 부분이에요.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자기 나라를 '악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 역대 대통령치고 헤이그에 피고인으로 끌려가는 것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지적했어요. 부시 아닌 누구라도 전부 전범자란 말입니다. 마땅히 재판받아야 하는데도 유엔이 제구실을 못하고 세상이 잘 못 돌아가니 이런 전범자들이 재판장에 서지 못한다고 말이죠. 이 : 저는 요즘 『두 눈으로 보는 미국』이란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촘스키 이야길 하셨는데, 미국 전 국무부 직원이었던 윌리엄 블럼 (William Blum)이란 사람도 두어해 전 미국의 대외 정책에 관해 『깡패국가』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어요. 거기 보면 미국이 1945년부터 어떤 범죄를 저질러왔는지를 적나라하게 까발려 놨거든요. 제가 조만간 그 책을 번역해 소개할 생각입니다. 또 양키가 나가더라도 북이 남침할 염려는 없다고 하셨는데, 전쟁을 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하죠. 첫째 전쟁할 의지가 있느냐, 여기엔 이길 수 있단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전쟁을 치러낼 능력이 있느냐하는 겁니다. 김정일의 의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북의 능력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문제죠. 남이 지금 북보다 세네배 더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는데, 대부분 우리 국민들은 그 반대로 알고 있어요. 북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거죠. 김정일에 대해서도 대중 앞에 나와서는 말 한마디 못하고, 늘 기쁨조에 둘러싸여 있고 술독에 빠져 있으며, 온 집안에 비디오 장치를 해놓고 영화만 보는 사람 등등의 이미지로 왜곡해 왔잖습니까. 합리적인 생각을 안하는 사람으로 말이죠. 육일오 정상회담을 통해 이런 왜곡과 편견은 어느정도 벗겨진 것 같긴 합니다. 북이 비록 독재를 하고는 있지만, 이성과 합리를 갖추고 있다는 것, 주한미군이 물러가더라도 남한의 군사력으로도 북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걸 알려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강 : 예. 이 교수 이야기 아주 인상깊습니다. 특히 윌리엄 블럼이란 사람한테 흥미가 가요. 이 교수가 책을 내면 꼭 좀 봐야겠습니다. (웃음) 북핵은 협상용일뿐 공격용 아니다 이 : 북핵문제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고 싶은데요. 북은 지금 핵무기를 갖고 있느냐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안하고 있는데요. 남한은 58년부터 핵무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 정부문서를 통해 확인한 게 늦어도 58년 1월이고, 대외적으로 핵무기를 철수한 건 91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 국회에서는 국방부 장관을 블러놓고 우리가 핵무기를 갖고 있느냐고 물으면 나도 모른다, 그렇게 대답하곤 했거든요. 그런데 이젠 북이 긍정도 부정도 안 하는 정책을 쓰고 있단 말이죠. 자타가 공인하는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 김명철씨를 만난 적 있는데, 제가 북은 핵을 가지고 있지도, 개발한 생각도 없다고 하는데 선생은 어떻게 북이 최소 50개에서 100개 이상을 갖고 있다고 공언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 하는 말이 그건 일종의 전략일 수도 있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공식적인 책임이 없는 사람을 통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걸 전파해 공공연히 힘을 과시하면서 공식적으로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긍정도 부정도 안함)하고 있는 거란 말이죠. 어쨌든 북이 실제로 핵을 갖고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게 확실하다면 일본도 핵무장을 하게 될거고 중국도 핵강화에 나서게 돼 동북아가 불안정하게 될거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 : 지구상에서 핵무기는 다시 사용되지 않을 거라는 게 내 세계관입니다. 북이 가지면 일본도 갖고 중국도 더 무장하니까 동북아가 불안하다, 이건 양키들의 주장이에요. 만약 양키들이 양심이 있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걸 절반으로 축소할테니, 소련도 그렇게 해라 하면서 점차 전 지구적으로 이 무기를 갖지 말자고 설득한다면 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최근 얼마전까지만 해도 핵 실험을 했던 사람들 아닙니까? 북이 핵을 만들면 누구도 만들고 누구도 만드는거다, 라는 식의 논리는 양키들의 변명이에요. 저희들이 갖고 있으면 다른 나라가 갖는 것도 인정해라, 이겁니다. 