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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0 | [특집]
축제를 잃은 민족은 무기력해진다 머슴명절-백중놀이 현장을 찾아서
글/김성식 문예기획 ꡐ두레ꡑ대표 (2004-02-03 11:55:47)
지난 8월21일은 음력으로 백중절이다. 후기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오늘에 있어 세시 풍속의 의미와 기능이 예전 같지야 않겠지만 아직도 주기전승 되고 있는 민속놀이는 적지 않다. 음력 7월15일, 백중절의 백중놀이 또한 그 중 하나다. ꡐ어정칠월 동동 팔월ꡑ이란 말이 있다. 어정어정 칠월이 가고 동당동당 팔월이 간다는, 농사일을 한고비 넘긴 농촌 생활의 한가함을 표현하는 말이다. 7월 보름 경이면 논의 김을 다 매고 팔월 추수 때까지는 다소 한가해 진다. 그래서 이날을 맞이하여 고된 농사일에 젖어있던 두레꾼들이 하루쯤 일에서 해방되어 가을 겆이의 풍년을 고사하며 마음껏 휴식하고 놀던 날이다. 전북지역에서는 이날을 세벌김매기를 마친 호미를 씻는다고 해서 ꡐ호미씻이ꡑ 또는 술과 음식을 걸게 먹는다는 ꡐ술멕이ꡑ 등으로 부른다. 그러나 우리의 세시풍속은 그저 먹고 마시며 소비하는 날이 아니다. 일찍이 농경 사회를 이룩한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은 농업생산의 절기에 맞추어 거기에 합당한 의례로써 전승되고 있으며 그 양식은 민속놀이의 형태를 띤다. 민속놀이는 파종기와 추수기에 주로 집중되어 있고 그 사이 사이에도 노동의 단조로움과 피곤함이 쌓일 무렵에 절기가 배치 되어있다. 이는 당연히 주기적으로 단순 반복되는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농업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새로운 힘과 의지의 재생을 통해서 더욱 힘찬 생산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 어 주었다. 전북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백중절 민속놀이가 남원굿 보절면 괴양리에서 ꡐ삼동굿놀이ꡑ 이름으로 전승되고 있다. 남원 삼동굿놀이는 크게 기세배, 당산제, 상동서기, 대동굿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먼저, 이웃하고 있는 양촌, 음촌, 개신 3개 마을 풍물패가 각 마을 앞마당에 모여 판 굿을 친다. 이윽고 양촌 마을(형마을)의 채납소리를 신호로 각 마을은 농기를 앞세우고 삼거리에 모인 후 양촌 마을 용기에 각 마을의 농기가 세 번 절을 하는데 이때는 말을 사람들도 같이 절을 한다. 익히 알다시피 용기에 그려진 용은 물에서 사는 동물로 농사에 필수적인 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이다. 또한 기세배는 노동에 있어서 협동과 화합을 다지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어서 모두 하나가 된 각 마을 농기와 풍물패, 그리고 주민들은 ! 양촌 마을 어귀에 있는 당산에 도착하여 경건하게 유교식 당산제를 올리고, 마을 공동 우물로 행진하여 시암 굿은 친다. 자리를 마을 광장으로 옮긴 굿패는 ꡐ삼동서기ꡑ과장으로 이어지는데, 삼시랑(삼신할미)상을 차려 놓고 숯과 고추를 끼운 금줄 밖에서 출산을 기운하며 출산과정, 성장고정, 입신출세과정을 극 형식으로 진행한다. 이 과정은 마치 기자신앙과 같이 곡식의 성장과 풍년을 기원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때 태어난 세 아이를 무등 태워 한바탕 자지러지게 놀다가 부녀자들이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지네의 형상을 만들며 입신출세한 세 아이가 각각 문관, 무관, 선비의 순서로 지네를 밟고 지나간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마을의 풍수 지리적 형국이 지네를 닮아서 밟아 줘야만 마을의 위해를 막고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이다. 