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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9 | [서평]
소설로 꿈꾸는 역사의 반전(反轉) 『영원한 제국』(이인화, 도서출판 세계사,1993)
글/이재규 자유기고가 (2004-02-03 11:02:00)
많은 이들이 소설을 &#43088;단숨에 읽었다&#43089;고 고백한다. 그런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 소설은 긴박한 호흡으로 꽉 짜여진 구성과 독특한 내용으로 독자에게 지적 흥미와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작가의 안내를 따라 조선 정조 24년(1800년)의 초겨울, 궁중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조선왕조의 한복판에 뛰어들게 된 독자들은 거기에서 이제까지의 역사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벌거벗은 욕망과 암투의 현장으로만 묘사되던 조선 왕조의 궁중생활 대신 국가운영의 방법을 놓고 일대 사상전을 전개하는 당대 지식인들의 면모가 뚜렷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물론 그 현란한 &#43088;말(言)의 대결 밑바닥에는 권력의 향방에 다라 생사여부의 명운이 엇갈리는 지배계급 내부의 격렬한 권력투쟁이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이들 지배세력 내부의 권력투쟁을 그려내면서 당대 조선 사회의 사상적 지도를 펼쳐 보이는데 19세기 초에 접어든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43088;정통&#43089;주자학과 유교사상, 실학, 새로 밀려들어오는 서학 등이 그 지도위에 나타난다. 조선 영 정조 치세의 18세기 말엽은 수백 년간 조선을 지배해온 주자학의 위세가 떨어져 가면서 실학이 개화하기 시작하는 전환기의 시대였다. 조선 왕조는 1600년대 명종-선조조에 이르러 사림세력이 동인과 서인으로, 다시 남인, 북인, 노론, 소론의 4색으로 갈라져 격렬한 당쟁을 겪었다. 당쟁의 쟁점은 왕가의 법도에 대한 예송 논쟁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그 실질적 내용은 명분론을 앞세운 정치권력의 배분방식에 관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왕을 정치권력의 최종적 대표자로 내세우고는 있었지만 사실상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던 이들 세력들 중 수많은 논쟁과 비방, 모함, 궁중사의 조작을 통해 그 주도세력으로 노론이 떠오른다. 탕평책 등 노론에 대한 견제수단을 찾는데 골몰했던 영조는 끝내 신권을 제압하지 못했고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의 형식으로 왕권을 행사한 사도세자가 노론을 적극 견제하고 나서자 노론세력은 조작을 통해 사도세자를 미치광이로 몰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것이 그 유명한 &#43088;왕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43089; 임오화변(1762년)이다. 부자간의 비정함으로만 비쳐질 수 있는 이 사건의 내막에는 앞서의 숙종조와 마찬가지로 권력핵심 내부의 격렬한 대립이 있었다. 봉건 말기의 사회 경제적 모순을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으로써 &#43088;해걸&#43089;하려던 왕정의 일련의 정책을 대토지를 사유하면서 왕권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해있던 사림세력으로부터 견제와 대결의 대상이 도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즉위 후 환척을 배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규장각을 설집(승정원에다 예문관, 사간원의 기능까지-지금으로 말하면 감사원에다 비서실을 겸한 형태)하고 노론이 장악하고 있는 금군을 배제하고 친위부대 장용영을 조직하고 궁궐 방위를 위해 수원성을 쌓았다. 바로 이 같은 시대배경 아래에서 외척과 사림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여 개혁을 추구하려던 정조가 노론에 대한 일대 숙청의 명분으로 삼으려던 것이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을 비탄하여 지은 시<금등지사>였고 이것을 적은 책자를 손에 넣는 문제를 놓고 노론과 남인, 왕 사이에 하룻밤사이에 벌어지는 긴박한 행동들이 『영원한 제국』의 내용을 이룬다. 