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8 | [특집]
청와대의 노동문제 무지가 철도파업 불러 일으켰다
- 노동 -
신명식 주간『내일신문』차장
(2004-02-03 10:43:01)
94년 임투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올해 상반기 임투를 평가할 때 두 가지의 상징적인 사건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는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구미공단에 소재한 코오롱의 임투결과다. 코오롱의 이동찬 회장은 경총 회장 자격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노총과 함께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었다. 이런 경총 회장 회사에서 지난 7월 7일부터 8일까지 전면파업이 일어났다.
파업 이틀 만에 코오롱 노사는 기본급 11.2% 인상, 통임금 기준 22% 인상과 감원때 노조와 합의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정부와 경총이 그토록 고수하려 했던 노․경총 사회적 합의선이 깨진 것은 물론이며 신성불가침의 권리라고 주장했던 이른바 경영․인사권을 노조에 허용한 것이다. 물론 무분규 원년도라는 점 때문에 협상타결 이후 회사 측은 이 같은 내용이 외부로 흘러 나가는 것을 극히 우려하고 있다.
올해 임투에서 정부와 경총이 그토록 고수하려 했던 3대축이 경총회장 회사에서 일거에 무너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삼성 대우 금성 코오롱 등 재벌 산하 대기업이 밀집돼 있는 구미공단에서 대기업이 파업에 들어간 것은 88년 이후 최초의 일이다.
경총회장사에서의 전면파업
두 번째 사건은 사상최초의 철도․지하철 동시파업이다. 6월 23일 새벽 경찰이 전국 각지에서 전국기관차협의회(전기협은 전국의 철도기관사와 검수원 7천여 명으로 구성된 청도노조내의 임의단체다. 그러나 철도노조내 20개 기관자치부 지부장 전원이 전기협에 참여하고 있어 기관사와 검수원ㅇ 관해서는 대표성을 확실히 확보하고 있다)소속 철도노동자 6백여 명을 강제연행하며 시작된 전기협․서울지하철․부산지하철노조소속 2만 궤도노동자의 투쟁은 김영삼 정부의 노동정책 부재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6월 27일까지 문제해결이 안될 경우 궤도노동자의 총파업이 예고된 상태에서 청와대는 평화적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이번 기회에 만성적인 노사문제를 뿌리 뽑겠다”는 위험한 발상을 했다.
사실상 파업을 유도한 철도청과 철도노조도 강경론을 펼쳤다. 96년 1월 공사화를 앞두고 있는 철도청이나 내년 3월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철도노조 입장에서는 전기협이 눈엣가시와 같았다. 지난 6월 21일 철도청이 철도노조와의 협의를 거쳐 발표한 철도현업직원 처우개선 대책이라는 것을 보면 거창하게 포장을 했지만 알맹이는 전기협 소속 조합원과 그 밖에 직종의 조합원을 분리하는 내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처우개선대책이 발표되자마자 전기협의 두 축인 기관사와 검수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6월 23일 새벽 마지막 협상을 기대하고 있던 전기협 농성장에 경찰을 투입한 검찰은 “전노대와의 연대추쟁을 막기 위해 조기진압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비교적 조직력이 약할 것으로 본 전기협에 대해 초기에 강력히 대처한다면 지하철 노조 나아가 전노대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고 본 것이다.
철도노동자 분열시키며 파업유도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경찰력 투입, 사전영장 발부, 시한부 복귀명령, 파면 등의 초강경수를 연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정부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경찰의 정면 돌파에 이들은 치고 빠지는 작전으로 농성장을 수시로 옮겨 다니며 일주일동안 파업대열을 유지했다.
초조해진 경찰은 26일 오후 기독교 회관에 들어가 농성중인 전국기관차협의회 소속 노동자 2백여 명을 연행했다. 심지어 검찰 공안부장은 “지하철 노조원들이 농성중인 명동성당에도 경찰투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큰 소리쳤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관계자는 “기독교회관 심지어 인권위원회 사무실에 경찰이 들어온 일은 유신이나 5공 때도 없었다”며 “교권유린 차원에서 정부에 강력 항의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목사들의 항의단식농성장을 찾은 최형우 내무장광은 무려 여섯 번이나 90도 각도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기독교회관에서 밀려난 철도노동자들은 지난 7월 4일부터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조계종은 일단 절에 들어온 손님을 내쫓는 법은 없다며 농성자들을 받아들였다. 권승(權僧)서의현을 축출하고 개혁회의를 출범시킨 불교계는 이제 고난 받는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변화하고 있다.