이 모습은 강강술래의 ꡐ지와 밟기ꡑ와 흡사하다. 마지막으로 굿패는 ꡐ마당 밟기ꡑ를 하며 마을 주민들과 신명 난 놀이판을 벌이면서 굿과 술에 얼큰해진다. 한편, 한국의 대표적인 백중놀이로는 경북 ꡐ밀양 백중놀이ꡑ를 들 수 있다. 밀양의 백중놀이도 백중을 전후하여 농사일을 한고비 넘기고 난 뒤 마을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풍장을 치며 풍년 농사를 비는 농신제와, 갖은 춤으로 구성되는 한판의 축제마당이다. 밀양백중놀이의 유래를 들면 밀양은 비옥한 농토를 가지고 있어 부농이 많은 고을이었으며 따라서 양반과 서민과의 신분상 갈등이 극심했다는 것이다. 지배층의 민중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밀양지방에 국한된 현상일리는 없지만 이 지방은 서민들이 양반을 희롱하는 춤놀이를 통해 그들의 애환과 갈등을 풀어내고 있다. 그 놀이의 진행은 잡귀막이굿과 농신제를 드린 후 본놀이로 작두말타기, 양반춤, 병신춤, 범부춤, 북춤, 대동마당의 순으로 행해진다. 영남루의 위용과 고즈넉함이 건너다보이는 밀양천 고수부지에서 농신제를 올리면서 놀이는 시작된다. 농신대는 저릅대 360개를 모아 위에서 아래까지 가로로 네 번을 묶어서 세운다. 삼대 30개를 묶어 12다발로 만드는데 이는 1년 12달 360날을 상징한다. 농신대의 제일 꼭대에는 오곡의 이삭을 모아 깃봉 같이 꽂고, 거기서부터 왼 새끼를 굵게 꼬아 만든 용 줄은 매단다. 그리고 각각 동서남북과 중앙을 나타내는 오방신장줄을 드리운다. 농신대 아래서 유교식 고사를 올린 후 본격적인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먼저 작두 말 타기는 그 해의! 농사장원으로 선정된 상머슴을 작두말(사다리와 비슷)위에 태우고 춤을 추 며 노는데 상머슴을 삿갓과 도롱이를 거꾸로 쓰고 입고 논다. 판이 무르익을 무렵이면 양반이 등장하여 덧배기 장단에 양반춤을 추며 뽐내는데, 잠시 후 사방에서 병신의 모습을 한 놀이꾼들이 양반을 희롱하며 등장한다. 이로써 양반은 내쫓기듯 물러나고 자진덧배기 장단에 맞춰 병신춤판이 벌어진다. 난쟁이,꼽추,떨떨이,히줄래기,중풍쟁이 등의 분방한 허튼춤은 청중들의 폭소를 여지없이 이끌어낸다. 이어서 경쾌하고 발랄한 범부춤이 등 퇴장한 후 오북춤이 펼쳐진다. 다섯 명의 외북잡이들이 나와 원진법을 활용해 가면서 단마치 장단으로 벌이는 오묵춤놀이는 흥과 신명을 한껏 고조시키며 대동마당으로 자연스럽게 판이 옮겨진다. 그런데 인간문화재 하보경옹(1908년생)의 신비스러운 춤을 잔뜩 기대했는데 워낙 노구인데다가 호흡마저 가빠서 춤사위 포즈만 취해주는 정도에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또 하나 이날 펼쳐진 밀양백중놀이의 특색은 이웃하는 마을의 민속놀이들이 합동으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올해 백중절을 함께한 민속놀이로는 밀양군 부복면의ꡐ감내 게줄당기기ꡑ와 고성지방에 전승되는 들노래인 ꡐ고성농여ꡑ가 있었다. 감내 게줄당기기는 정월 보름날 행해지는 상원(上元)놀이의 하나로 감내(甘川)에서 게가 많이 잡히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감내를 사이에 두고 윗마을과 아랫마을 간에 게를 많이 잡을 수 있는 ꡐ좋은 자리ꡑ를 확보하기 위한 다툼이 치열하였다고 한다. 해마다 거듭되는 이런 게잡이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한 지혜로 게 모양의 줄을 만들어 게줄당기기를 통해 이긴 마을에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게줄의 모양은 중앙이 둥그렇고 좌우에 젓줄이 달려 있다. 