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 | [특집]
대안학교, 새로운 탈출구인가
숨막히는 '경쟁'보다 사람 속에서 숨쉬고 싶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말하는 대안학교
글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3-02 18:17:00)
'줄무늬 애벌레는 사방으로부터 밀리고 채이고 밟히고 했습니다. 밟고 올라서느냐 밟히느냐였습니다. 그는 밟고 올라섰습니다. 줄무늬 애벌레가 뛰어든 더미 속에는 이제 친구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료들이란 다만 하나의 위협이요 장애물일 뿐이었으며, 그는 그들을 발판으로 삼고 기회로 이용할 따름이었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한 대목. 숨막히는 입시지옥 속에서 냉혹한 경쟁만을 요구받는 우리 사회 청소년들에게도 한치의 오차 없이 정교하게 들어맞는 이야기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비판이 교육개혁운동의 불씨가 되어 '대안교육'과 '대안학교'라는 새로운 학교 형태를 낳으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탄력적인 교과 운영과 체험 및 생태교육, 전인교육 등을 학교 이념으로 내세운 이들 대안학교는 제도권 교육에 질린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숨통을 열어주고 있다.
철옹성 같은 학력 위주의 사회 풍토 속에서도 입시교육에 휘둘리지 않고 대안학교를 선택한 이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대안학교는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다가서고 있을까.
아버지의 이름으로 선택한 대안학교
섬진강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씨.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그는 아들 민세를 전남 담양에 있는 한빛고등학교에 진학시켰다. 물론 아들 민세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어서였다.
한빛고는 일반 인문계 고교와 비슷한 유형을 가진 학교지만, 인문적 가치와 자연친화적인 교육을 지향하는 도시 근교형 대안학교. 전원 기숙사 생활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 자유롭고 전면적인 대화가 가능한 민주적인 학교로 알려져 있다.
김 시인이 아들 민세를 이 학교에 진학시키게 된 데에는 그 자신 교육 현장에 몸담고 있는 교사로서, 그리고 남들처럼 자녀의 교육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학부모로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몇해 전 그 학교로 강연을 나갔다 우연히 한빛고 학생들과 교사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표정과 태도가 일반 고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데 그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이 교무실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 으레 있을법한 권위주의나 정서적 벽 같은 걸 전혀 느낄 수가 없었어요. 서로 부담없고 거리낌없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가 하면, 무엇보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느낄 수가 있었죠. 교사나 학생 너나없이 생기 있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질식할 것 같은 경쟁과 입시교육 속에서 김 시인이 발견한 '한빛고'는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이었다. 물론 한빛고가 그의 마음을 단숨에 붙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민세가 중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그 역시 아이를 이리저리 학원으로 내몰던 그저 '평범한' 학부모였다.
"우연히 베란다에서 민세가 밤 12시쯤 학원 끝내고 아파트로 정신 없이 뛰어들어오는 걸 봤어요. 무서우니까 옆도 안보고 뛰었던거죠. 이제 겨우 중학생인데 그 무거운 가방을 메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퍼뜩 들기 시작하더군요. 아이를 더 이상 공부에 내몰면 안되겠다 싶었어요."
제도권 교육의 병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 시인 역시 사회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긴 했지만,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화를 통해 아이들 교육에 대한 깊은 고민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개성과 창의성을 말살하는 현재의 교육 풍토에서 계속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 회의감이 깊었다. 이런 상태로라면 아이들은 새장 속에 갇혀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양 답답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각이 새삼 깊어지기 시작했다. 아들 민세가 고1이 되고, 딸 민해가 중1이 될 때, 그는 1년동안 휴학을 시키고 아이들을 중국으로 보냈다.
"1년 내내 여행만 하도록 했어요. 애들이 답답하게 있는 걸 견딜 수가 없었죠.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생각을 틔워주고 싶은 마음에 중국을 보낸 겁니다."
김 시인과 아들 민세는 대안학교에 대한 별다른 의견 차이나 갈등 없이 결정을 내린 경우다. 충분한 대화와 의견교환을 통해 부모와 자녀 사이에 자연스런 믿음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김 시인은 즐겁고 자유로운 학교 생활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삶의 방향과 목표로 이어져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 정상적인 학교 교육의 본래 모습 아니겠느냐고 강조한다.
