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2 | [특집]
연극 양적 증가, 그러나 극단 역량은 침체
김정수 연극인『문화저널』편집위원
(2004-02-05 10:36:46)
94년 한해의 도내 연극 공연은 양적인 면에서 여전한 증가세를 보여주었다. 11월 말까지만 보더라도 아동극이나 인형극을 제외한 일반 연극 작품이 30편에 달해 월 평균 3개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 셈이었다. 수년 전과 비교하면 가히 폭발적인 증가로, 연극 애호가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원하기만 한다면 한 작품정도 관극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그런 기간이었다. 물론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이라는 특수도 한 몫을 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공연 편수를 떠나 생각해 볼 때, 오래 기억될 만큼 두드러진 작품이 보이질 않았고 관객의 호응이나 각 극단의 역량이 다소 침체되는 양상을 띠었다. 11월까지 공연된 연극 중 반수 정도가 각종 연극제나 관 주도 행사에 출품된 것이어서 올 한해의 전북 연극의 분위기를 연극제가 이끌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연극제들이 저마다 문제점들을 안고 치워졌기에 전체적으로 응집력이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지 못한 것도 한 요인이 되었다.
일례로 봄철 무대를 가득 채워야 할「전북 연극제」가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 주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도내 연극인의 한마당 축제가 되어야함에도 소수의 극단만이 참가, 전국연극제의 지방예선의 장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부여받지 못하는 행사로 전락한데다 그 작품 수준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두 번째 열린 가을철의 「소극장 연극제」도 각 극단의 소극장 돌려쓰기라는 인상 말고는 그 어떤 부대행사나 효과적인 운영 방법이 눈에 띠지 않음으로써 많은 관객들의 주목을 받는 행사가 되지 못하고 각 극단의 독자적인 공연을 나열하는 정도에 그친 점도 아쉬움을 주는 일이었다. 유일하게 전국적인 규모로 기획된 동학농민혁명 백주년기념 「연극한마당」도 기대에 못 미친 행사였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전주의 「창작극회」를 제외하고는 지방의 네 개 극단이 참가해 참가 규모나 작품수준도 그리 높지 않았고, 무엇보다 관객동원 면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는 점에서 주최 측이나 무관심했던 관객들이나 양자가 반성해 봐야 할 문제를 남겼다. 다만 행사자체가 갖는 의미만은 손상될 수 없었다고 본다.
한해에 걸쳐 되짚어 볼만한 일들로는 먼저 「디딜 예술단」의 쉬지 않는 공연을 떠올릴 수 있다. 전국연극제에 전북 대표로 출전해 입선한 작품「풍금소리」외에도 자체소극장「무대 위의 얼굴」을 통해 꾸준한 활동을 보여 주었다. 대다수 단원이 무대 경험이 적은 배우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그 열정은 평가받을만했다.
극단「황토」도 여러 어려운 제약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작품을 선보였다. 반면에 도내의 가장 역량 있는 배우들로 구성된「전주시립극단」은 작년 단원상근화를 통해 전북연극발전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올 것이라는 일반의 기대에 크게 부응하지 못한 평년작 정도의 활동을 내보였다. 타 극단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만큼「시립극단」은 명실상부하게 선이 굵은 모습으로 이 지방 연극을 선도해 나가는 기획을 추진했으면 좋겠다. 아직은 상근단원 체제가 안정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되나 민간극단과 큰 차별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올해는 순회공연이 활발했던 해이기도 했다. 작년 말부터 공연된 창작극회의 「싸우지 맙시다」에 이어 황토의「언챙이 곡마단」, 또 작년 대통령상을 받았던 창작극회의「꼭두,꼭두」전국순회공연 등이 잇따라 도내외적으로 이 지역 연극의 위상을 높였다. 기성극단은 아니지만 전북대학교 「기린극회」가 전국대학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것도 현 전북 연극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시켜줌과 동시에 앞으로 보다 많은 역량 있는 대학극출신 연극인들이 배출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는 일이어서 기성극단에게는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