가운데의 둥그런 부분은 새끼로 감았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좌우에 줄을 달아 서로 잡아당기면 마치 게모양으로 펼쳐진다. 때에 따라 두 사람이 겨루는 소형의 줄에서부터 6인용, 10인용,20인용 등 다양한 줄당기기를 할 수 있는 게 또한 특징이다. 또한 고성농요는 모내기 노래, 도리깨 타작, 삼삼기 노래, 논매기 노래, 물레질 노래 순으로 부려졌는데 인간문화재 유영례 할머니의 매김 소리에서 경상도 특유의 씩씩하고 흥겨운 시김새를 들을 수 있었다. 이렇듯 각기 다른 지역에서 펼쳐지는 민속놀이는 그 고장 특유의 자연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개성을 지닌 채 전승되고 있다. 특히 백중놀이는 농경문화가 낳은 향토성 짙은 놀이로써 그 자체가 놀이의 차원에서보다 더 나아가 새로운 삶의 의욕을 갖게 하며 대동단결하는 마음의 계기를 만들어 주민들의 일체감과 공동체의식을 다지는 향토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전혀 낙관적이지 못하다. 전통사회에서 전승되어 왔듯이 앞으로도 자연전승 되리라는 기대는! 절대 금물이다. 세시풍속의 의미와 기능이 날로 쇠퇴하는 이유가 그 하나이고 또한 갈수록 가속되는 농촌의 해체위기가 그것이다. 민속놀이가 아무리 집단의 통합과 생산의 기능,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창출하고 우리 고유의 민족 심성을 정화하는 마당이라고 외쳐대야 현장에 사람이 없고, 자금이 없고, 의욕이 없는 바에야 부질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필자는 그 대안을 향토민속축제에서 찾고자 한다. 물론 정부차원에서 자연전승이 어렵게 된 민속놀이를 ꡐ중요무형문화재ꡑ로 지정하여 보호하고는 있지만 그 지정과 보호 방법의 획일성으로 인하여 거의 박제화 되거나 공연물 형태로 윤색되어 본래의 활기를 찾아 볼 수가 없다. 마을 단위의 전승력이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음에 주목하여 시. 군 또는 도 단위의 민속축제로 확대재생산함이 그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몇몇! 지역에서 시민의 날, 또는 군민의 날을 통해서 시연하는 곳도 없지 않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 다 보면 들러리 행사에 그치고 있다. 향토축제-시. 군민의 날 행사를 포함한 ? 는 그 지역민의 독자성과 전통성을 통해서 공통된 정서를 유발케하는 민속전승놀이를 근간으로 그것의 현대적 계승차원에서 다양하게 모색되어야 한다. 행사의 다양함을 꾀한답시고 천편일률적으로 아가씨 선발대회, 노래자랑, 체육대회, 연예인 축하공연만 할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주체는 민간제전위원회나 보존회가 관의 예산과 인력의 지원을 받아 시행함이 바람직하다. 지역민들의 연대와 통합을 위한 민속전승놀이의 복원이라는 순수한 요소뿐만 아니라, 자기 고장의 발전을 위해서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던 과거를 적극적으로 재구성하여 미래를 재편성하는 꿈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계기로 향토축제는 얼마든지 기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 향토축제는 갈등의 해소와 힘의 축적이라는 진정한 축제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역 고유의 향토축제 활성화는 곧 민족문화의 총화로 귀결된다! 는 생각을 7월 백중놀이를 보면서 해 보는 일이 넋 빠진 소린지는 모르겠으나, 축제를 잃은 민족은 무기력해진다는 말은 항상 옳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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