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 | [특집]
대안학교 선생님 두 분과 교제하다.
지난한 참아내기 그리고 기다리기!
돌나라 한농예능학교 허태임 교제(교장)와 세인고등학교 이준철 선생
글|박종훈 객원기자·원음방송 프로듀서(2003-03-02 18:14:16)
대안학교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다뤄보자는 기획안이 나왔을 때 첫 발상은 만화였다. 일명 학원만화라고 불리는 류의 이야기 전개는 보통 문제학생들과 과거에 그들보다 더 문제아였던 선생님간의 힘 겨루기 내용이 많다. 화면은 전통적인 명문 고등학교의 교실을 먼저 보여주지만 실제 사건은 바로 옆 문제아들이 득실대는 삼류고등학교에서부터 발생한다. 어느 날 젊은 남자선생 혹은 매력적인 여선생이 부임하게 되고 이들은 문제학생들보다 더 논다면 놀았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격투기의 달인임은 당연하다. 학생들의 비틀린 세계에 과감히 발을 들여놓는 선생님, 여러 복잡다단한 사건들 끝에 인간성의 바닥까지 보여주는 노력으로 문제아들은 스포츠와 같은 탈출구를 통해 마침내 명문고 학생들과 동등한 위치로 성장한다. 그 후 선생님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학교를 떠나고 아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스승으로 자리하게 된다.
어느 만화나 비슷한 전개 아니었나 싶다. 물론 요즘 잘 나가는 '니나 잘해'같은 만화를 보면 학생들 자체적으로 리더도 있고 조직원(?)도 있어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문제아와 그 보다 더 독한 선생과 엮어지는 에피소드는 감동은 물론 재미도 쏠쏠했다는 개인적인 감상담이다.
- 인성교육이 먼저다
하지만 '만화는 만화 일뿐' 실제 대안학교 선생님들은 픽션과는 거리가 먼 절박한 교육현실을 말한다. 만화와 현실 간 공통점 하나는 선생님의 헌신 노력, 다른 점은 폭력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관념, 자칫 시작부터 실수할 뻔했다. 오늘 대안학교의 두 분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를 옮겨보고자 한다. 먼저 세인고등학교의 이준철 선생이다. 지난 99년 개교 때부터 아이들과 함께 해왔던 이 선생을 만난 곳은 10평 남짓 될까,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교무실이었다. 방학 때라 그런지 학생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오래 참는 게 중요하죠. 성경 말씀에도 있잖아요.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계속해서 기다려 주는 게 중요합니다. 요즘 애들은 자기방어가 굉장히 강해요. 그래서 쉽게 열지도 또 들여보내지도 않죠. 그래서 그들이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 기다립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애들은 '지금 내가 누구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가, 사랑받고 있는가' 하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거든요. 함부로 접근해서도 안되지만 결코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보다 진정으로 믿음이 가능한 친구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이 선생의 말은 세인고등학교가 실시하고 있는 ' 5차원 전면교육학습법'으로 좀 더 구체화된다. 먼저 심력(心力), 마음의 힘을 기르는 학습법으로 예를 들어 [3분 묵상]이란 수업이 있는데 먼저 좋은 의미의 글들을 읽고 나름대로 객관화 작업을 한다. 다음은 현재 자신의 모습에 적용시키는 주관화 작업 그리고 꿰어야 보배, 그 날 하루 실천에 옮기도록 노력을 한 후 다음날 평가하는 식이다. 마치 원불교의 마음공부와도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력(智力), 알아야 구별한다. 요지경 같은 세상 속에서 지혜가 있어야 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가능하다.
"우리가 보통 속독이라고 하잖아요. 책을 빨리 읽는 능력인데요. 문제는 정해진 시간에 많이 읽는다고 이해까지 가능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독특한 방법으로 속해(速解) 그러니까 빨리 읽으면서 이해도 함께 할 수 있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1분에 1000자까지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일반 고등학교에 도 필요한 학습방법일 듯 싶다. 그 다음 체력인데 굳이 중요성을 말하기에도 새삼스러운 내용, 그리고 자기관리능력 기르기가 있다. 시간활용을 잘 하는 시간관리에서부터 재정관리 또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언어관리 등 있어 절제된 자기관리를 가능케 하는 훈련이다.
"공부를 공부로 해결하려고 하니 문제가 됩니다.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이유, 뭔가 원인이 있겠죠. 이럴 때는 선생님과 학생만이 아니라 학부모가 함께 고민을 합니다 그래서 학부모 책임상담제라는 것을 만들어 1일 교사 형식을 취하기도 하죠" 이준철 교사가 얘기하는 5차원 학습법의 마지막, 인간관계 훈련의 실천 예다.
