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8 | [서평]
한국역사 이해하는 지름길
『미군점령 4년사』(송광성, 도서출판 한울, 1993)
지역사회연구모임
(2004-02-03 10:31:02)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49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당시의 역사를 뒤돌아보는 이유는 역사연구라는 것이 현실의 문제의식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해방이후 식민지유제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서간 체제대립의 산물로 민족분단을 맞이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은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계급모순, 민족모순, 분단모순이라는 복합적인 모순을 심화시키는 과정을 밟아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결국 이러한 모순의 심화는 80년대 이후 민중들의 저항과 사회변혁의 요구까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렇듯 해방당시의 역사적 시실들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미군정기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군점령 4년사』에서도 이러한 점에 동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현재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자주, 민주, 통일의 과제는 해방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나, 남한에 진주한 미국군대의 영향력에 의해서 성취되기 어려웠던 만큼, 우리사회의 현실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점을 찾기 위해서는 미 점령군의 활동에 정점을 두고 해방직후의 역사를 연구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미군점령 4년사』는 미국을 바로 아는 것이 한국 역사를 이해하는 첩경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미국이 우리 민중에게 한 일을 이해하고, 또 미국이 미국민중을 어떻게 다스렸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2차대전 이후 세계 패권국이 된 미국이 세계 민중에게 무엇을 했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시도한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서론에 이어서 제2장에서는 조선민족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조선과 미국과의 관계관계가 요약되어 있다. 1876년에 조선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후에 일어난 계급-민족운동, 즉 동학농민운동에서 민족해방투쟁으로 이어지는 민중운동의 변천을 살펴보고 있으며, 1882년부터 일본의 조선지배가 시작된 1905년까지의 반(半)식민지기간에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강대국들 간의 싸움에 참여하는 미국의 태도와 제2차대전 이후 패전국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 대한 전승국 미국의 군사적 주둔계획을 살펴보고 있다.
제3장에서는 한국과 미국 사이의 민족적 갈등과 미군점령이 남한의 민족해방운동을 파괴하는 과정을 검토하고 있다. 해방이 되었을 때 조선인민공화국은 하나의 정부로서 민중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는 분석을 통해 조선인민공화국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규명하고 있다. 그리고 미군정이 일제총독부 기구와 인원을 이용하는 억압적 국가기구를 재조직 하면서 남한에 분할통치 정책을 작용시켜가는 과정을 검토하고 일본총독부와의 비교검토를 통해 미군정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승만 정권이 얼마나 친미적이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제4장에서는 남한 민중의 계급투쟁과 미국의 간섭에 의하여 사회민주화운동이 파괴하는 과정을 검토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정치적은 문제가 다루어졌다면 제4장에서는 토지개혁을 포함한 사회혁명을 통해 경제적 평등을 달성하려는 민중의 노력들이 나타나 있다.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의 반혁명정책, 노동자와 농민들의 혁명운동, 그리고 국내외 반혁명세력의 탄압에 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을 분석하고 있다.
제5장에서는 분단의 기원과 심화과정을 고찰하고 있다. 한반도 내에 두 개의 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 어떻게 중첩 되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서로 다른 점령정책에 따라서 두 개의 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의 전쟁의 징후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여기서는 한국 분단의 책임과 재통일 무산 등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입장을 자세히 밝혀 줌으로써 기존의 신화를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을 유지시켜 주었던 반공이데올로기의 생산지는 한국이 아닌 미국이었다는 새로운 사실들도 밝히고 있다.
『미군점령 4년사』는 그동안 해방직후사에 대해서 이루어졌던 연구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미군점령 4년사』는 해방직후사의 연구는 3년이라기 보다는 미군이 사실상 남한을 통치하기 시작한 1945년 8월 15일부터 남한 점령을 마치고 일단 철수하는 1949년 630일까지의 미군점령 4년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미군점령 4년사』는 국내외학자들이 해방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공통된 이론적 틀과 접근방식을 시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것을 저자는 “냉전적 접근법(Cold War Approach)"이라고 칭하고 있다. 냉전적 접근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소관계가 전후 세계 역사의 중심이라고 가정하고 국제 정치적 문제를 단순화시켰다. 이 접근법은 한국정치를 미국과 소련 사이의 갈등에서 생기는 하나의 부산물로 취급하면서,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의 민족갈등을 소련 공산주의와 미국 자본주의 사이의 이념적 갈등으로 왜곡시켰다. (한국전쟁을 연구의 초점으로 삼고 있는 연구)
둘째, 냉전적 접근법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2차대전 후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가정하면서, 전쟁 전과 후에 취해진 대외정책이 겉모양은 달라졌을지라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셋째, 냉전적 접근법은 미국 중심적인 것으로 미국의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미국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였다. 여기서는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의 필요와 요구를 무시하고 그 나라들의 사회나 국민들에 대한 미국정책의 영향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냉전적 접근법을 한국에 적용하는 학자들은 한국의 민족주의와 계급투쟁을 경시하고, 미국의 대한정책 그 자체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남한에서 행한 미국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넷째, 냉전적 접근법을 쓰는 학자들은 대부분 실증주의자이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에 적절한 역사적 전망을 가지는 일에 소홀하게 되고, 짧은 역사적 사실에 몰두하기 때문에 긴 역사적 맥락에서 이 기간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
냉전적 접근법을 사용한 학자들은 한국의 공식역사를 반박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밝혀내는데 공헌했지만, 주로 한국에서 벌어진 미국과 소련의 갈등을 설명하는데 사실들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냉전적 접근법의 한계를 살펴보면서 『미군점령 4년사』는 하나의 대안으로 ‘계급과 민족분석’을 내놓고 있다. 즉 『미군점령 4년사』는 그동안 여러 학자들이 밝혀낸 사실들을 통해 남한 민중의 계급투쟁, 그리고 한국 민중과 미국 사이의 민족적 갈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체제론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실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해방공간의 성격을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의 영향력 하에서 규정하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마치 미국과 소련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목적론적인 시각이 내재해 있음을 시사해 준다. 물론 당시의 상황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세력은 미국과 소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이들 세력에 의해서만 아니라 국내 사회세력들의 영향력도 작용했을 것이고, 이들 국내외 세력들 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해방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