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 ‘너’와 ‘나’의 관계
쉬는 시간 교실의 풍경은 항상 달콤하고 아쉽고 즐거운 시간. 땡땡땡 시작종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사가 이미 당도했음에도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들 이야기에 열중이다. ‘차렷, 경례’. 하지만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다시 ‘공수’ 그제서야 하던 일을 멈추고 ‘배’와 함께 인사한다. 똑같은 인사지만 아이들은 전통예절 인사법에 훨씬 더 집중하고 예의를 갖춘다. 굳이 ‘조용히 해’라고 언성을 높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왜일까? 일상적이지 않은 인사 용어 때문일까? 그것은 인사에 대한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공경하고 예를 지킴으로써 나도 공경을 받는다는 이치를 자연스럽게 깨닫기 것이고, 그냥 하는 인사가 아닌 상대의 존중에서 나오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존중은 타인만을 위함이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이고, 인성교육의 기본이다. 모든 인간관계의 첫인상이 인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사의 중요성은 굳이 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알찬 내용도 형식이라는 틀 안에 있는 것이므로. 아름다운 디자인은 작품의 영혼이라는 말이 있다. 아름다운 인사는 그 사람의 작품 즉 인성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인사예절은 우리 교육의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경쟁 속에 감춰진 상상력
그리고 수업 시작. 수업은 진행되고 있는데 학생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그저 책과 칠판만 눈이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이 있을 뿐. 어디 갔을까? 생각이 필요 없는 수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을 보낼 뿐이지 수업에 참여하고 있지 않았다. 다시 가다듬고 수업 방법 전환. 하지만 이 또한 아무 의미가 없었다.
왜일까? 수업에 대한 출발점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수업은 ‘하는 것’이 아니라, ‘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선 먼저 아이들을 파악해야 하고 이해해야만 해결되는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이들이 꿈이 없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왜 꿈이 없을까? 항상 경쟁 속에서 살아온 아이들은 이미 지치고 생각의 여유가 없었다. 자신의 꿈을 꿀 여유조차 없이 내몰리고 있었다. 눈을 돌려 현장체험으로 바꾸고 소외가 아닌 참여를 통해 소통과 대화의 장이 열리고 나서야 아이들은 스스로 이야기꺼리를 만들고 느끼면서 조금씩 수업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품이 복도에 내걸리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한발 짝 더 수업으로 들어왔다. 만화를 만드는 모둠별 작업에는 모두 적극적으로 내면의 끼를 드러냈다. 꿈 발표회 시간에는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며 스스로 정리하고 다짐했다. 감춰져있던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한했다. 아이들은 그 상상력으로 미래를 디자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수업에 참여하며 변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갖게 하려면 교사가 먼저 창의적이 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잃어버린 놀이터
“자 이번에는 수업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해볼까? 무엇을 하지? 놀까?”
“예~~~” “어떻게?” “몰라요….”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외에는 같이 놀 줄을 몰랐다. 어려서 동네아이들과 했던 놀이는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얼음땡, 연날리기 등 주로 실외에서 다 같이 하는 놀이였다. 꽁꽁 언 손으로 팽이 치며 썰매를 밀어주고 탔던 ‘영희야 놀자’ 시대였다. 요즘 아이들은 실내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수다를 떤다. 아니 대화를 하는 것이다. 같이 놀 친구와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학교가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물으면 친구가 학교에 있다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만큼 친구가 좋고 즐거운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를 오고 많은 친구를 사귀며 놀이와 움직임을 할 수 있는 음악, 미술, 체육시간을 기다린다.
놀이는 인간 생활의 축소판이다. 그 안에는 다양한 갈등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놀이문화는 ‘함께’가 아닌 ‘혼자’ 노는 문화이기 때문에 예전의 놀이가 가르쳐줬던 사회생활의 역할들을 배우지 못한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순간순간 창의적인 발상을 떠올리고, 그 발상으로 미래를 디자인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창의적인 발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책 읽기의 힘까지 더해진다면 아이들이 그릴 수 있는 미래는 더 풍성해진다. 놀이문화는 우리 아이들이 경쟁과 차별을 벗어나 서로 배움과 돌봄의 역할을 해볼 수 있는 장이다.
창의적인 교육, 꿈꾸는 아이들을 바란다면 놀이야 말로 지금 우리 학교에 가장 필요한 수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