-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대안학교들의 교육목표가 대부분 인성교육에 있는 것처럼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방법 또한 지극히 인간적이다. "영준이란 애가 있었는데요. 어느 날 이 녀석이 술을 먹고 온 거예요. 당시에 김용문 선생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연세가 아마 예순 일곱 정도 되셨을 거예요. 그런데 김 선생님이 꾸중을 하시니까 이 녀석이 그분께 심한 욕설을 하고 말았죠. 그런데 제가 그 소리를 들었거든요. 이건 너무 어이 없고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거예요. 저도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고 해서 차 오르는 분을 참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저 그 날 사고 치지 않으려고 참아낸 그 속내만큼 스트레스 엄청났습니다"
이 선생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치 참아내고 기다리는 역할이 그들의 직업 같다는 느낌이었다. 후에 김용문 선생님은 영준이를 용서해 주었고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은 녀석은 그 사건을 계기로 교사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다음으로 더 극적인 일화들이 이어졌다. 어느 여선생님은 아이들 담배를 끊게 하려고 담배꽁초를 집어삼킨 적도 있었으며 또 학생에게 무릎을 꿇은 교장선생님 모습에 이르기까지, 마치 엽기성격의 학원소설 같은 안타까운 실화들이었다. 조금만 더 쉬운 노력으로 참아내는 방법이 없을까? 그만큼 절실한 그들의 현실에 괜한 까탈이 났다.
- 대안학교 선생, 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터뷰 도중 우연히 옆자리의 여선생님과 말을 나누게 되었는데 세인고 최고 미모를 자랑하는 미시선생님이라는 분이다. '처음에는 애들이 무서울 수도 있었겠네요' 은근히 바른 생활 대답을 구하고자 질문한 내용이었는데 의외로 솔직한 답변이었다. "그럼요 요즘 애들이 얼마나 덩치도 커요. 따지고 달려들 땐 속으로 많이 무섭죠. 하지만 그럴 때 일수록 물러서지 않고 정확히 이야기를 하죠!" 강한 자여! 그대 이름은 대안학교 여선생님일지라!
"제가 여기 온 후 3년 동안 월급을 20만원 받았는데요 그런 저에게 누가 시집오려 하겠어요. 제가 지난해 결혼하기 전까지 선만 한 40번 봤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 버텨낼 수 있었다는 이준철 선생의 말이 계속된다. "애들이 표현은 잘 않지만 믿고 싶어하는 마음 또 순수한 마음이 많아요. 언젠가는 우리 마음을 알아줄 때가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스스로 문을 열어줄 때까지 이렇게 계속 참고 기다리는 게 우리 선생님들이 역할인지도 모르죠"
기다리는 일 참아내는 일, 쉽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것이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그들이 참아내는 수 십번의 '삭이기' 때문에 문제아 녀석들의 새로운 거듭나기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대안학교 선생, 이거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 잘 나가는 무역회사의 처녀사장, 학교 교장이 되다
또 다른 만남, 돌나라 한농예능학교의 허태임 교제(교장)에게 이름 다음으로 물은 것이 그녀의 나이였다. 순간적으로 간단한 계산을 하는 눈치다. 쑥스러운 웃음으로 답하기를 44살이라면서 사실 나이를 아예 생각도 안하고 생활한지 몇 년이 되어서 바로 답을 해줄 수 없었다고 한다. 예전 학창시절 미팅같은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한번 잽(?)을 던지는 상대에게는 왠지 믿음이 가질 않았다. 뻔히 보이는 수작인 듯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태임 교제의 말은 교육자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녀의 진실이 나에게 오롯이 전달되어 그랬는지 추호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대학 때 전공한 불어와 영어에 능통, 26살 때 이미 [허's 트레이딩]이란 무역회사를 차리고 경제력과 인맥을 자랑한다.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즐기기 어려웠던 스키를 타고 외국여행을 다녔던 한마디로 잘 나가는 처녀사장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활 속에서 외국인 변호사에게 프로포즈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생활에 제약받는 게 싫어 거부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성격의 능력 있는 여성이었다.
-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다
그녀의 나이 31세에 복합암이란 선고를 받게 된다. 수술을 하면 2년을 살수 있고 놔두면 6개월이 그녀의 남은 생명 전부였다. 하지만 몸에 칼을 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그녀의 표현대로 '하늘과 지옥을 넘나드는 생활'을 한다. 힘들었던 그녀는 당시 믿음이 있었던 성직자에게 찾아가 상담을 하지만 이 세상의 성직자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분들이었지, 그녀와 같이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한 성직자가 아니었다.
