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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0 | [저널초점]
이제 우리의 것 제대로 지킬 수 있는 힘을 만들어야 한다.
이동엽/발행인 (2004-02-03 11:48:52)
수십 년 만에 처음이라는 지독한 무더위와 가뭄에 무척이나 시달렸던 지난여름이었다. 그 시련을 이겨내고 가을들녘은 올해도 풍년이다. 가을벌판을 바라보며 느끼는 결실의 풍요로움이 뿌듯함을 주지만 마음은 그리 밝지 만은 못하다. 봄부터 들떠있던 통일의 설레임으로 금년 추석에는 헤어져 살아온 이산가족의 만남이 어느 형태로든 이루어 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 결국 더 큰 아쉬움과 실망으로 남겨졌다. 내년 추석연휴에는 북으로 향하는 귀성행렬이 길게 이어지는 눈물겨운 장관을 TV에서 꼭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보는 것은 이 가을 우리 모두의 바람이리라. 그게 언제 때의 낡은 이야기인데 이제 또다시 들먹거리느냐고 의아해 할지 모르지만 ꡒ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으며,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 다 주지 못한다. 같은 민족이라는 원점에 서서 민족의 모든 문제를 풀에 가겠다.ꡓ는 대통령의 공언이 굳이 아니더라도 민족의 통일이라는 커다란 결실은 민족의 화합과 이해를 방해 하려는 소소한 그 어떤 집단의 명분이나 이익보다도 우선해야 할 절대적인 바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요즈음 또다시 미쳐 날뛰는 세력들의 명분과 그 명분으로 치장된 ꡐ애국ꡑ의 표정에서 수확을 앞둔 농작물을 깡그리 먹어치우는 중국의 메뚜기 떼를 연상케 되는 그런 불안감은 우리 소시민들의 소심한 기우이리라 믿어본다. 추석연휴 동안 오랜만에 만나는 가깝던 사람들과의 대화는 일부언론관 개혁방해세력에 대한 얘기, 그리고 지존 파 얘기가 온통 화젯거리가 되었다. 시대를 선도하고 잘못된 국민의식을 계몽해야 할 언론이라는 커다란 힘들이 거꾸로 자기들의 이해와 연결된 인기관리를 위해 이미 고물로 변해버린 냉전적 사고를 부추겨 광적인 극단주의자들의 입장을 강화해주는 무책임한 짓거리나, 개혁을 어떠한 형태로든지 방해하고 저지함으로 서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반개혁세력의 의도에 야합하여 조작해낸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그것은 그들 기득권 집단에 의해 더욱 팽배해버린 불신풍조의 만연과, 그들이 얻어내는 결코 작은 이익의 뒤에 엄청난 민족적 희생이 있다는 울분 섞인 이야기들이었고 사람을 토막 내면서 집단 살인을 자행하는 자들이 명분으로 내세울 만큼 철저히 썩어버린 물질만능주의의 정신적 황폐와 위화감의 문제였다. 모두들 자기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지만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하고 대안 없이 푸념 섞인 걱정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문민정부이기에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여 정말 믿을 수 있는 구심! 점으로 자리 잡고, 개혁의 성공으로 이성과 상식이 통하는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 질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바람이었을까?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강 건너 불 보듯 걱정만하고 있을 것인가? 알면서도 숨죽이고 소리 내지 못하는 식자들이 많아질수록 저들이 끼치는 독소적인 영향을 커질진대 우리의 작은 힘들이나마 굳게 뭉쳐 부단히 행동하며 올바른 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다시 한번 실종되어 버린 정부의 개혁의지를 비판하고 다시금 북돋아 줄 수 있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길을 잘못 든 언론과 반개혁세력의 실체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때인 것이다. 이렇듯 정신적으로 황폐하고 공동체적인 도덕률을 상실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그 시대를 규정짓는 문화의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문화는 그렇듯 한 시대의 반영인 동시에 그 시대를 넘어서서 공동체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지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힘들이 뭉쳐 큰일을 해 낼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정당한 권리와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참과 거짓을 구별 짓는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 타로부터 울안(우리)의 리(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만드는 울타리는 여러 개의 지주 목들을 연결해서 만들어지듯이 우리의 울타리는 자기가 활동하는 지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분야에서 서로가 가슴을 열고 서로의 손을 굳게 잡음으로서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시민 단체들의 연대나 지역과 나라의 발전을 걱정하는 사람들과의 합심을 각 지역 각 분야마다 커다란 울타리로 세워내고 이러한 울타리들이 커질수록 잘못된 언론과 못된 세력들이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낙후된 현실이나, 앞날을 걱정하는 영향력 있다는 인사들을 만나보면 참된 힘을 모으는 방법은 얘기하지 않고 하나 같이 우리지역의 힘없음을 한탄해 마지않는다. 또 상대를 모함하는 투서가 많고, 작은 이권에도 이전투구하며 심지어 본적을 옮기거나, 연고가 이 지역인 것을 가능한 한 숨기려 하는 개인이나 기업까지 있다고 하니 가히 한심한 일이다. 경제력이야 약세이지만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결코 타지방에 비해 뒤지지 않는 훌륭한 고향인데도 불구하고 제 자존심은 어디에 두고 배알마저 없는 소극적인 패배주의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해안 시대의 도래를 귀가 아프게 들었어도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서 가다듬어야 할 마음의 자세나 해동의 변화에는 아무런 대안의 제시도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여러 행사들에는 지원마저 옹색한 것이 지금 우리지역의 실정이다. 정치는 십년 대계요 교육은 백년의 대계이며 문화는 천년의 대계라고 했다. 정치보다는 교육과 문화에 대한 투자나 관심이 타 지역에 비해 많이 뒤떨어지는 것을 힘없는 탓으로만 돌려야 하는가? 한시대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공동체적인 질서가 무너져 내릴 때마다 문화는 그 시대를 가장 먼저 느끼고 그 시대정신을 가장 가까이서 표현해왔음을 우리는 묵도한다. 그러나 한 시대의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타락에 맞서 끝내 시대정신의 건강성을 회복해 왔던 기제도 역시 문화임을 우리는 다시 확인하고 그를 마음에 새긴다. 하나의 안목은 다른 안목에도 통한다고 말했다. 이 시대의 문화가 한 시대를 감싸는 울타리로 세워질 때 문화는 비로소 한 시대를 알리는 거침없는 힘으로 서게 될 것이다. 혹독한 무더위에도 어느덧 가을이 우리 곁에 왔고 벌써 한해를 마무리하는 기획들이 곳곳에서 한창이다. 어지러운 시대에 문화가 가져야 할 몫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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