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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0 | [문화저널]
제대로 돈 탁아정책을 위하여
글/이혜숙 한일신학교 강사 (2004-02-03 11:43:37)
탁아, 그 의식의 전환 부모, 특히 엄마가 아기를 키우지 않고 그것도 할머니나 친척이 아닌 탁아소란 곳에서 자식을 맡긴다는 그 자체에 대한 심한 알레르기는 좀 사라진 듯 하다. 탁아 시설을 국민복지적 차원의 편의 시설로 인식하는 정도도 높아졌고 이처럼 시설을 통한 아동 양육이 작정한 수준에서 서비스가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공동육아형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제법 지지를 얻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극복해야 할 산들은 남아 있다. 우선 제도적으로 미흡한 지운 행정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비영리 민간단체에 속한 탕아시설에 대한 계속되는 지원의 비켜가기는 탁아시설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극대화 시켜가고 있다. 이 결과는 우선 시설에 대한 부분은 미루고라도 이곳에서 양육되는 아동들이 q다는 피해를 생가하면 아주 심각한 일이다. 탁아란 원래 가난한 가정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서비스 제도이고 또 탁아의 효과가 가장 높은 곳도 이곳에서이다. 탁아를 경험한 아동들이 보여주는 발달상의 도움뿐 아니라 낮은 청소년 범죄와 일탈의 증거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 효과는 양질의 조건하에서이다. 탁아소 아이들: 아빠도 생일인디! 두해 전 일이다. 달리 특별한 옥외 놀이시설을 갖추지 못한 우리는 우리가 세든 건물이 갖고 있는 정말 다행인 마당의 잔디밭에서 방아깨비며 메뚜기를 잡으며 뛰어 노는 것을 그나마 낙으로 삼았었다. 그날도 역시 차를 기다리며 잔디밭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날의 놀이 주제는 아마 ꡒ토끼풀 꽃따기ꡓ였던가 보다. 한 여자아이가 한 웅쿰의 꽃을 따서 꽃다발을 만들고 영학이란 남자 아이는 어렵게 두 송이 정도의 꽃을 구했다. 그런데 개구쟁이 춘구 중 한 녀석이 그것을 빼앗아 내동댕이쳐 버렸다. 왈칵 그리고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영학이와 선생님의 다정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교사: ꡒ영학아! 그 꽃 뭐할 건데?ꡓ 영학: ꡒ응, 오늘 엄마 생일이야. 그래서 엄마 드릴 건데ꡓ 교사: ꡒ그래, 그렇구나. 그럼 자연이보고 하나만 달라고 해ꡓ 그래서 영학이는 겨우 꽃 한 송이를 어렵게 얻을 수 있었다. 그 꽃을 꼭 쥔 영학이의 그 다음 혼자 말은 ꡒ아빠도 생일인디!ꡓ 였다.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가을 날 아침에는 한음이가 ꡒ선생님! 하늘 떨어졌어요!ꡓ라고 소리치고, 여름 장마철날 번개와 천둥이 우르릉거리면 아이들은 신나게 손뼉을 치고, 논다. 겨울 아침 빙판을 달리던 봉고차가 빙그르하고 180도를 회전해버려 심장이 얼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ꡒ야! 참 재미있다. 그치?ꡓ라고 능청스런 여유를 보여 어른들을 웃겨버리곤 한다. 그러나 이렇게 예쁜 아이들에도 슬픈! 사연들이 있다. 생후 3년이 다 안돼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해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라는 다솔이는 늘 힘이 빠져있고 슬픈 기색으로 먹는 일에도 관심이 없이 가끔 ꡒ나도 엄마 있어, 돈 벌러 갔데!ꡓ라고 말하며 말만 안하지 느낌과 생각으로 다 아는 비밀을 들러 부치곤 한다. 비슷하나 또래의 또 다른 엄마 없는 햇빛이는 새 엄마가 생겨 원기가 더욱 왕성해지더니 그 새 엄마가 되돌아가 버리고 나서 눈에 띠게 의기소침해 있다. 재잘거리며 놀다 제 친구 수영이에게 하는 말 ꡒ야!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ꡓ. 그 외에도 5년이란 긴 탁아소 생활 이후 국민학생이 된 아이들의 방과후의 일과, 술과 실업으로 가난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 공해와 위험으로 찌든 환경들이 우리 아이들을 지치게 한다. 좋은 탁아소는? ꡒ어디어디에 가면 유치원이 동화나라 성처럼 생겼데!ꡓ ꡒ도 어느 유치원은 장난감과 교구가 모두 외제래!