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4.12 | [교사일기]
착하지만 꿈이 없는 아이들 농촌실업학교의 아이들
심재욱 남원농공고 교사 (2004-02-05 10:14:50)
이제 겨우 교직 경력4년여의 신출내기 교사가 학교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이렇게 넓은 지면을 할애 받을 수 있는지 세상 인연이라는 게 때론 너무나 황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는 90년 시골 인문 고등학교로 초임 발령을 받은 후 6개월 간 근무를 하다 군복무를 마치고, 92년 지금의 농공병진 실업학교로 복직을 하여 지금까지 3년동안 이 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교직생활을 실업학교에서 경험했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3년이라는 짧은 경험이지만 나름대로 이 학교에서의 교직 경험을 나에게 학생관, 교육관을 실험하고, 정립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물론 실업학교 교육의 문제점은 오늘날 특히 실업교육의 비중이 나날이 강조됨에 따라 더욱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이에 따라 그 문제점과 개선책이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논의되면서 실업학교의 제도적 모순점, 과정적 문제점 등이 여러 방법에서 제시된 바 있다는 점은 교육 분야에 조금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 보았으리라.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논의들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는 것을 실업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학생들의 특성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본교와 같은 농촌 소도시의 실업학교에서는 특히나 학생들의 특성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실업학교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 중에서 본교에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실업학교 학생들의 유형과 특성, 그리고 교육방법 및 가장 큰 문제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교는 지방의 소도시에 있는 농, 공 병진의 실업학교이다. 원래는 전통이 아주 오래된 농업고등학교였지만, 농과계열 학생의 감소로 인하여 공과를 신설하여 공과가 생긴지 얼마 안 된 학교로 막 새로운 변신이 이루어지는 약간은 어수선한 상태였다. 한 학년이 8개 반으로 농과, 축산과, 토목과, 원예과, 전자과(2반).기계과(2반)의 6개 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각 과별 특성이 다르고, 학생 수 및 수준이 달라 학습의 방법을 다양하게 적용해야 하는 난점을 안고 있었다. 92년에 나는 1학년 원예과 담임으로서 국어를 담당하게 되었다. 큰 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로선 농촌지역의 실업학교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였기 때문에 처음엔 약간 겁도 났고, 걱정스러움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실업교육에 대한 야릇한 호기심도 났다. 처음에 본 아이들의 모습은 보기에도 걱정스러웠다. 머리 모양들도 지저분하고, 옷의 모양새며 행동하는 것. 말투 등이 모두 도시의 건달들을 상기시킬 정도로 불손한 아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내가 잘 다룰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걱정과 편견은 하나씩 벗어지고 오히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실업학교의 특성인 과별 학생모집에 따라 각 과별 구성인원이 다르다. 물론 농업 기피현상에 따라 농과계열 학생이 공과계열 학생에 비해 현저히 적다. 보통 15명 내외의 학생들로 구성된 농과 계열 학생들은 성적 면에서도 공과 계열 학생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본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보통 인근의 중학교에서 오는데 특별히 실업계 학교에 뜻이 있어서 온 아이들보다는 도시 인문계 학교, 도시 공과계 학교, 지방의 인문계 학교 순으로 걸러지고 걸러져서 온 아이들이 상당수였다. 이러한 현상은 공과계열 보다는 농과계열에 현저히 나타난다. 또한 가정적으로 불우하여 상당수의 아이들이 결손가정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이외의 학생들도 교육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가정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이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무기력감, 이에 따른 삶의 무의미였다. 따라서 이것을 바로잡아 주는 일이 가장 급선무였고, 학습의 주안점이었다. 처음 15명 내외의 아이들이 앉아있는 교실에 들어가 국어수업을 할 때 아이들의 모습은 나를 질리게 했다.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코를 흘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도시 아이들과 비교되는 지저분함과 허술함이 도시의 학교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심한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첫 국어시간, 책을 들고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시작했다. 예상을 했지만 수업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첫 국어시간 때의 일이다. 국어 책을 펴고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국어책 한번 읽어 볼 사람 손들어 보세요?" 되도록 아이들과 주고받는 대화식의 수업방식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함께 토론하기 위하여, 그리고 스스로 참여하는 수업을 위하여 아이들에게 자주 질문을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몇 명 안 되는 아이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서로 눈치만 살살 보고 있다. 차라리 떠들고, 장난이라도 치면 좋겠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꿀 먹은 벙어리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허탈했다. 또 물었다. "그럼 책 읽기 싫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역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번엔 괜히 오기가 났다. 그래서 또 물었다. "그럼 손들기 싫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물론 장난기 섞인 물음이었지만, 아이들과 가까워져 보고 싶은 심정에서, 제발 아무 말이라도 좀 해보라는 답답함에서 나온 물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였다. 그때는 너무나 짜증스러워 아이들에게 화를 냈었다. 