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8 | [서평]
일상적인 삶의 틀에서 빠져나온 한 여자와의 만남
『그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인휘 소설가
(2004-02-03 10:33:07)
여성이건 남성이건 모두가 인간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실이다. 그 엄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지난한 인간의 역사를 본다. 그 역사는 모든 신화가 그렇듯 여성 수난의 역사가 인간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월은 참 많이 변했다. 요즘은 남성이 수난 받는 역사라고 사람들은 우스개 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가정에서 조차 높아졌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돌아봐라. 아직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바닷가의 모래알과도 같은 일부의 사람들에 국한된 말이다. 개성과 자유와 독자적이라는 낱말을 과감히 사용하고 있는 세칭 신세대 젊은이에게도 그것은 어느 정도 적용된다. 결혼을 하고 보니 뭔가가 달라졌어. 어른들 말씀도 그 말에 일조한다. 모름지기 사내인데 하고 밀이다.
『그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 소설은 제목이 암시하듯 한 여성의 일상적인 삶의 틀을 깨부수는데 초점을 맞췄다. 물론 막연히 일상의 틀을 벗어나는 것으로 그린 것은 아니다.
사람은 여성이건 남성이건을 막론하고 인간이다. 인간은 모두가 똑같다는 원칙아래 삶을 돌이켜보면 삼십대 이후의 여성들은 대부분 자기 존재를 무시한 채 살아온 게 대부분의 삶이다. 난 그 부분에 중점을 두어 정인이라는 가족이기주의에 젖어 있는 여성을 증장시켜 그 틀을 벗어나도록 소설을 유도했다. 좀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그 바라봄 속에서 인간이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도록 말이다. 물론 나의 결말은 공동체적 삶이다.
하늘을 보고 땅을 딛고 모든 사물들 속에 조용히 눈을 감고 있어 보자.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게 내가 던진 돌이 누구의 머리에 맞을 수도 있으며, 내가 버린 오염물질이 다시 강물로 돌아가 나의 뱃속으로 들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그래서 함께 살아야 한다. 아무리 존재를 관념적으로 승화시킨다 해도 그 기본명제는 불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 어느 날 전화 부스에 있는데 누군가가 나의 옆구리에 칼을 박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가 이 땅에 존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남의 삶을 돌아보고 걱정할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우경희라는 여성학 강사를 등장시킨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 여성의 주변을 삽화로 끌어 들이면서 여성들이 실제로 얼마나 억압받고 살고 있으며, 얼마나 현실에 위험하게 노출되어 있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우경희라는 인물이 도중에 정인의 남편과의 관계가 깊어짐으로서 여성학자 답지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경희는 여성학자 이전에 인간이다. 그렇듯 인간은 직선적이며 단순한 삶을 겪는 것이 아니다. 난 그의 혼돈된 시간 속에서도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성이라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잘 그리지 못해서 늘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끝으로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정윤을 돌아보자. 정윤은 불운한 과거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의 힘든 세월을 몸으로 걷어 내며 살아온 여자다. 난 그녀를 통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삶을 선택할 때 작금의 우리사회가 보여주는 현실의 벽을 그려보고 싶었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구조의 벽과 봉건적이며 가부장적 사회구조로 인한 이중 삼중의 고통을.
정말 정윤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철저하게 현실의 문 앞에서 주저앉는 것으로 결말을 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결말을 내는 것이 쓰고 있는 소설의 구조에 어려움이 많았다.
요즘은 소설이 뭔가라는 자문을 많이 해본다.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는데 그중 한 가지가 내 삶을 살아가는 한 과정에 대한 삶의 기록이 아닌가 싶다. 정말 다음에 쓸 때에는 좀더 나은 글을 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