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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0 | [특집]
옛 것을 모두 잊으면 새것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되살려야 할 우리의 민속-
글/전성옥 연합통신기자 (2004-02-03 11:54:32)
1. 농촌문화의 공백기 농촌문화가 사라져 간다.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인한 농촌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영농방법의 변화로 인해 농경을 바탕으로 한 전통문화가 사라져 지금의 농촌을 문화적 공백기를 맞이하고 있다. 농경민족의 후예인 우리는 농작의 개시와 파종, 제초, 수확, 저장 등 계절의 변화에 따라 독특한 세시풍속을 이어왔다. 특히 호남지방은 평야가 넓고 기름진데다 수리조건 등 여러 면에서 농경의 적지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했고 농경에서 연유된 각종 풍속이 절기에 따라 성행했다 . 우리가 농촌문화라고 포괄적으로 부를 수 있는 요소들은 이러한 농경신성의례(農耕神聖儀禮)에서 비롯됐으며 이 의례는 공동체적 삶을 풍성하게 했다. 그러나 요즘의 농촌을 어떠한가. 마을 주민들이 모자라는 노동력을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두레와 품앗이는 이제 노동력을 사고파는 형태로 바뀌고 힘든 농사일을 잊고 작업능률을 높이기 위해 들녘에 울려 퍼지던 농요는 농기계의 요란한 굉음으로 바뀌었다. 새참 때 농부들의 목을 적셔주던 농주도 맥주로 대체되거나 농촌지역까지 파! 고든 음료 자판기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또한 도시문화의 쓰레기가 농촌문화의 공백기를 비집고 들어오면서 웬만한 읍 지역에는 ꡐ룸살롱ꡑ과 ꡐ룸 카페ꡑ 등이 서너 개씩 자리를 잡고 있다. 근년 들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ꡐ노래방ꡑ과 ꡐꡑ도 농촌의 청장년을 끌어들이기에 혈안이다. 우리 민족의 오랜 숨결이 스며있는 민속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면서 이질적인 외래문화에 잠식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농가의 경제규모가 예전보다 커지면서 농촌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 역시 증대되고 있는데 반해 이를 만족시켜 줄 만한 시설이나 행사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매년 가을이면 각급 행정기관에서 앞 다투어 벌이는 각종 향토 문화재는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기 보다는 일과성 행사나 전시행정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TV를 비롯한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도시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문화를 신속하게 소개 받고 있는 농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커갈 뿐이어서 농촌 청년들이 도시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농촌의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품에 안겨 동심을 키우던 옛 모습은 농촌지역까지 보급된 전자오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처럼 급속한 산업구조의 변화와 도시화에 따라 농경을 바탕으로 한 전통의 민속이 사라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같은 농촌문화의 공백을 소멸 되가는 민속을 되살려 메우고 전통에 바탕을 둔 새로운 문화를 가꾸어 가는 길을 모색할 것인가? 문화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항상 새로운 것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옛 것은 모두 잊고 새로운 것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이직적인 문화를 파생시키면서 삶의 질은 오히려 낮아지고 말 것이다. 전북 향토문화연구회 이강오(李康五)회장(전북대 명예교수)은 ꡒ우리들에게 전승된 민속은 조상의 정신과 생활의례 이므로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되며 민속에 담긴 조상의 얼을 이어받으면서 새로운 생활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바른 자세ꡓ라고 강조한다. 이제는 일제의 민족 주체성 말살정책과 산업화, 도시화에 밀려 원형을 잃고 축소된 우리 고유의 민속을 되찾아 나가야 할 때다. 행정기관의 아낌없는 뒷받침이 있어야 하며 지역 문화인들 을 중심으로 한 민속의 채집과 발굴, 기록화를 서두르고 이를 우리의 현실에 맞게 계량화 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2. 사라져가는 민속 농촌지역에서 성행했던 민속놀이를 세시절기에 따라 간추려 보기로 하자. 정월 초에 많이 하는 놀이로 널뛰기, 윷놀이, 제기차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자치기 등을 들 수 있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이루어지는 놀이로는 부녀자들의 성밟기, 기와밟기, 답교놀이 등이 있고 청소년들의 횃불싸움, 돌싸움, 농기뺏기, 쥐불놀이와 용마놀이, 줄다리기가 있으며 제의(祭儀)적인 성격을 갖는 지신밟기, 동제, 별신굿 등이 있다. 2월에는 영등굿과 띠뱃놀이가 베풀어졌으며 3월에는 화류(禾柳)놀이와 풀각시놀이가 있고 4월에는 초파일 연등이 백미였다. 5월에는 단오굿과 씨름, 그네뛰기가, 6월에는 물맞이, 복달임, 모래뜸질, 농신제가 열려 농번기에 지친 농민들의 심신을 달래주었다. 