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9 | [문화와사람]
명창 이 일 주 (6)
치열한 소리에 매달려온 고집스러움
최동현․군산대교수․판소리 연구가
(2004-02-03 11:11:03)
이일주의 소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리의ꡐ서슬ꡑ이다. 소리에는 서슬이 있어야 한다고도 하고, 특히 여자 소리에는 서슬이 있어야 들을 만하다고 한다. 서슬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①칼날 따위의 날카로운 부분 ②날카로운 기세라고 풀이되어 있다. 여기서 일단 소리의 서슬이란ꡐ소리의 날카로운 기세ꡑ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설명해가지고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소리는 청각적 대상인데 설명은 촉각적인 용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리의 서슬이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우선 서슬이 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소리의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실마리를 찾아보자. 소리의 서슬을 말할 때 흔히 드는 사람은 박초월이다. 박초월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김정문과 송만갑에게 소리 공부를 하여 대성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정통 동편 소리로 일컬어지는 소리를 전승했다. 동편소리 중에서도 송만갑, 김정문으로 이어진 소리는 다른 동편소리, 예컨대 유성준 계통의 소리나 박봉래, 박봉술로 이어진 소리에 비해 타고난 천부적인 성대를 자랑하는 소리였다. 당연히 이들은 통성으로 내는 고음이 장기였다.
통성이란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이다. 아랫배에서부터 힘을 주어 힘차게 질러내는 소리이다. 그러므로 통성에는 강력한 힘이 실리게 된다. 또 통성으로는 성대가 좋지 못하면 고음을 낼 수가 없다. 우리는 흔히 성대가 좋다고 하면 맑고 고운 목소리를 생각하는데, 송만갑이나 김정문은 거친 수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고음의 통성을 구사할 수 있었다. 거칠면서도 높고 힘찬 소리가 바로 이들의 소리였던 것이다. 거칠면서도 높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소리가 그야말로 무쇠처럼 단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소리를 가리켜 철성(鐵聲)이라고 한다. 이러한 소리를 통하여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서슬이다.
이렇게 단단하고, 힘차고, 높고, 거친 소리로 된 철성으로 소리를 하는 것은 그들의 치열한 예술정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적당히 가성이나 교묘한 기교로 넘기지 않고, 정색을 하고 전력을 다하는 치열한 의식의 소산인 것이다. 정통 동편제 소리가 장단의 기교를 부리지 않는 대머리 대장단을 주로 사용한다든가, 특별한 다루(판소리에서 소리를 꺾고 떠는 기교)를 구사하는 것을 피하고, 소리를 쭉쭉 뻗어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
박초월은 이러한 치열한 소리를 배워 불렀는데, 박초월의 목 또한 여자철성이라고 할만한 목소리였다. 높고, 단단하고, 거친 목소리로 당대 제일이라는 평을 들었다. 박초월의 목은 자신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김소희에 비할 때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김소희 또한 196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여창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그의 소리는 곱고 부드럽다. 그래서 박초월의 소리처럼 사생결단하고 덤비는 치열한 맛은 아무래도 떨어진다. 대신에 우아하고 깊은 느낌을 준다.
이일주는 바로 이 치열한 박초월의 창법을 구사한다. 이일주가 박초월의 소리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앞에서의 언급은 이 점에도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거기에다가 이일주의 목소리는 곱기만 한 요즈음의 다른 여창들보다는 거친 면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이일주의 소리에는 서슬이 담기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일주의 이러한 창법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요새처럼 편한 것을 좋아하는 세상에는 더구나 치열한 소리가 부담스러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교 위주로 편하게만 소리를 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판소리는 역시 전력을 다하는 치열한 맛이 있어야만 한다.
서슬이 담긴 소리는 그 치열성 때문에 절망적 상황과는 대결이 두드러지는 부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서슬이 자칫하면 패배주의적인 탄식조로 흐를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소리를 건져내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서슬로 유명한 박초월이「춘향가」의 춘향모와 어사 상봉 대목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일주가「춘향가」의 이별 대목이나 옥중가를 장기로 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일주는 어찌 보면 우직할 정도로 치열한 소리를 고집해 왔다. 그리고 너름새나 아니리보다도 주로 소리 그 자체에 치중하는 태도를 지켜왔다. 판소리의 소리 그 자체에 대한 감수성이 아무래도 예전만 못한 현대 판소리의 청중들은 이일주와 같은 소리 위주의 소리나 치열한 소리보다는 너름새와 아니리가 세련된 소리, 곱고 부드러운 소리에 더 끌리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태도를 끝내 고수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당한 정도의 불리를 감수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돈과 명예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결단이 필요하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일주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리를 지키고 가꾸어 왔다. 어찌 이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이일주의 소리는 갈수록 진가를 더 발휘하고 있다. 제자가 되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녀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여러 명창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고 있다. 이일주 제자들 중에서 전주 대사습을 위시한 각종 명창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사람만 해도 네 명에 이르는 것을 보면, 이일주 소리의 위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일주는ꡐ이제 나이가 드니 자꾸만 서슬이 사라져 간다ꡑ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는 게 소리의 세계이다. 서슬은 약해져도, 그 대신 깊어가는 연륜과 함께 더욱 그윽해질 소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