최형우 장관 여섯 번 허리 굽혀
7월18일 현재 현대중공업과 기아자동차 등 몇 개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제조업의 임금교섭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7월 16일 현재 1백인 이상 제조업 사업장 2천8백64개소 가운데 2천3백7개소가 타결돼 80.6%의 진도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진도율은 작년 동기의 76.6%에 비해 1주일가량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타결된 사업장의 평균협약인상율은 6.5%로 작년 동기 4.8%나 작년평균 5.2%보다 월등히 높다. 작년의 경우 실제 인상율이 15%가 넘었음을 생각할 때 올해 실제인상율은 최소한 2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계열별로는 현대그룹이 31개사 중 19개사가 타결됐고 대우그룹은 22개사 중 11개사가 타결됐다. 이밖에 효성, 동부, 고합그룹은 교섭을 마친 회사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노동부의 발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기업 자체가 외부의 눈을 위식해 노․경총합의선에 인상율을 맞추는 척하며 실제로는 20%인상의 고율인상을 다양한 형태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의 고율인상에 따른 기업의 추가부담은 하청단가 인하라는 방법으로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또한 지하철 공사등 공기업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만을 요구하게 된다. 기업별체계로 짜여 있는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년에 비해 인상율 월등히 높아져
철도와 지하철 파업 및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의 연대투쟁으로 인해 수배중인 전노대 권영길(54) 공동대표는 “평화적 타결가능성이 높은 시점에서 철도에 경찰력이 투입된 것은 수구보수세력을 중심으로 한 정부 내 강경파들이 신공안정국을 획책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권대표는 김영삼 대통령이 수구세력에 밀려 개혁에 제동이 걸리고 정치우위시각에서 경제우위시각으로 돌아 섰다고 보고 있다. 또한 김대통령이 국제 및 국내 상황에 대한 분석과 판단능력 부족으로 인해 완전히 재벌위주의 재벌정권이 확립됐다고 보고 있다.
필자는 판단능력의 부족만이 아니라 청와대가 노동문제에 너무 무지하다고 지적하고 싶다. 철도와 지하철 사태를 둘러싸고 확인된 청와대의 노사문제에 대한 무지는 결국 하루 5백80만 수도권 교통인구의 발목을 잡아 놓았고, 물류수송에 심각한 지장을 가져왔다. 심지어 김영삼 정부가 과연 국가위기관리능력이 있는지 의문마저 던져 주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노사문제의 미묘함을 이해하지 못한 채 ‘법대로’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전기협의 요구사항도 “근로기준법대로 하자”는 것임을 간과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2월21일 금성사 평택공장을 방문한 뒤 노동자들과 점심을 함께 하며 “선진국에는 이제 노사분규가 없다”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과격분규는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이 무색하게 영국철도는 지난 21일 11%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일주일 예정의 파업에 들어갔고 프랑스 철도는 인원감축에 반대해 6월21일부터 23일까지 34시간동안 시한부 파업을 벌였다. 이 같은 대통령의 지시를 확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참모들은 박재윤 경재수석과 이원종 정무수석이다. 내각에서는 최형우 내무장관이 강경대응에 앞장서고 있다. 이처럼 노동문제의 특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공안논리와 경제논리로 노사문제를 재단하는 과정에서 연일 강공책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노동문제 모르는 사람들의 전횡
협 서선원 의장은 “우리는 임금인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면 누구나 누리는 주휴일을 보장해 달라고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모든 언론이 “150만원을 받는 철도기관사들이 이기주의에 빠져 파업을 하고 있다”고 비난에 열을 올렸다. 한달에 10일 남짓 집에 들어갈 뿐 나머지를 시골여인숙 같은 합숙소에서 고단한 잠을 자고 하루 한 끼는 달리는 열차 안에서 선채로 때워야 하는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그 결과 올해 언론사들은 그들이 그토록 몰지각한 이기주의라고 매도했던 두 자리 수 인상 심지어 신문사 최고수준 인상을 보장받았다. 노동자의 생존을 외면한 대가라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노동자 생존권 외면 대가로 최고수준 보장
한편 이 같은 정부와 언론의 협공에 대처하는 노동조합운동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동운동은 나라와 사회문제까지 폭넓게 이해하는 속에서 정치적 관점을 명확히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사회구성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대의명분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근로조건을 개선하는데 치우치며 미래의 전망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조합주의적 운동이나 소수의 선도투쟁으로 일관하는 급진주의적 운동으로는 더 이상 현장노동자의 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