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1 | [문화저널]
산청 사는 김교락 선생께
박남준(2004-02-03 12:05:30)
저토록 햇살은 투명할 수 있을까. 밤새 추위에 떨던 알록무늬 부전나비며 나날이 벌 그리고 작은 작은 날벌레들 아직 살아 있었다는 듯 햇살을 감고 누비며 날아오르는 유영의 한가로운 늦가을 풍경을 비집고 들어오는 밀려오는 밀려와서는 두 눈에 이는 번지는 아련한 습기 그 투명한 슬픔들.
날이 추워서인지 이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들도 안쓰러우리만큼 신음처럼 가늘게 떨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술에 취해 늦은 밤이 되어야 돌아오는 날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때는 불을 때고 자는 것도 잊어버려 새벽녘에 잔뜩 등을 웅크린 채 뒤척거리다 딱따구리처럼 이빨을 따르르 떨며 잠을 설치기도 하니까요.
그 여린 생명들이야 지난 밤 오죽이나 몸을 떨었겠어요. 몸집 큰 짐승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따뜻한 털갈이까지 하는데 저것들은 이제 머지않아 죽음에 다다르겠구나… 그런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구나하며 서러움에 이르기도 하고 어찌 생각해보면 그래서 참 공평 정대한 자연의 순리로구나로 마음을 바꿔먹기도 합니다.
겨울 땔감은 마련하고 있는지요. 나무하기는 제가 사는 이곳 모악산보다는 그곳 산청이 아무래도 수월하겠군요. 화순에서 처음 뵙고 산청에서 하룻밤을 불쑥 찾아가 묵고 오기까지 턱없이 사람 좋아 보이는 김 선생님에 대한 인상은 햐-거참 부처가 따로 없구나 였습니다.
붉고도 푸른 감잎들이 후후후 져 내리던 다음날의 아침 마당가에는 가을 햇살 같은 투명한 웃음들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지요.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좋기는 좋은 곳이지만 크고 작은 지리산의 산능선이 훤히 바라보이는 새 집터에도 저의 부러움을 보냅니다.
움푹움푹 꺼져내린 구들장이며 텅 비어 있는 나무허청 오두막 같은 작은 집 하나 제대로 건사하고 살지 못하는 저의 게으름이 부끄럽군요. 올경루에 새집을 짓는다고요. 이제 집 짓게 되면 바쁘실지 모르지만 한번 건너오세요. 아직 붉게 매달린 채 꽃처럼 피어있는 감나무와 마당 앞을 흐르는 작은 개울 그곳에 낮게 엎드려 있는 남루한 집한채 한번 건너오세요. 등 따뜻하게 불 지피고 봄에 뜯은 고사리나물이라도 무쳐 나누며 한잔 술에 취해봅시다.
감기 조심하시고요 방에 불 따뜻하게 넣고 주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