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4 | [문화저널]
예쁘게 써야 한다.
이 영 준 / 자유기고가(2004-02-03 14:29:58)
문학편론을 하는 전정구라는 사람은 『글쓰기이 모험』이란 책을 낸 바 있다. 나처럼 글쓰기가 본업이 아니라 아마추어 수준인 사람은 글을 쓴다는 것이 진짜 모험이고 고난이다. 그럼에도 『문화저널』 58호 (1993년 3월) 에 나타난 몇 가지 문제를 같이 생각해 보자는 것은 순전히 『문화저널』의 글쓰기에 대한 개선을 바람에서다
우리나라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아는 바와 같이, 통일이 아닌 분단의 나라다. 그러나, 음식점에서만큼은 상당히 통일 지향적인 주문이 통용된다. 정작 하고싶은 말은 실제 우리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분단의 여러 모습이다.
간단한 예가 책명, 논문, 시등을 표기하는 방식이 아주 자유롭다. 자유롭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인 것같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 글읽기가 몹시 비싼 노동이 된다. 이렇게 불필요한 비용을 정신적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글읽기의 포기를 자연스럽게 강요하는 셈이다.
구체적인 경우를 보자. 〔한국 전위조직 운동사〕(21쪽)라는 책명의 표기가 있다. 국어의 책명을 표기하는 구체적인 방향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영문의 경우에는 책이름에 이탤릭체 (또는 밑줄)을 쓴다는 것이 관행이다. 따라서 필자는 『 』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그대안의 블루〕(64쪽)와 <홍등> (66쪽)이라는 영화제목도 마찬가지다. 앞의 문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같은 책 안에 영화제목을 표기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런 반통일은 글읽기의 짜증을 더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화저널' (81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침을 열며』 (83쪽)가 그래도 제대로 된 경우라고 본다. 영화제목도 책제목처럼 『 』를 사용히야 한다.
전북대의 어느 학과에서는 논문작성법이라는 과목이 설강되어 있다. 그런데 이 과목이 한 학과에 설강되면 모든 학과가 동일한 과목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침내 이 과목이 폐지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을 지향하는 결정은 어떻게 정당한 것인가를 필자는 아직도 이해할 수 가 없다. 한 학과에 설강해놓고, 필요한 학생은 아무나 들으면 될 것이다.
미국에 다녀온 사람의 말을 빌리면, 논문작성법이나 논문을 쓰는 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을 위한 위원회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논문쓰는 것을 비관하여 자살한 경우는 아직 없는 것같다.
제대로 바른 방향으로 모두가 이해하기 쉽게 통일을 지향하는 것과 입맛이 다른 데도 음식을 통일하는 이러한 모순을 어디서 해답을 찾아야할 지를 모르겠다. 여식 미국여행을 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 식당에 가기가 불편할 만큼 입맛에 맞는 소스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인용의 경우를 보자. 정확한 인용을 해야 하고, 인용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한다. "청학동은..... 큰 사람이 난다 했다." (23쪽)이 인용은 아무래도 다음과 같이 써야 할 것이다. "청학동은 ....큰 사람이 난다"했다. 인용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수많은 예는 일간신문을보면 금새 알 수 있다. " "로 표현하는 직접인용은 반드시 말한 사람이 말한 그대로 인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글쓰기의 기본에 속할 것이다.
띄어쓰기는 여전히 통일이 되어 있지 않고, 통일안조차 어떤 경우에는 선택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구두점을 쓴 다음에는 띄어써야 한다. 다음의 예를 보자: 3. 이에...(70쪽), 5. "본다".... (70쪽) .이러한 띄어쓰기는 꼭 지켜야하는 띄어쓰기의 경우라고 생각한다. 내친 김에 이른바 요즈음 워드프로세서에서 금칙이라고 하는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62쪽의 국어과 교수가 쓴 글과 똑같이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 62쪽의 첫문장에 나오는 물음표는 누가 보아도 이상한 모양인다. 75쪽의 중학생의 글은 마침표가 빠졌다거나, 물음표가 행의 처음에 나온다거나, 문단의 들여쓰기가 안된 경우처럼 글쓰기의 격식이 많이 틀려 있다. 중학생의 글이이서 원본을 따른 것이라는 변명은 맞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가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정성을 들여서 정짓하고 예쁜 글을 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글 자체에 대한 것이지, 글쓴이에 대한 비판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더욱이, 이러한 잘못이 원래 투고한 사람과는 달리 편집에서 일어난 것일수도 있기때문에 가급적 작자보다는 페이지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이밖에도 잘못된 구석이 하나둘이 아닐 만큼 많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음 호부터라도 제대로 틀이 잡힌 글이 나오기를 바란다.
『우리말 바로 쓰기』 같은 책이 제시하는 문장을 다듬는 일보다 앞서서 기본이 되는 형식을 바로 쓰는 일보다 앞서서 기본이 되는 형식을 바로 스는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내용이 번듯하다고해도 형식이 어긋나면 읽을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요즈음처럼 글이 사람들에게서 달아나는 세상에서는 더욱그렇다. 그러므로 글을 읽으려는 사람에게 유쾌한 글읽기가 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