7월에는 호미씻기와 백중제가 열리고 8월에는 그 어느 절기보다 풍성한 마을 축제가 베풀어져 달맞이, 강강술래 등으로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나눴다. 9월에는 단풍놀이가 있고 10월에는 고삿시루, 11월에는 동지팥죽의 민속이 이어져왔다. 이중 일부는 아직도 절기에 따라 면면하게 농가? 【?이어가고 있지만 상당수는 사라지거나 겨우 명맥만을 잇고 있을 뿐이다. 또 전승되고 있다 해도 이미 원형을 잃은 채 변형되었거나 축소됐으며 옛날처럼 세시에 어울려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마을 주민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우리의 대표적인 미속놀이로 내세울 만한 전북의 민속들이 사라지거나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전북지방에서 다양하게 펼쳐져 공동체 삶을 풍성하게 했던 대표적 민속으로는 당산제와 솟대 세우기, 농기세배, 남원의 용마놀이와 삼동 굿놀이, 김제의 쌍용놀이와 입석 줄다리기, 위도의 띠뱃놀이, 고창의 오거리 당산제, 전주의 난장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중 복원과 전승이 절실한데도 그 맥이 끊긴 쌍룡놀이와 기접놀이의 보존대책이 아쉬운 실정이다. ① 쌍룡놀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인 김제의 벽골제(사적111호)에서 연유된 독특한 우리의 민속에 ꡐ쌍룡놀이ꡑ(민속자료 10호)가 있다. 쌍룡놀이는 지난 75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담겨있고 참가자만 해도 1천여 명에 이르러 농경수리문화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벽골제는 ꡐ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ꡑ의 혼이 깃든 삼국시대의 유서 깊은 저수지로! 매년 농사철이 앞서 농민들이 이를 보수해 왔는데 이를 놀이로서 재현한 것이 쌍룡놀이다. 그래서 쌍룡놀이는 ꡐ벽골제 문화제전ꡑ의 주요 행사로 거행돼 왔는데 경비를 감당하지 못해 10년째 그 맥이 끊기고 있다. 쌍룡놀이는 벽골제를 수호하려는 백룡과 이를 무너뜨리려는 심술 사나운 청룡과의 싸움을 그리고 벽골제공사와 사랑을 위해 스스로 용의 제물이 되는 김제 태수의 딸 丹若아가씨의 넋을 기리고 있다. 쌍룡놀이는 모두 4장으로 구성돼 1장은 벽골제 축조공사, 2장은 쌍룡의 싸움, 3장은 丹若의 희생, 4장은 청룡 앞에서 혼절했다 깨어난 丹若와 백성들의 어우러진 춤판으로 엮어져 왔다. 김제군의 지역 문화인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이 쌍룡놀이를 발굴해 놀이의 준비와 전개과정, 대사 등을 엮은 책을 발간했으나 맥을 잇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ꡒ쌍룡놀이는 농사를 생명처럼 여기고 살아온 이 땅의 농민들이 저수지를 지키기 위한 의식을 잘 나타내주고 고대의 희생제 사상과 백성들의 소박한 사랑이 담겨있는 유서 깊은 민속인데 벽골제 문화제전 때는 행사의 백미인 쌍룡놀이는 빠진 채 단야 아가씨 선발 등 겉치레 행사에 그치고 있다ꡓ며 전승대책이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② 기(旗) 세배놀이 전북지방에서 성행했던 민속놀이 가운데 기 세배 놀이 역시 오늘에 되살려야 할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기 세배는 설날에 어른을 찾아 세배를 들 듯 각 마을의 농기들이 서로 만나서 세배를 하는 일종의 농경의례로서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한 농도 전북은 일찍부터 이 기 세배 놀이가 곳곳에서 베풀어졌다. 이중에서도 전주, 완주, 익산, 옥구, 김제 등지의 평야지대에서는 기접놀이, 농기뺏기, 용기놀이, 기전놀이 등으로 불리우며 기세배 놀이가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일제 말기에 이르러 대부분 사라지고 익산의 기세배 놀이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완주 봉동의 기세배는 1940년경까지 성대하게 이어져 왔으나 지금은 일부 마을에서 재현됐을 뿐 전승은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며 전주의 기접놀이 역시 56년경까지 계승됐으나 이제는 자취를 감추었다. 전주의 기접놀이는 평화, 삼천, 효자동 일대 12개 마을이 참가했다. 타지방의 기(旗)를 이용한 놀이는 정월에 이루어지지만 전주의 기접놀이는 칠월칠석부터 백중날까지 베풀어졌으며 매년 12개 마을 중 한 마을이 나머지를 초청해 삼천 변의 모래밭에서 1주일 동안 열렸던 대규모 행사로 전국 각지의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한다. 행사당일 주최측은 농악대를 앞세우고 마을을 순회하고 백사장에 모여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뒤 1년 농사를 위한 회의를 갖게 된다. 이후 농악 경연대회와 용기(龍旗)달리기 대회가 열렸는데 4명에서 15명까지의 선발된 장정들이 계주식으로 인근 모악산 중턱에 있는 노송까지 용기를 들고 달려오는 경기였다. 용기 달리기는 모든 주민이 기를 뒤따라 노송을 돌고 와야 한해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풍습 때문에 그 열기가 대단했다. 3번째 경연에는 농기가 등장, 농악에 맞춰 농기 펼치기, 높이들기, 내려깔기, 기 주고받기 등 온갖 묘기를 보이며 마지막에 상대의 깃털을 부러뜨리거나 깃봉을 부러뜨리는 기 부딪치기 놀이를 펼친다. 기 부딪치기 놀이로 마을의 순위가 결정되면 차례로 승리한 마을에 기 세배를 드리고 막판에 합굿놀이로 절정을 이룬다. 김제의 쌍룡놀이와 전주의 기접놀이는 우리 조상의 깊은 숨결이 스며있고 오늘에 되살려도 결코 손색이 없는 민속놀이로서 벽골제 문화제전이나 풍남제 행사 때 이들 민속놀이의 재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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