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6 | [교사일기]
캄캄한 어둠을 밝혀 새날을 열자
박기업/임실고등학교교사
(2004-02-03 15:50:50)
Ⅰ.들어가는말
89년 전교조 결성은 그동안 삭막하고 침체된 교단에 광명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이었다. 양심을 옭아 매여 시류에 편승한 교육을 하고 있던 우리 교사들에게 커다란 희망이었다.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을 실현하고 이땅에 바른 삶을 세우고자 했던, 그렇게함이 역사적 소명이라 생각했던 많은 교사들이 교단에 쫓겨나야 했다. 뜻있는 많은 사람들은 가슴 아파했고 분노했다. 그 해 반년은 매스컴에서 참교육 논쟁이 유행가처럼 자주 다루어졌다.
그 당시 정권은 본질을 감추고 ‘교육자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말로 많은 국민들을 현혹시켰다. 학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전교조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가졌다. 또한 정권은 계급성을 시비로 이념 논쟁으로 몰아갔고 교육관료들은 용공으로까지 비약시켜 음해했다.
실은 입시 교육으로 현실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고, 현실을 돌아 볼 여유도 갖지 못하게 하여 순한 양으로 길들여야하는 그네들의 속셈을 들켜버려 그것을 감추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었다고나 할까. 위기의식의 최절정에 다다른 자일수록 마지막 몸부림도 거센 법이다. 그들은 징계의 칼날을 힘차게 합법성은 망설임없이 휘둘렀다. 그리고는 최선을 다해 설득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그러나 1600여명의 교사는 온 몸으로 징계의 협박을 거부하며 해직의 고난을 감내했다.
해직의 세월 4년, 교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이 견뎌냈다. 아니 견뎌낸 것이 아니라 황폐화된 교육을 바르게 일으켜 세우는데 가시밭 길을 쉼없이 걸어 왔다. 그들이 이룩한 교육적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고난의 길을 걸어온 것 하나만으로도 마땅히 교단으로 돌아가야 함에도 정권은 여러 가지 조건을 내걸며 핑계를 연발한다.
Ⅱ. 해직 그 이후
명동 성당에서의 단식 농성으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삶터를 빼앗기고 거리로 내쫓긴 이들의 정신적, 물질적 고통이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교육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샅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그들에겐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거리에서 선전물을 뿌리면서, 전교조 신문을 배달하기 위해 학교 방문을 하면서 몇 번이고 내리는 눈물을 남몰래 훔치며 반드시 교단으로 돌아가 정말로 참교육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키워 왔다. 어린 제자들의 애정이 담긴 편지 한통에 눈물을 흘리고 현장 교사들의 학교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눈물을 글썽이는 여리고 착한 그들이었지만, 불의를 보면 과감하게 항거할 줄 아는, 굽힐 줄 모르는 강한 그들이었다. 해직 기간동안 단 하루도 이 나라의 교육을 염려하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현장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들에 대한 지도, 지원에 온 열성을 다해 왔다. 그간 그들이 보여준 교육 문제 해결에 대한 열정은 감히 그 누구도 과소 평가할 수 없다.
학교 현장의 교육여건 개선이나 교권 옹호 등 현장 지원에 물심양면으로 아낌없는 노력을 했고, 제 민주 단체와 연합해서 사회민주화, 교육 민주화를 위해 힘차게 싸웠으며, 전교조 합법화를 이루기 위해 4년 동안 싸웠다. 그동안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전교를 사수하고 참교육 실현의 조건을 만들어 가는데만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각종 자주 연수를 통해 참교육 실천 역량을 키워 왔으며 집회나 선전활동으로 결의를 다져 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한 덕택에 해직교사 상당수는 건강이 무척 손상되었고, 그 간에 우리의 간절한 염원에도 아랑곳없이 세상을 떠난 분들이 한 둘이 아니잖는가?
교단으로 돌아갈 희망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난 분들의 뜻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해직 교사들이 그간 교육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참교육 실천 자료 개발이 그 중 가장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교과자료, 총화자료, 놀이 지도, 학급 운영, 특별 활동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교육 구조나 제도에 대한 개혁안 등 교육에만 세력으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 바 있다. 부분적으로 교육부에서도 전교조에 성과를 넘겨주지 않은 방식으로 전교조에서 제시한 방안들을 슬쩍 슬쩍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근본적인 개혁이나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개량적인 방식으로나마 변화되는 것은 결국 누구 때문이며, 무슨 조직 때문인가.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 분위기나 여러 가지 조건상 드러내고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심정적으로 무한한 찬사와 지지를 보내고 있는 수 많은 현장 교사들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정권에서 그동안 계속 문제 삼아 홍보했던 과격성은 과연 무엇이였는가. 교육관료들의 비상식적인 탄압을 물리치기 위한 일종의 반작용쯤 아니었는가. 애초부터 그들이 정말로 과격한 싸움꾼이었는가. 우리 현장교사들이 어쩌다 만나 본 많은 해직 교사들은 남이 기뻐할 때 함께 웃고, 남이 슬퍼할 때 함께 가슴 아파하는 그야말로 너무 평범한 너무나도 인격적인 그런 모습의 사람이다. 단지, 이 땅의 잘못된 모든 것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과감히 지적하는 용기가 있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들을 죄악시했다면 이젠 분명히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하며, 비뚤어진 것들은 바로 세우고 거처를 떠나 있었던 모두는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Ⅲ. 복직을 염원하며
전교조 결성이래 처음으로 이루어진 전교조 위원장과 교육부 장관의 공식적인 접촉은 상당히 우호적이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복직에 대한 구체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 뒤 실무진들의 접촉으로 전교조와 복직은 분리 검토하자는 정도의 성과가 있었다. 이러한 두 번의 만남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가시적 성과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원칙들을 세우기가 몹시 어렵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대화가 이루어진 것도 정부쪽의 시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간 온 국민이 보여준 정권에 대한 압박으로, 다시말해 전교조의 활동으로 이끌어낸 성과이다. 40만 교사의 성과인 것이다. 새 정부는 해직교사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고 그간의 잘못에서 벗어나냐 하는 절박한 상태에 있다. 국민적 감정에 상응하는 조치 정도는 해서 정치적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것마저도 정부의 파격적인 개혁이라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더군다나 고생을 청산하고 전교조의 깃발을 내리고라도 들어가야 한다라든가 탈퇴 각서를 쓰고라도 복직해야 한다라는 개개인의 인정차원으로 받아들여서는 결국 정부가 의도하는 바에 협력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요즘 교육계의 각종 비리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문제 해결의 의지를 전혀 볼 수가 없다. 비리를 공개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결말이 없다. 미완성의 변죽만 울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개혁이 아니다. 제도나 구조의 근본적인 말바꿈이 없이는 개혁이 될 수 없다. 개량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해직교사에 대한 문제 해결도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되어야 한다. 교원노조를 인정한다는 LID의 권고와 국제교원 노조연맹 (EL)등의 국제적 압력, 그리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교원노조를 인정하는 세계적 추세, 국민적 열망에 정부는 가시적 조치를 해야 한다.
따라서 해직교사 복직문제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며 마땅히 조건없는 복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장에서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고, 현장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그간 축적한 참교육 실천 역량을 발휘하여 교육 현장이 강화되고 신명나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캄캄한 어둠을 이제 밝혀 새 날을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