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 | [특집]
대안학교, 새로운 탈출구인가
제도적 한계 넘어 공교육 개혁의 지렛대로
대안교육의 개념과 전북지역 현황
글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3-02 18:11:48)
과도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에 내몰린 청소년들이야말로 '인권 유린의 희생자'라는 개탄스런 해석까지 낳게 했던 제도권 교육의 현실은 이미 전 국민적인 문제로 부각된 지 오래다. 그 속에서 새로운 탈출구로 제시된 것이 바로 '대안 교육'과 '대안학교'라는 새로운 교육 이념이다.
'학교 붕괴'라는 극단적 위기감이 교육계 전반에 확산되면서 획일화 된 제도권 교육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자율과 개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교육형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보자는 것이 실질적인 '대안교육' 운동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1995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대안교육 운동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대안학교 설립으로 이어져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넓혀놓는 등 교육 수요자의 역할과 요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교육 개혁운동 영역이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을 중심으로 제도권 내부 개혁에 쏠렸다면, 대안학교의 등장은 교사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 종교인들이 폭넓게 참여하면서 제도권 밖으로 확대되는 교육운동의 지형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개혁의 방향 역시 교육수요자 중심 원칙, 다양화·특성화 교육, 열린교육 등으로 모아지고 있어 특성화고교와 대안학교 설립은 앞으로 더욱 활기를 띌 것으로 보인다. 정부 스스로 공교육 체제를 재편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이분적 구도는 차츰 그 의미가 약화되어가는 추세다.
대안학교는 일반적으로 제도권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학교 부적응아들의 집합소라는 이미지로 굳어져 있지만, 실상 다양한 형태와 유형을 갖고 있어 이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수용하고 자리잡게 하느냐는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보장과 제도적 측면의 신중한 배려가 필요한 대목이다.
비뚤어진 제도권 교육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등장한 대안교육의 이념과 형태는 학교 설립주체와 수요자인 학부모 및 학생들의 학교 역할의 개념과 기대의 차이만큼이나 다양하게 형성돼 있다.
전국적으로 10여개의 대안학교가 운영되고 있는데 교육부의 인가를 얻었느냐 얻지 못했느냐의 여부에 따른 정규학교와 비정규학교의 구분이 있을 수 있다. 인가를 얻지 못한 학교 졸업생들은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별도의 검정고시를 통과해야만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학력 위주의 사회 풍토와 제도권 교육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토대로 대안학교를 선택한 이들에게는 처음부터 감수하고 나선 몫이긴 하지만, 웬만한 신념 없이는 결코 쉬운 선택일 수 없다.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정부가 개념 규정한 '특성화학교(특성화고교 및 대안학교)'에는 '기능적' 특성화학교와 '이념적' 특성화학교가 포함되는데, 전문 직업과 기능을 훈련하는 실업계 특성화고교는 기능적 특성화학교로 볼 수 있고, 일반적으로 흔히 이야기하는 '대안학교'가 바로 이 이념적 특성화학교라 할 수 있다.
교육개혁이나 교육운동 차원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념적 특성화학교다. 대부분 '작은 학교'를 표방하며 학생 전원 기숙사 생활을 통해 인문·생태교육과 전인교육 등을 지향하고 있는데, 시 외곽지역이나 농촌에 자리잡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부는 98년부터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를 시발로 대안학교를 특성화고교의 한 형태로 정식 인가해주기 시작했으며, 지난해에는 '고교 이하 각급학교 설립·운영 개정안'을 통해 대안학교의 설립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따라 도심에도 탈 학교 청소년을 위한 '도시형 대안학교'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도심 속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지만, 무분별한 학교 난립이나 또 다른 '입시학원'으로의 변질 등 당초의 의도가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실리고 있다.
현재의 이념적 특성화학교, 즉 '대안학교'는 기존 공교육체제의 경직성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유로운 학교 생활을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와, 인문적 가치와 생태적 교육을 지향하며 전인적 교육 프로그램을 집중 운영하는 학교의 두 가지 형태가 보편적이다.
전북에서는 이른바 '부적응' 학생들을 수용하는 대안학교로 완주군 화산면의 세인고등학교와 진안군 주천면 진솔대안학교를 들 수 있는데, '부적응자 수용학교'라는 이미지에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 대부분은 적잖은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정상적이지 못한 제도권 교육에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사회적 통념을 들이대 '부적응자'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또 한번의 상처를 가하는 셈이라는 비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적 가치와 생태교육, 체험 위주의 교육을 표방하고 있는 대안학교로는 무주 푸른꿈고등학교와 완주의 한농예능학교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특성과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하고 개발해 나가면서 '삶의 교육'을 실천한다는 의지에서 학교 설립을 추진한 경우다.
이들 대안학교는 학교교육이 성적을 통해 아이들을 서열화함으로써 이기심과 절대적 경쟁관계만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비판 속에서 뜻있는 전현직 교사들과 학부모, 교육계 인사들이 참여해 적극적인 교육 개혁 실천의 단초를 마련해가고 있다.