이 : 가장 이상적인 건 미국부터 핵무기를 없애라는 말씀인데, 안타깝게도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이 만들면 북한도 만들고 일본과 중국도 갖게 해라, 그것이 미국의 패권을 막는길이다 라는 주장이신 것 같습니다. 한편 북미간 제네바 협의가 지금 왜곡되고 있어요. 북이 만약 핵을 갖고 있다든지 개발한다든지 한다면 분명히 제네바 합의 위반이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제네바 합의를 더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위반한 건 미국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위반한 건 뉴스거리가 안되고 북이 위반하면 전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된단 말이죠. 이게 첫째 불평등한거라고 봅니다. 강 : 그렇죠. 부시가 지금 히틀러나 무솔리니처럼 애국법이란 걸 통과시키지 않았습니까. 이건 시민의 양심과 자율을 억압하는 히틀러 이상의 독재에요. 우리 국민들이 깨어나려면 이 교수나 나나 문서운동도 하고, 공개서한도 보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도 바로 말해야 해요.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바르게 말하고 감옥 가세요. (모두 웃음). 내가 박정희와 싸울 때 어디를 가면 감옥이 없을 것이냐, 이 생각 갖고 싸웠습니다. 이 : 예. 알겠습니다. (웃음) 저는 비폭력 평화학자입니다. (웃음) 북이든 어디든 핵 갖는 것은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죠. 핵을 갖지 않아도 미국에 맞설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합니다. 물론 북이 왜 저렇게 핵무기 개발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가는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네바 합의가 미국의 기만이라는 지적은 옳습니다. 제네바 합의가 맺어질 무렵 북한 붕괴설이 널리 확산됐었거든요. 제네바 합의를 하면서 미국이 북에 경수로를 지어주는 등 많이 양보한 듯이 제스처를 보인 건 내일모레 북한이 무너질 거란 계산이 있어서였죠. 그런데 당시 국방장관 페리가 북에 들어가 보니 무너질 것 같지 않더란 말이죠. 무너지더라도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한 뒤에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북에 가장 중요한 건 미국이 핵 선제공격을 안하겠다는 것이고, 정치 경제적으로 국교정상화를 맺자는 건데, 지금까지 국교정상화는커녕 부시는 북한이 다른 나라와 국교를 맺는 것도 방해해 왔지 않습니까? 거기에 악의 축이니 깡패국가니 하면서 북을 건드리니까 북이 핵을 떠올린 거 아닌가 싶어요. 북이 핵을 개발하더라도 이건 남침용은 아니란 말이지요. 핵은 협상용이지 절대 전쟁용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할 것 같습니다. 강 : 예. 옳은 말씀입니다. 통일…'민족'으로 돌아가면 불가능은 없다 이 : 통일에 관한 이야길 더 나눠보고 싶은데요. 통일이라면 말 그대로 하나로 합친다는 뜻 아닙니까? 모든 걸 하나로 합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저는 '21세기형 통일'이라는 말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데, 남북이 편지도 맘대로 주고 받고 서로 자유롭게 오갈 수만 있다면 하나의 통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목사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강 : 남북이 하나의 길로 가는 건 쉽지 않죠. 하나의 길로 가는 징검다리가 연방제 아닙니까? 연방제라고 해도 궁극적으로 국가 체제는 하나로 가는 겁니다. 김일성 주석이 죽기 전에 국방부와 외교부는 각각 독립된 상태에서 연방제를 도입하자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러나 그건 틀린 말입니다. 외교나 국방은 남북 대표가 몇 명이 참여하든 남북 위원회를 만들자는 겁니다. 그리고 국회를 연합국회로 만들고, 대통령은 남북이 2년정도 돌아가면서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거에요. 결국 1국가 2체제인데, 국가의 명칭은 하나로 묶어야 통일이지 국가를 둘로 만들면 안된다는 게 내 주장입니다. 이 : 1국 2체제는 어쨌든 과도기고 과정이거든요. 우리가 지향하는 종착역은 결국 1국 1체제 아닙니까? 그러나 저는 이 최종적인 상태만이 아니라 그 과정도 통일로 보자는 겁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체제만을 그리고 북은 사회주의체제만을 고집하면 언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연방제의 과정도 통일로 보고 실천하자는 이야기고, 김일성 말대로 그 다음은 후세에 맡기자는거죠. 강 : 공산주의도 잘만 하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훌륭한 체제라고 봅니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고, 자본주의 역시 마찬가지에요. 문제는 그 체제를 움직이는 사람이 잘 못하기 때문에 소련도 망하고 스탈린이 망쳐놓고 했단 말이죠. 환경이 나쁜 게 아니라 사람이 잘못됐다는 겁니다. 방금 자본주의 사회주의 이야길 했는데, 나는 민족으로 돌아가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 이렇게 생각해요. 