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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8 | [문화저널]
‘그대의 밤하늘에도 반딧불들 반짝이겠지요’
박남준 시인, 편집위원 (2004-02-03 10:27:34)
오늘도, 밤이 깊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믐 무렵이어서 그러는지 아니면, 아직 달이 뜨기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인지, 달아 뜨지 않은 칠흑처럼 깜깜한 하늘에 이 여름밤의 별들, 총총히도 떠서 발길 멈추고 아! 별들, 내가 별들을 잊고 있었구나, 은하수의 하늘 우러렀습니다. 북극성, 작은곰자리, 가만있자 저것은 무슨 별자리였더라. 문득 먼 어린 날의 여름밤이 떠오릅니다. 쑥대를 베어 말렸다가 모깃불을 놓고, 그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얀 연기 속에서 뛰어 놀다가,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하늘로 오르는 연기처럼 나도, 날개가 있었으면 하고 겨드랑이를 자꾸 만져보고, 두 팔을 흔들어 대던 생각. 그리고. 말입니다. 시원한 대나무 평상에 누워있으면 우물 속에 띄워 놓았던 수박을 가르고, 참외를 깎아 주시며 할머니께서는 살랑살랑, 부채 바람을 내어 무더운 여름밤을 쫓고, 모기들을 쫓아주기도 했지요. 그때 그 어린 날의 여름, 밤하늘에도 별들은 더없이 아름답게 빛을 뿌리고 있었으므로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둘, 별 셋 나 셋, 어디까지 세었지하며 다시 세고, 다시 세다 잠이 들기도 했고요. 오늘 산을 내려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고 세상 이야기를 했습니다. 속이 무척 상했습니다. 갈수록 사는 일은 어려워지고 산다는 것은 어쩌자고 그렇게, 갈 곳 없이 떠도는 막막한 일이 되어 가는지, 잔뜩 어깨를 늘이고 돌아오는데 그 어린 날의 밤하늘 작은 별들이 지상으로 이사를 왔는지, 길동무를 삼아 주려는지, 길가 풀섶의 여기저기에서 반짝거리며, 훨훨 내 앞을 날아다니는 것 아니겠어요. 반딧불 말이예요. 연록빛 참 곱기도 고운 빛을 뿌리며 반딧불들이 떼를 지어 어두운 밤길 훤히도 밝혀 주더군요. 여기는 가시덤불이고요, 여기는 허방이예요, 내 낮은 어깨위로 날아오르며 “힘내요 힘내요 혼자가 아니예요” 꼭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지난겨울에 별똥별들 무척이나 많이 떨어져 내리는 걸 보았었는데 마치 그 별똥별들이 모두 이 땅위의 반딧불이 되려고 내려왔었는가 하는 동화 같은 생각도 해보았지요. 그대의 밤하늘에도 반딧불들 반짝이겠지요, 밤이 깊습니다. 머리맡에 자리끼 물은 떠놓으셨는지요, 눈을 뜬 공복의 아침에 마시는 한 잔의 물, 건강에 더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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