ꡓ ꡒ우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애들한테 모두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수영 강습도 하고, 영어까지 가르친단다!ꡓ 참 굉장한 수준이다. 외국산 교구와 장난감으로 손가락 놀이를 해야 두뇌가 컴퓨터처럼 정교해지는지, 아직 피아노 건반을 누르기에도 부족한 손가락의 소근육 발달 정도로 바이올린의 현을 짚도록 해야 할 만큼 우린 왜 그토록 조급하기만 할까? 잘하는 아이 하나를 영재로 키우기 보다는 기회를 놓쳐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는 아이를 잘 돌보아 정상의 삶을 가도록 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나을 교육일 것이다. 아직도 탁아를 보호의 수준에서만 생각하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탁아 서비스가 보호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가정의 기능을 최대한 유지해야 하고 손상 받지 않도록 교육을 포함하는 그 이상의 돌봄이 요청된다. 그러면 좋은 탁아소의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 탁아에 대한 물리적 환경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어야만 아동을 바르게 양육할 수 있고 아동은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이 따라야 한다. 아동 1인당 면적이 최소한 1평은 넘어야 하고, 교사가 돌보는 아동이 3세 이상의 경우에도 15명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 그 외에도 적정한 시설이 갖춰 있어 식사, 수면, 휴식, 청결에 대한 배려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좋은 탁아소, 일류급 한두 개가 아니라 많은 대다수의 탁아소들이 이런 기본적인 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물리적 환경보다 더 중요한 사회적 환경이다. 그것은 그 시설의 운영 가치를 포함하는 것이며, 아동에 대한 교사의 태도와 신념을 반영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탁아를 바라보는 부모의 시각도 포함되며, 부모들의 생활 만족도도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서는 탁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까지도 영향력을 갖는다. 지면의 한계상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다. 우선은 시설이 영리성을 배제해야 하고 탁아자는 긍정적이고 여유가 있어 아이에게 말대꾸도 잘해주고 오랜 기간 동인 이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 또한 시설을 이용해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최소한 죄책감을 벗어나 있어야 하고 자기 일을 갖는 것에 갈등이 적어야 한다. 사회 또한 그릇된 편견과 이기심을 벗어나야 한다. 제대로 된 탁아를 위하여 아직 우리 사회의 탁아 형편을 매우 좋지 않다. 특히 70-80년대 이래 가난한 지역과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민간 탁아 시설에 대한 정책을 계속되는 비껴가기와 그림의 떡이란 잔칫상이었다. 물론 이 민간 시설이 아닌 다른 국공립 시설에서 필요한 모든 아동을 수용할 수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겠다. 그러나 모든 시설에서 10%정도의 아이만을 보육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더욱 가난한 계층은 아직도 민간 시설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사회복지 사업의 기본 전제가 특권층이 아닌 소외 계층을 위한 정부의 특혜임을 생각할 때 지금의 정책은 개선되어야 한다. 예산의 확보와 시설 확보 못지않게 그것을 분배하고 재배치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것이다. 한 아이가 자기 삶을 처음 시작할 때 첫 단계인 유아기에서부터 빈부의 격차를 경험시키고 물질에 의해 삶의 획을 긋는 아픔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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