하지만 수업을 마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만을 닦달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은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에 한 번도 손을 들어 보지 않은 아이들이었으니까. 관심 밖의 아이들이었으니까, 반에서 꼴찌하는 아이들이었으니까, 더구나 집에서조차도 무관심의 대상이었으니까. 시골 농촌이 어디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바쁜 농촌 생활 때문에 자식의 교육 문제는 호사스런 걱정거리였고, 어서 빨리 학교 졸업하고 제 밥벌이나 하기를 원하는 집안 분위기였으니까... 이러한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나의 요구는 너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학교생활에 젖어 있었고, 또한 사범대학 시절에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입시위주의 교육형태, 보충수업, 과열경쟁, 야간 자율학습, 과중한 수업부담 등에 대해서 듣고 배워왔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른 또 다른 형태의 문제점에 당면했음에도 그릇된 편견으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처음에 아이들에 대한 걱정스러움은 차츰 연민과 관심으로 바뀌어 갔다. 이 아이들에게 있어서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고,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한 가지 좋은 점은 한 반의 학생수가 적어서 모두에게 관심을 줄 수가 있고, 입시위주의 쫓기는 교육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점이었다. 우선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스스로의 열등감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당당히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었다. 급하지는 않았다. 서서히 생활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달 하니까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이야기를 하고, 또 먼저 장난을 걸어오기도 했다. 이제는 "책 한번 읽어 볼 사람?"하면 한명도 손을 들지 않고 있다가, "책 읽기 싫은 사람?"하면 전체가 다 손을 드는 장난스러운 여유도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아이들의 열등의식과 무기력감을 해소시키는 요인으로는 과별 모집에 따라 반의 친구들이 모두 비슷한 성격, 비슷한 실력, 비슷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의 유대를 더욱 굳게 하고, 더욱 명랑해지고, 학교생활에도 쉽게 적응하여 갈 수 있었다.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제법 멋을 부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고, 어설픈 TV연예인의 흉내를 내고, 가끔 사고도 치지만 처음 입학 당시의 모습에 비하면 훨씬 더 똘똘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무리 어른처럼 행동하고, 커 보이려고 노력해도 아이들의 선생님이 내가 보기에는 도시의 영악한 아이들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순진하고, 착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아이들이 인문계 학교에 진학해서 입시위주의 학교현장에서 무관심 속에 더욱 소외되고, 뒤쳐지고 이에 따라 열등의식의 골이 더욱 깊게 패여서 자신을 학대하는 것보다는 실업학교에 진학해서 입시교육의 부담 없이 스스로의 기술을 연마하고, 인간교육, 생활교육을 맛보는 것이 이 아이들에게 차라리 다행일 수 있다는 자위의 생각을 종종 해본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많은 문제점은 선생님과 아이들의 노력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데 아이들의 장래 문제만큼은 그저 답답할 뿐이다. 정부의 실업고 육성책에 따라 많은 기자재와 실습자재가 도입되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졸업 후 그 기술을 가지고 취업을 하는 학생은 거의 없을 정도다. 대부분이 그저 빈둥거리거나, 1-2년 단순직에 종사하다가 군대를 가는 게 고작이다. 아이들도 이를 안다. 그래서 꿈이 없다. 자신의 전공에 관심이 떨어진다. 학교교육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된다. 배움에, 성적에 아무 관심도, 흥미도 없는 학생들에게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배움을 강요하는 것도 이제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고 미안하다. 실업고등학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문제는 신입생을 유치할 때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실업학교 진학의 가장 큰 목적은 기술을 습득하여 그 기술을 바탕으로 장래 자신의 직장을 갖고자 하는데 있다. 하지만 여기에 확신을 줄 수가 없다. 갈수록 시골 학생 수의 감소로 인하여 신입생 유치에 어려움을 안고 있는 농촌지역 실업학교로서는 그러한 확신을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유능한 신입생을 유치할 수가 없다. 따라서 여러 단계에서 걸러진 나머지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그 학생들로서 학교를 유지하는 폐단을 낳기도 한다.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자주 바뀐다. 또 언제 무슨 제도가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일관성 있게 변해오는 것은 실업교육의 중요성이다. 정부는 실업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그에 따른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려고 노력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은 문제점이 너무도 많다.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문제점이 제시되었고, 논의되어왔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점은 학교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실업계 학교에서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자랑스러워야 한다. 갈 곳 없고, 받아줄 학교가 없어서 농고, 공고를 온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꿈을 키우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실업학교에 올 수 있어야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아이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자신의 일에 전념할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물론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