- 석선 선생과 만나다
새로운 인연은 항상 나중에 보면 '필연'으로 여겨지는 '우연'으로 시작되곤 한다. 어느 날 그녀는 종로 5가 근처 지하철에서 우연히 시집을 한 권 구입하게 되는데 바로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다. 석선 박명호 선생의 시집이었다.
"그 시집을 읽고 바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석선 선생님을 찾아뵈었죠. 그런데 선생님이 대뜸 '교육사업을 한 번 해 보시는 게 어떨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교육은 백년지대계인데 시한부 목숨인 제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말씀 아닙니까'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 오히려 더 깨끗하게 잘하지 않갰는가' 머릿속이 맑아졌죠."
당시 한농복구회 전북지부였던 완주군 동상면으로 오게 된 그녀의 나이는 32살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었던 태권브이의 김청기 감독과 조우, 자연스럽게 귀농자들의 자녀나 취학시기를 놓친 아이들을 대상으로 애니메이션 무료교육을 실시하면서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준비한다. 98년 1월, 준비를 끝내고 다음해 완주교육청에 전주한농학교 중학교과정을 등록, 2000년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등록한 후 올 2003년 2월 13일 5회 졸업생까지 배출해낸다. - 매일을 하루처럼 살다
그녀의 하루는 보통사람과 또 다른 하루다. 일반인들은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으며 또 다가올 내일을 기대하지만 그녀의 오늘은 단 하루 뿐, 매일을 하루처럼 살고 있다. 그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석선 선생의 말씀이다. [一日淸閑 一日仙 하루를 맑고 깨끗하게 살면 그 날 하루가 신선이다] 이렇게 매일을 신선처럼 살고자 노력했던 그녀는 문득 자신이 복합암으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그러고 보니 벌써 수년이 흘러있었다. 교육사업을 하면서 매일 채식을 하고 챠콜이라는 숯가루를 먹은 게 전부인 그녀에게 일어난 기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또 다른 기적의 이유가 있다.
"제 생일이 한 여름이거든요. 방학때잖아요. 물론 저 자신도 잊고 살았지만 어느 해였나, 방학땐 데도 아이들이 한 두 명씩 보이는 거예요 쟤들이 왜 왔나? 했는데 알고 보니 제 생일 챙겨주겠다고 그 먼길을 다시 온 것이었죠. 그래서 저는 너무 쑥스러워 산으로 도망쳤는데 애들이 와서 기어이 저를 데려가는 거예요. 그때 비가 제법 내렸는데 아이들이 비를 맞으며 제 생일 축하 연주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내놓더군요. 펴보니 조그마한 양산이었는데 그걸 살려고 3일 동안 고추밭에서 품팔이를 했다는 거예요.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비가오면 우리 선제님 우산이 되고 햇볕이 내리쬐면 선제님 양산이 되어주고 싶소' 눈물이 났습니다. 많이요, 아주 많이요" 그녀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 준 눈물이었다.
- 사람공부가 필요하다
"언젠가 교육방송에서 하는 수업 프로그램을 봤는데 유명한 학원강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선생님은 애들에게 다 반말을 하고 또 비어(卑語)를 섞어가면서 가르치는 거예요. 선생님은 직업인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준 성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들려주는 교육이 없어서 망하는게 아니고 보여주는 교육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죠. 선생님이 그런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면 어떤 학생이 따라오겠습니까? 지식은 전달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전에 선생님들이 모범이 되는 '보여주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농예능학교에서는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함께 배우는 자세를 잊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지식을 배우는 공부이전에 사람을 배우는 공부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 교육은 남을 이롭게 하는 배움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졸업을 하게되면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쪽으로 많이 나가는 데요 이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인드가 몸에 배어있으니까 그쪽 사람들과도 진실되게 친해지고 또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01년 10월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렸던 '고려인의 날' 기념행사에 참여한 한농예능학교학생들은 6박 7일동안 고려인마을을 돌면서 순회공연을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허 교제가 알게된 사실, 아이들이 가난한 고려인 아이들에게 운동화며 옷들을 다 주고 왔다는 것이다. 남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실천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아이들과 나누는 사랑이 전부다.
"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그 자리에서 혼내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센 아이들이고 또 그 순간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잠시 후에 따로 불러 일대 일로 얘기를 나누고 이해를 시키죠. 마음으로 교통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매일을 하루같이 사는 허태임 교제에게는 아이들 이야기 외에는 더 이상의 욕심이 없어 보인다. " 저는 지금이 가장 풍요롭습니다. 아이들이 있고 그들과 우리가 서로 나누는 사랑이 있는데 더 이상 필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대안교육학교 선생님들은 사람 사랑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