한민족의 본래 의미로 돌아가면 체제가 무슨 문제입니까. 그보다 더 험한 산도 넘을 수 있어요. 사람이 만들었다면 각자가 지향하는 체제에서 좋은 것들만 뽑아 이상적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자기만 고집하니까 안되는 겁니다. 이 : 목사님은 이상주의자이신 것 같습니다. 남은 죽어도 자본주의고, 북은 죽어도 사회주의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면 결국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아니겠어요? 남과 북이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만나자는 거예요. 우리 시회에서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에도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어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본래 의미대로라면 얼마나 이상적입니까. 그런데 용어 자체만으로도 오해와 거부감이 많아요. 유럽식 복지 국가가 사회민주주의인데, 유럽식 복지국가라면 환영하면서도 사회민주주의라면 거부하거든요. '사회' 자가 들어가니 사회주의 사촌이란 식이지요.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의 사촌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니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자본주의 사촌에 가깝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기본적인 복지 정책에도 그거 공산주의 아니냐 한단 말이죠. 사회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지금 현실에선 요원한 일이 아닌가 싶고, 그런 측면에서는 북보다 오히려 남이 변하기 더 어렵지 않나 싶어요. 강 : 불행한 나라에요. 더블 아이덴티티(Double Identity)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자기 유일체제만을 고집했는데, 이건 자기만의 주체사상이에요. 더블 아이덴티티는 나도 저 사람도 주체이니, 저 사람의 주체를 나도 받아들이고 저 사람도 내 주체를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걸 이중 주체 사상이라고 하는데, 이상적이긴 하지만 내 철학이에요. 결국 민족으로 돌아가면 문제는 해결되는 겁니다. 이 : 독자들을 위해서 연방제에 대한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연방제는 종류도 여러 가지 아닙니까? 연방제는 북의 통일방안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인데, 그래서 그런지 내용도 모르면서 거부감을 갖는단 말이죠. 세계 많은 나라가 지금 연방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방이라면 김일성 김정일이 구가하는 북쪽의 통일방안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김대중씨도 연방제를 고집해서 감옥 간 거 아닙니까? 그렇게 치자면 목사님도 저도 빨갱이죠. (웃음) 과거에 제가 강연을 하면 형사들이 앉아있곤 했는데, 한 번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분명히 연방제를 지지하는데 그게 국보법 위반이라면 얼마든지 구속해라. 그 대신 연방제보다 더 바람직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통일 방안이 있으면 내놔 봐라. 통일 방안은 첫째 바람직해야 하지만 둘째 실현 가능성이 높아야 한단 뜻이지요.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이쯤에서 이야길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끝으로 독자들께 한 말씀 해주시죠. 강 : 글쎄요. 학생들이 지금 북한이 독재국가니까 민주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철없는 이야기예요. 그럼 남한은 투표만 한다고 민주주의 국가입니까? 물론 선거를 한다는 건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죠. 그러나 그것밖에는 없어요. 남한이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는 망상을 가지고 북도 민주화하자고 하는데, 그건 북을 자본주의 체제로 만들어 양키들에게 갖다 바치자, 하는 이야기와 다를바 없어요. 북이 지금 세습제와 독재를 한다고 비판하지만, 양키와 대항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는 겁니다. 이걸 학생들이 알아주길 바랍니다. 제국주의를 쫓아가는 게 민주주의인가요? 교육의 문제도 대단히 큽니다. 이 : 예. 오늘 장시간 말씀 나눌 수 있어 반갑고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강 : 전북에서 오늘처럼 이렇게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었어요. 오늘 처음으로 이런 이야길 하게 되어 얼마나 만족스럽고 기쁜지 모릅니다. 나는 오늘 이 교수를 만난걸 다행으로 여기고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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