"초등학교 아이들까지도 아기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길 해요. 내 아이는 꼭 1등을 해야 하고 의대를 가야 한다면 모두가 미친 질주 아닙니까? 학교 생활이 아이들에겐 하루하루 구체적인 생활이고, 그것이 인생인 겁니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 갈등이란 게 뭐가 있습니까? 공부 하나잖아요. 우리나라 교육은 불구 교육이에요. 초등학교부터 대학 진학할 때까지 숨막히는 경쟁 속에 놓여 있고, 옆의 친구를 꼭 이겨야 하니까 당연히 이기주의와 기능주의가 판을 치게 되는거죠."
아들 민세와 김 시인은 대안학교를 선택한 자신들의 결정을 두고두고 '잘 한 일'이라고 되새기고 있다. 주말이면 영화를 보고 플롯을 배우러 다니고 무전 여행을 다니는 아들 민세가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대안학교를 통해 깨우쳐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은 지금 때가 어느땐데 여행을 보내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저는 저대로 민세는 민세대로 만족합니다. 한빛고가 아이들 여행을 장려하고 있는 것도 만족스럽고요. 기숙사 생활과 생태교육을 하니까 사람 속에서 자신을 보는 훈련을 스스로 하게 되는 거예요. 사람 속에서 관계를 배우는거죠. 살아가는 데 그것만큼 중요한 게 더 있겠어요?"
학력 인정되지 않아도 후회는 없다
2월 13일 완주군 동상면에 위치한 한농예능학교 졸업식장.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졸업생들은 연신 선생님과 후배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쏟아낸다. 어수선해질 대로 어수선해진 졸업식 풍경 속에서 한농예능학교 졸업식장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듯 애틋한 정이 가득하다.
졸업생 대표로 강단에 선 강민희(19)양. 졸업식사를 읽으며 시종 눈물을 훔치던 민희는 경북 상주가 집이지만,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한농예능학교는 졸업을 해도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비인가 학교. 전원 기숙사 생활에 노작과 체험, 예능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한농예능학교는 대부분 한농복구회(한농회) 회원 자녀들이 다니고 있는 대안학교다.
정상적으로 대학코스를 밟고 싶었던 민희는 진학 과정에서 부모님과 적잖은 갈등을 겪었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신의 생각과 진로가 많이 바뀌었고, 그 덕에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게 뭔지 어렴풋이 알게 됐어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땀흘려 일하면서,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위를 얻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됐거든요. 특히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내용과 그분들의 삶이 같다는 데 많이 감동하고 존경하게 됐어요.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도 절대 후회하거나 부끄럽지 않아요."
민희는 이 학교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글도 쓰고 싶고, 의료 기술도 익히고 싶은 민희는 욕심 많은 신세대지만, 굳이 검정고시까지 치러가며 학력을 채우고 싶지는 않다고 잘라 말한다. 사회의 편견이나 일방적 요구 앞에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일궈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배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학교 선택은 부모님의 권유에 앞서 자신의 신중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뙤악볕에 나가 일을 할 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선후배 사이에 정을 쌓을 시간도 없었을 거예요. 선생님들과도 마찬가지구요. 형식이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서로를 돕고 실천하는 삶을 배운 시간이었으니까요."
민희는 한농회 회원들이 많이 분포되어 살고 있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한농회가 운영하는 키르키스탄 농장대학에서 더 공부를 해볼 참이다.
사람을 아끼고 땀흘려 일하는 삶을 지향했던 모교의 가르침을 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누고 실천해가고 싶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를 선택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만족감은 예상보다 컸다. 대안학교는 사회가 두텁게 쌓아놓은 '경쟁'과 '실력'이라는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하고 회의했던 많은 부모와 아이들에게 새로운 출구의 의미다.
제도권과 비제도권이라는 이분적 구도로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이나 소외 등을 온전히 털어내 주지 못하거나, 불안한 재정과 부실 운영 등 제도적 한계에 언제라도 노출될 위험이 있지만, 대안학교는 여전히 공교육의 병폐에 맞설 수 있는 교육개혁의 기폭제라는 데 그 의미가 각별하다.
선택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 하더라도, 대안학교를 택한 많은 이들의 꿈과 신념이 사회와 제도 안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아 나가게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사회 공적인 역할이다. 교육은 건강한 삶과 사회의 가치를 생산해내는 근본적인 뿌리이자,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회적 소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