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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0 | [문화비평]
언론은 왜 공안정국을 원하는가 ꡐ공안정국ꡑ의 사회심리학
글/강준만 전북대 교수 신문방송학과 (2004-02-03 11:18:22)
많은 사람들이 언론이 이른바 &#43088;공안정국&#43089;을 주도해 왔다고 말한다. 왜? 어떻게? 이 물음에 답하는 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여론 형성 구조와 여론의 사회적 위상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43088;공안정국&#43089;이란 표현은 우리의 법질서가 대단히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의 지식인들이 &#43088;홀로서기&#43089;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시사한다. 서울대 이연우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43088;신바람&#43089;근성을 제법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그 어떤 바람에 휩쓸리기를 좋아한다는 걸 의미한다. 무슨 선거에 출마할 것도 아닌데, &#43088;우리 국민의 위대한 민주역량&#43089; 운운하는 정치인들의 상투적 표현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공정하게 이야기해서 우리 국민은 바람에 약하다. 예컨대, 책의 텔레비전 광고가 우리나라처럼 성행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엇이 유명하다 하면 우우 몰려다니기를 좋아한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다. 영화도 뭐가 잘됐다 하면 관객이 우우 몰려다닌다. 무슨 음식점이 유명하다 하면 거기에도 우우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다. 자학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분명 그런 특성이 있다. 그것이 민족성인지 아니면 사회적 구조와 제도의 부산물인지 그건 확실치 않다. 다만 분명한건 대통령에서부터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공직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사회적 분위기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43088;공안정국&#43089;이란 모든 국민이 국가안보에 대해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모든 국민이 생각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어느 정도의 국민이 정말로 국가안보에 대해 걱정을 하는지 그건 알 길이 없다. 다만 남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에 쉽게 편승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집단주의 의식이 강한데, 그 특성이 여기에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43088;공안정국&#43089;이 아닌 상황에선 &#43088;훈방&#43089; 정도로 풀려날 수 있는 범법자가 &#43088;공안정국&#43089; 하에선 몇 년 징역을 살 수도 있다. &#43088;공안정국&#43089;이 아닌 상황에선 그저 래디컬한 학문적 입장이라고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책이 &#43088;공안정국&#43089; 하에선 갑자기 이적 출판물이 돼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 수 있다. 요컨대, &#43088;공안정국&#43089;은 마법의 지팡이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 비이성적이고 병리적인 사회적 상황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견제 세력은 지식인 그룹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언로(言路)엔 지식인 그룹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언론에 종속돼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 사회에서 말깨나 하고 글깨나 쓰는 사람들은 모두 언론매체를 통해 등단을 하기 때문에 언론매체의 취향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한 자신의 의견을 말할 통로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현재의 &#43088;공안정국&#43089;을 부추긴 주범 중에 오히려 일부 지식인들이 가세하고 있음은 바로 그런 상황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 언론은 왜 공안정국을 원하는가? 여기서 언론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조선일보>처럼 극우적인 이념을 갖고 있으면서 장삿속도 차리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그저 장삿속에 눈이 어두워 어떤 기류에 무임승차하기를 좋아하는 언론이 있다. 이 후자의 언론은 전자의 언론의 뒤를 쫓아가게 되어 있다. 왜? 한극의 언론시장엔 &#43088;이념의 그레샴 법칙&#43089;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적 이념과 극좌적 이념은 시장에서 결코 동등한 무게를 갖지 않는다. 주사파를 극좌로 본다고 할 경우, 그게 과연 &#43088;사상의 자유시장&#43089;에서 시장성을 가질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반면<조선일보>식의 극우적 이념은 높은 시장성을 자랑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극우적 이념은 개인의 이기주의를 잘 착취한다고 하는 점에서 높은 시장성을 자랑해 왔다. 나치 치하의 독일인이 강요에 의해 나치를 지지했던 게 아니다. 레이건 행정부의 그라나다 침공과 부시행정부의 걸프전쟁은 미국인의 절대적 지지하에 이루어졌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중의 공포감과 이기심을 자극하는 극우는 중도적 입장과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적 입장마저도 핑크빛으로 물들여 시장에서 축출하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지금 <조선일보>가 하는 짓이 바로 그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특명을 받고 &#43088;신문혁명&#43089;을 선언하면서 <조선일보> 를 따라 잡겠다고 나선 <중앙일보>가 <조선일보>를 흉내 내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 자신과 그들이 지지하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돈도 버니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좌파가 자유민주주의를 혐오하는 건 그 다원주의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사상과 발언에 똑 같은 무게를 인정해주는 다원주의 체제하에선 좌파의 이상은 실현되기 어렵다. 그래서 좌파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적대적이다. 그런데 기절 초풍할 일은 &#43088;공안정국&#43089;이 회오리치는 지금 우리 사회의 어느 구석에 자유민주주의가 존재하느냐 이 말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입에 게거품을 품으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떠들어대는 <조선일보>는 지금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아 죽이는 데에 광분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이 말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으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일국의 국회의원이 김일성 사망과 관련, 조문단 파견을 거론했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다음 선거에서 그런 국회의 운들을 떨어뜨려야 된다고 주장을 하는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가 아니더냐. 그게 무슨 자유민주주의란 말인가?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이 공안정국 조성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개혁의 중단이다. 김영삼 정부가 집권 초기에 개혁의 칼날을 휘둘렀으니 어쨌느니 하지만 정부의 공안정국은 김영삼 정권 출범 전보다 우리 사회를 더 후퇴시키고 있다. 언론은 조작된 여론을 김영삼 정부에게 들이밀며 여론을 따르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개혁이니 뭐니 까불지 말고 국가안보나 잘 지키라는 것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빈부격차를 해소하느니 어쩌느니 떠들지 말고 주사파나 척결하라는 것이다. 언론이 주사파의 존재를 터무니없이 부풀리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정말 주사파를 척결하고자 한다면, 그 개념 정의를 엄격히 해야 가호가게 응징하더라도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터인데, 언론이 하는 짓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사회운동 경력만 있으면 무조건 주사파로 몰리는 판국이다. 주사파를 잡아낼 생각은 않고 주사파가 엄청나게 많다는 분위기만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어느 대학 총장은 언론의 그런 음모도 모른 채 자신이 잘나서 대서특필해 주는 줄 알고 계속 횡설수설하면서 언론 장단에 놀아나고 있느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기 대학 교수들이 자기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기 않는다고 어느 교수에게 폭언마저 불사하였다니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우리의 지성을 이리도 천박하단 말인가! 언론, 이대론 안 된다. 정말 안 된다. 제발 부탁한다. 돈은 얼마든지 벌어도 좋으니 자본주의 윤리라도 지켜다오.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데에 앞장서도 좋으니 제발 추잡한 수법은 쓰지 말아 달라. 논리로 이야기하자. 누군가의 등에 칼을 꽂는 그런 수법은 쓰지 말자. 우리 국민의 우우 몰려다니는 습성은 우리의 불행한 역사적 산물일 터이다. 언론이 그걸 바로 잡고자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악용하겠다니 그건 나쁘다. 정말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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