완주 세인고는 1999년 3월 문을 열어 지금은 전국적으로 꽤 알려진 학교로 심력과 체력, 지력 자기관리능력, 인간관계 등 인간의 본질적인 다섯가지 요소를 전면적으로 교육하는 '5차원 전면교육학습법'을 표방하고 있다.
진안 진솔대안학교는 사회성 훈련과 공동체 교육, 현장 체험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며, 중고교 과정을 아우르고 있다.
인문·생태 교육을 강조하는 대안학교는 무주 푸른꿈고등학교와 완주 동상면에 위치한 한농예능학교,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가 대표적이다.
전북에서도 모범적인 학교 운영으로 주목받고 있는 무주 푸른꿈고등학교는 교육현장에서 제도권 교육의 폐해를 경험한 전현직 교사들이 주체가 되어 '자연 닮은 인간' 양성이라는 목표 아래 1998년 문을 열어 국어 영어 수학 등 일반고교와 동일한 교과과정과 생태농업, 생태건축, 과수재배, 약초재배, 목공, 도예 등 특성화 과목을 교육과정으로 구성해 놓고 있다.
한농예능학교는 한국농촌복회(한농회) 소속 회원 자녀들이 대부분으로 실업교육과 노작, 예능교육을 특화하고 있다. 여기에 명심보감과 전통 예절을 가르치고 있는데, 특히 1인 3기 예능교육을 통해 악기 연주와 음악을 통한 인성 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중고교 과정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원하는 학생들은 별도의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는 귀농전문학교와 농장공동체와 함께 실상사 주지인 도법스님이 의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학교로 교과구성은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 자기발견의 기간(3학기), 2단계 검정고시 준비기간 (2학기), 3단계 진로모색기간(1학기)으로 국어 영어 수학 등 일반교과와 체험학습, 봉사활동, 문화기행 등의 과목이 중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 전교생 100여명 안팎의 작은 학교지만, 교과과정과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학교 내 민주적인 의사 결정과 공동체 생활, 그리고 인성교육이라는 뚜렷한 교육 목표를 갖고 '새로운 학교'로의 전형을 세워나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공교육 체계에 대한 전반적 검토와 자성의 기회가 됐다는 점이나 학생 존중 교육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 그리고 교육위기에 맞서 교사와 함께 학생과 학부모, 시민들이 그 대안을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대안학교가 갖는 성과와 의미는 각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학교가 풀어가야 할 현실적 과제와 한계 또한 적지 않다. 기존의 대안학교 대부분이 정부 차원의 지원 없이 학부모와 교사, 외부 후원인들을 통해 학교 설립과 운영비용 등을 충당해 가면서 자발적인 기부 문화의 모범을 보여왔지만, 박봉에 시달리는 교사들과 부실 재정 등 현실적인 한계에 끊임없이 직면해 온 상황. 특히 교육부의 인가를 받은 정규 학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할 경우 정부의 재정지원은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인데다, 전문적인 교사 확보 역시 쉽지 않은 난제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나친 입시교육 풍토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학교를 설립했다 하더라도, 졸업 후 학생들의 진로 지도 등 여전히 제도 교육의 두꺼운 벽을 넘어서는 데에는 장애요소가 적지 않다. 인문계 고교처럼 대학 입학을 전제로 하거나 별도의 준비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막상 고3을 둔 학부모들에게는 졸업 후 마땅한 진로가 없다는 점이 무시할 수 없는 불안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성공회대나 한신대 등 극히 일부 대학에서 대안학교 특별전형을 추진하고 있긴 하지만, 학력 위주의 사회 풍토가 개선되지 않은 현실에서는 '신념'만으로는 넘기 힘든 장벽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2002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으로 의무교육이 확대 시행되면서 교육부의 인가를 받지 않은 대안중학교는 사실상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실정. 비인가 중학교를 보낸 학부모들은 결과적으로 의무교육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과정을 개설하고 있는 한농예능학교나 진솔대안학교, 실상사 작은학교 등도 이러한 문제로 학부모들과 교사들의 고민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또 인성 및 생태교육을 표방하고 있는 대안학교에 이른바 식자층이나 중산층 자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은 또 하나의 '귀족학교'라는 오해의 소지를 낳고 있어 다양한 사회 계층을 아우르는 학교측의 전략적 노력도 병행돼야 할 부분이다.
질 높은 대안학교는 공교육 개혁의 지렛대 역할을 담당하며 사회 전반에 걸쳐 높은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지만, 운동적 차원을 넘어 안정적인 학교 운영과 전문 역량을 갖춘 교사들을 풍부하게 배출해 낼 수 있는 사회 제도적 창구 마련, 그리고 대안학교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계의 이론 정립 등은 앞으로 꾸준히 풀어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가진 몇몇 교육개혁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꾸려지던 대안학교가 정부의 열린교육 정책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대안학교가 공교육 개혁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대안학교가 운동적 차원을 넘어 교육 수요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고 사회 전반에 만연된 학력 위주의 사회 풍토를 극복하는 진정한 '대안교육'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효율적인 지원과 관심,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확산 등이 뒤따라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