작가 이인화는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초입에 해당하는 이 시대를 다루면서 살벌하게만 느껴지는 권력투쟁에 철학논쟁의 색채를 덧칠함으로써 궁중암투 정도로만 비춰지던 조선 왕조 년간의 &#43088;피의 세월&#43089;데 상당한 격(格)을 부여해주고 있는데 현실 정치에서 왕과 노론의 권력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철학의 측면에서는 노론의 사종(師宗)인 율곡 이이에 의해 체계화된 붕당(朋黨)정치사상(사대부들이 서로의 정치적 견해에 다라 당을 나누고, 그 갈라진 붕당이 상호견제와 타협을 통해 왕도의 이상을 실천해간다는 정치이념으로 왕과 신하의 수직적 관계를 부인한다.)과 퇴계 이황에 의해 체계화되고 이후 남인의 지도이념으로 된 이기이원론-정치철학에서의 왕권중심주의간의 대립이었음을 드러낸다. 『영원한 제국』을 통해 이인화는 이 역사적 전환기를 어떤 경로로 통과했어야 우리 역사의 반전이 가능했을까를 묻는다. 작가는 소설 군데군데의 발언을 통해 정조의 의도대로 발호하는 신권을 누르고 절대왕정을 수립하여 일대 개혁조치를 취했어야 이후 역사의 흐름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역사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정조는 노론 벽파의 견제를 받아 자신의 구상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떴고(정조의 죽음에 대해서도 세간에서는 오랫동안 독살설이 떠돌았다)왕가의 인척이 전권을 쥐고 국가운영을 농단하는 세도정치가 등장하여 전체 민중의 삶을 도탄의 지경에 빠뜨리게 되었다. 작가는 여기에서 홍재유신, 즉 정조의 절대왕정을 수립하지 못해서 망한 것이라는 관점을 내세운다. 정조의 유신이 실패함으로써 우리 민족사는 160년이나 후퇴했고 대신 너무 늦게 조야하고 참혹한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등장함으로써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뤘다는 것이다. 전환기의 초입에서 개혁의 실현에 실패한 조선은 이후 왕조의 말엽에 이르러 농민군과 개화파, 수구파간의 역학관계에서 다시 한번 개혁의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농민군과 개화파의 반목, 외세의 개입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우리 역사의 어느 대목에서 반전이 가능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 근대역사를 진지하게 보려는 사람에게는 꽤 무게 있게 다가오는 질문이 아닐 수 없는데 이를 반영이라도 한 듯 최근 &#43088;대체역사&#43089;소설류들이 시류를 타고 등장하여 주목을 끈 적도 있었으나 『영원한 제국』에서처럼 철학적 기반과 현실적 맥락에서 제기되지는 못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역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해보려는 독자에게 상당히 유용한 텍스트이다. 아직 서른을 넘지 않은 젊은 작가의 필력으로 보기엔 놀랄 정도로 조선 왕조의 궁궐생활과 검시제도 등에 대한 성실한 재현과 조선조를 이끈 사상적 기반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그림에 대한 해석들도 돋보이는 점이다. 아쉬운 점은 전체 소설의 진행이 왕권과 신권의 대립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전체 조선의 사회상 속에서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 갖는 의미를 객관화시켜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정치이념이든 간에 나름의 명분과 철학적 세련미를 갖추었다 할지라도 그 객관적 본질과 역할은 숨길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지배계급 안에서 진행된 당파 싸움의 본질은 한정된 국가 자원 안에서 토지와 노비를 빼앗기 위하나 싸움에 다름 아니었다. [영원한 제국]에서 당시 조선 지배계층의 정치이념에 부여하고 있는 격은 뭔가 한 축이 결여된 감을 준다. 기존 유교이념간의 대립뿐만 아니라 상업자본이 형성되고 농촌에서의 계급분화가 활발해지는 등 새로운 물적 조건 아래에서 발생하는 사상기반에 대한 형상화가 매우 부족하는데에서도 느껴지듯 아래가 없는 위만의 현란한 말의 잔치를 보는 느낌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비슷한 연대를 다룬 황석영의 『장길산』의 경우, 민중생활이 생생하게 묘사되는 가운데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호흡 그대로를 느낄 수 있으며 그 안에서 당대를 풍미한 사상조류가 자연스레 녹아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이러한 아쉬움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작가의 연륜까지를 고려한다면 『영원한 제국』을 통해 보여준 작가의 문학적 역량에 많은 기대를 걸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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